지난 달 30일 공개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간의 통화 녹취록이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2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부적절한 대응으로 꽃 같은 생명들을 속수무책으로 잃게 한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던 시점에 청와대 수석이 직접 방송사에 전화를 걸어 보도내용에 개입하는 충격적 내용이다. 현행 방송법을 위반한 것은 물론이고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차단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반 헌법적, 반 민주적 행태가 음성녹음을 통해 생생히 드러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뉴스 편집…권력의 언론 통제 증거가 30초 단신(?)

하지만 폭로 당일 SBS 8뉴스는 해당 기사를 30초짜리 단신으로 뉴스 말미에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갔다. 사안의 중대성이나 향후 파장 확대 가능성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없는 뉴스편집이다. . 정작 당일 뉴스는 이미 10차례 이상 다뤄진 연예인 박유천 소환, 인테리어 관련 기사, 보험 관련 기사 등 단순 생활 정보 관련 내용으로 도배됐다. 현장 취재 기자들과 기자협회가 리포트로 중요하게 다룰 것을 요구했지만 보도책임자는 단신 배치를 끝까지 고집했다.

긴급발제권 첫 가동…공정보도 수호 위해 조합원 직접 행동

이에 기자협회를 중심으로 한 보도국 소속 조합원들은 이튿날인 지난 1일, 개정된 보도준칙에 따라 사상 처음으로 긴급발제권을 가동해 이정현 녹취록 파문 관련 후속 보도를 관철시켰다. 긴급발제권은 중요 아이템이 뉴스에서 배제되거나 부적절한 아이템이 방송될 때 현장 기자들의 집단 발제로 보도 실무 대표자가 편집회의에 참여해 의견을 밝힐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당일 해당 기사는 정치권 차원의 공방으로 번지며 파장이 확대된 이정현 녹취록 관련 사안을 여야의 목소리를 대비해 배치하고 야권의 청문회 추진 소식등을 다뤘다. SBS 독자적으로 정치권력의 언론장악 행태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보도국 조합원들 스스로 공정방송 실현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결과물로 그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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