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9일 노사는 임단협 상견례를 가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김환균 위원장은 상견례 자리에서 임단협 교섭권을 SBS본부에 위임했다.

 지상파 중심의 미디어 환경은 이제 완전히 붕괴해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래가 현실이 됐다. 근근이 버티던 SBS의 수익구조는 올해를 기점으로 장기적자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거기에 최순실 보도 참사로 증명됐듯 시청자는 안중에도 없이 권력에 기대 이익을 취해 보려는 해묵은 경영전략은 완전히 파탄 났다.

미증유의 위기이다. 안팎에서 삼각파도가 쓰나미처럼 밀려들고 있다.
이런 총체적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노동조합은 오늘부터 사측과 2016년도 임금 및 단체협약 개정안 본협상에 돌입한다. 이번 임단협은 이렇듯 당면한 위기를 돌파해 나갈 근본적 대안을 찾지 못하면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없다.

실패한 체제-실패한 경영전략에 종지부를 찍자

어디서부터 무엇을 바꿔야 하나. 답답한 노릇이다. 뿌리를 캐내보자.
그 질문은 SBS가 도대체 왜 이렇게 허약해 졌나 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
지난 2004년 SBS는 재허가 파동 속에 대주주가 바뀔 수도 있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당시 노동조합은 창업주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경영투명성을 높이겠다며 시민사회와 정부를 앞장서서 설득했고 대주주는 경영권을 보전할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표방했으나 노동조합이 주도한 지주회사 체제의 구축은 내용적으로는 거센 사회적 비판을 우회해 대주주에게 합법적 2세 상속의 길을 터준 상생의 손길이었다.

그러나 2008년 지주회사 체제 설립 이후 벌어진 상황들을 복기해 보자.

‘SBS의 수익성 악화 및 가치하락’
‘계열사들에 대한 지분법 평가이익 소멸’
‘부당한 부의 이전’
‘방송법상 규제 회피’
’경영투명성 저하’ 

위에 열거한 내용들은 지난 2006~7년 노동조합이 아닌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반대했던 다른 주주들이 제기했던 홀딩스 체제의 문제점들이다. 예외 없이 모조리 현실화돼 SBS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콘텐츠 요율을 넘어 체제와 구조 자체가 문제

노사는 지난 해 계열사간 콘텐츠 거래 요율을 대폭 인상하고 요율 결정 시 노사가 협의해 정하기로 하는 진일보한 합의에 도달했다. 이는 그 동안 지주회사 체제에서 SBS의 이익이 부당하게 이전돼 왔음을 전제로 한 것이며, 이런 이익 공동화를 조금이라도 시정하지 않으면 SBS가 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체력 저하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합이 지난 1년 간의 콘텐츠 거래 내역과 회사의 적자 구조를 살펴본 결과, ‘언 발에 오줌누기’ 식의 요율 조정으로는 우리가 마주한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8월 말 현재 전년 대비 219억원의 판권수익이 증가했지만 회사는 4백억이 넘는 대규모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SBS는 지주회사가 아닌 계열사에 불과한데도 SBS가 지주회사 전체의 유지비용을 전담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콘텐츠허브는 전체 매출의 82% 이상을 SBS에 의존하고 있고, SBS PLUS는 80% 안팎의 편성을 SBS 프로그램으로 채우고 있다. 특히 플러스의 경우,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광고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새벽 시간에 집중 배치하고 SBS 프로그램을 주요시간 대에 배치해 광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자체 제작 프로그램으로는 편성 비율만 높이고, 실제 수익과 직결되는 광고매출은 SBS 프로그램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편성비율에 따라 수익을 배분하기로 한 SBS와의 계약에 따라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70% 이상의 편성의존도를 나타내고 있는 FunE, SBS가 프로그램을 구매해 주지 않으면 적자 구조를 벗어날 수 없는 SBSCNBC 등 거의 대부분 계열사가 독자적 생존 기반을 갖추지 못한 채 SBS의 콘텐츠와 적선에 가까운 불공정 계약에 의해 버티고 있는 구조이다.

