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백남기대책위·성주 왜곡 보도 증언대회“우리 목소리 좀 들어달라”
“가장 나쁜 왜곡보도는요. 침묵하는 겁니다.”
장훈 세월호 유가족대책위원회 진상조사분과장(세월호 참사 희생자 장준형군 아버지)은 ‘왜 싸우는지’ 보도하지 않는 언론에 문제를 제기했다. 강자에 맞설수록, 싸움이 길어질수록 외면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성주 군민들, 백남기 농민 대책위원회, 상지대 학생들, 민주노총 역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색깔론 등을 동원해 여론으로부터 고립시키는 보도에 대해 성토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야3당 의원들로 구성된 국회 언론공정성실현모임은 29일 국회에서 ‘박근혜 정부 언론왜곡보도 피해자 증언대회’를 열고 언론의 왜곡보도 문제를 조명했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가장 무서운 건 무감각해지는 것”이라며 “아픈 기억이지만, 다시 꺼내 공유하고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장훈 분과장은 세월호 특조위 조사기간 연장을 요구하며 13일째 단식 중이다. 그는 목발을 짚고 입장했고, 힘에 부쳐 발언이 중간 중간 끊길 정도였지만 유가족의 단식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는 “우리는 또 다시 단식을 한다. 지상파에서 우리가 단식을 하는 모습 보여주고 왜 하는지 보도한 적 있나?”라며 “국민들이 우리한테 그만두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말을 하게 만든 건 언론”이라고 비판했다.
그나마 언론이 관심을 가진다 싶어도 초점은 본질을 벗어나기 일쑤였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청문회를 앞두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만들고 취재요청을 했지만 청문회를 취재하는 언론은 많지 않았다. 장훈 분과장은 “청문회장에 들어가야 하는 적지 않은 기자들은 밖에서 반대집회를 하는 고엽제전우회와 어버이연합을 찍었다”면서 “청문회에서 새로 밝혀진 주요사실들은 보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지난 26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단식을 시작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우리가 경찰에게 맞고 잡혀가는 건 보도하지 않았다. 침몰원인과 구조에 대한 새로운 증언을 보도하지 않았다. 삭발하고 부서진 몸으로 도보행진하고 밥을 굶어가며 요구하는 게 뭔지 절대 보도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우리가 보상금과 특혜를 받고, 화가 나면 사람을 때린다는 식으로 교묘하게 몰아갔다. 이게 언론의 역할인가.” 장훈 분과장은 ‘거짓말하기’ ‘받아쓰기’ ‘일부만 말하기’ 등을 세월호 보도의 문제로 지적하기도 했다.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뇌사상태에 빠진 백남기 농민에 대한 보도 역시 마찬가지다. 최석환 백남기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단물이 빠지니 보도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무관심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광주에서 도보순례 도중 KBS카메라가 따라 붙어서 다들 의아해했다. 알고 보니 광주KBS카메라였는데, 카메라에 놀랄 정도로 주류언론으로부터 무관심의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최석환 사무국장 역시 “경찰의 입장만 듣는 받아쓰기식 보도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백남기 농민이 왜 서울에 올라왔는지는 다뤄야 할 거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이철성 경찰청장 내정자 사퇴 촉구 기자회견’에서 백남기 농민의 차녀 백민주화 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사드배치에 반발하고 있는 성주군민의 목소리 역시 ‘반쪽짜리’만 나갔다. 동아일보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7월22일 성주군민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집회를 한 날 착용한 파란리본은 ‘외부세력과 구분하기 위한 표식’이었고, 일부 주민이 맡았던 안전요원 역할은 ‘외부세력의 참여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재동 성주 농민회장은 “파란리본은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이자, 싸움이 장기화될 것을 직감하고 여론전을 위해 만든 것이고, 안전요원은 보수단체들의 방해를 막기 위해 배치한 것인데 이 같은 점은 보도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장기화된 사안은 이전보다 이목을 끄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조명되지 않는 점도 언론보도의 문제다. “상지대는 오랜 기간 사학분규가 이어지다보니 집회, 점거농성 소식만으로는 취재하기 힘들다. 더 자극적인 게 필요하다.” 정성훈 상지대 총학생회장이 기자로부터 들었다는 말이다. 적지 않은 언론이 재단의 입장을 더욱 비중있게 반영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관심있는 언론마저도 ‘기삿감’이 안 된다며 외면하는 현실이다.
증언대회에 참석한 이들이 상황설명을 위해 보여준 영상의 출처가 모두 대안언론이었다는 점도 주류 언론이 사안에 침묵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국민TV’(세월호) ‘미디어몽구(성주)’, ‘민중의소리’(백남기 농민사건) ‘뉴스타파’(상지대) ‘미디어뻐꾹’(갑을오토텍) 등의 영상에서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이날도 마찬가지다. 언론 보도 문제를 지적하는 증언대회마저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 OBS와 팩트TV의 카메라만 있었고 패널 중 현직 언론인은 1명만 참여했다. 김환균 언론노조위원장은 “더 많은 기자, PD들이 나와서 용감하게 자신이 속한 언론사에서 벌어지는 일을 증언해야 마땅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즉시 인사위원회에 회부되고 징계를 당해야 하는 위협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왜곡보도를 당한 당사자들은 스스로 대응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성주군민들은 촛불집회 때 자체적으로 당일 언론보도 모니터 결과를 발표한다. 오랜 기간 ‘귀조노조’ ‘불법’ ‘종북’ 프레임으로 ‘마녀사냥식 보도를 당해온 민주노총은 적극적인 대응을 시작했다. 손지승 민주노총 교육선전실 부장은 “정부의 노동개악, 민중총궐기 이후 악의적인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앞으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근 민주노총은 언론보도 모니터링을 통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민원 제기, 언론중재위 제소 등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과제가 많지만, 우선 영향력이 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정수영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인천상륙작전’ ‘이정현 녹취록’ ‘성주 사드배치 반대집회’보도 등에서 벌어진 사측의 압력을 언급한 뒤 “공영방송 지배구조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야3당은 방송언론환경을 바꾸고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을 발의했다. 앞으로도 치열하게 고민해 언론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