이렇다 보니 지주회사 체제 유지를 위한 전략기능을 SBS가 대신 수행하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사측은 지난 해 말 20여명의 홀딩스 직원을 SBS로 전적시켜 사실상의 지주회사 기능을 대부분 흡수했다. 하지만 SBS는 지금도 홀딩스에 연간 수십억원 대의 경영자문료를 꼬박꼬박 지급하고 있다. 수백억원 대 적자에 허덕이는 SBS가 어떤 명분도 찾을 수 없는 자문료 형태로 체제 유지 비용 출혈을 감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지주회사 구조는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기형적인 것이다. 국내 다른 업종의 지주회사 체제는 말할 것도 없고 이웃 일본만 해도 거의 모든 지상파 방송들이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하고 있지만 이익 순환 구조가 맞물려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방송과 콘텐츠 영역은 대부분 지상파 아래 귀속하고 있으며 다른 계열사들은 대부분 독립적으로 수익 기반을 갖추고 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런 비상식적 체제가 유지되는 한 SBS가 끊임없이 배임과 일감 몰아주기 같은 법적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올 들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된 대기업 오너 일가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부당지원 실태는 SBS 콘텐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SBS 홀딩스 체제와 흡사한 모양새다. CJ그룹과 현대그룹, 한진, 진로 하이트 등이 총수일가 지분이 30% 이상인 계열사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줬다가 된서리를 맞고 있다. SBS도 관련 내용을 8뉴스에 보도까지 한 바 있다. 제 눈에 들보는 놔두고 남 눈에 티끌을 지적하는 자가당착이다. 이렇게 위법의 소지를 태생적으로 안아야 하는 지배 구조를 방치한 상태에서는 사회적 공기로서 언론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게 불가능하다.

미디어 환경 변화를 고려한 미래 전략으로 홀딩스 체제 바꿔야

홀딩스 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조합의 판단은 단순히 이런 수익의 유출만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실시간 방송에 의한 광고매출이 급감하고 콘텐츠를 활용한 2차, 3차 수익이 급증하는 미디어 환경의 급변 속에서 SBS는 2, 3차 콘텐츠 수익은 홀딩스의 자회사에 맡겨둔 채 급감하고 있는 광고매출을 방어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중간광고 허용에 올인하다 최근 최순실 사태로 급변한 정치환경 속에 길을 잃고만 패착은 경영실패의 대표적 사례다. 지상파 방송의 매출구조는 몇 년 전부터 광고보다는 콘텐츠 자체의 역량을 키워 2차 3차 수익을 키워나가는 구조로 급격히 변해왔다.

포털은 물론 OTT 서비스 등을 통한 콘텐츠 직판 수익이 급격히 늘고 있으며 또한 포맷 수출 등 각종 다양한 방식의 판매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콘텐츠 판매에 관한 권한과 영업을 자회사도 아닌 홀딩스 계열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은 SBS 경영진으로 하여금 여전히 쪼그라들고 있는 광고시장에 집착할 뿐 콘텐츠 판매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에 소홀한 채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고착화한다는 점이다.

조직문화 혁신에 따른 개편으로 미디어 사업 센터가 설립됐으나 대부분의 사업 영역이 콘텐츠 허브와 중복되면서 외부의 경쟁자와 맞서기도 바쁜 상황에 계열사 간 교통 정리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수 밖에 없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의 미디어 환경 변화를 고려할 때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기획과 제작 초기 단계부터 방송 이후 콘텐츠 판매 및 2, 3차 수익 창출을 위한 전략적 판단이 필수가 된 상황이다. 각각의 기능들이 다른 회사로 분산된 상태로는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없음이 자명하다. 현실적으로 SBS 구성원들이 TV 이외의 콘텐츠 판매 수익 구조에서 유리된 제작 현장의 상황이 지속되면 될수록 N스크린 시대에 쥐꼬리 같은 TV 시청률에만 매몰돼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콘텐츠 직판 시장을 고려한 맞춤형 콘텐츠 제작과 전략은 점점 시장의 요구와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수익 극대화를 위한 일관화 전략을 마련하는 데 지금의 홀딩스 체제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거대한 벽일 뿐이다.

독자 생존 기반 없는 상생은 환상

앞서 지적한 것처럼 현재의 지주회사 체제는 SBS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다른 계열사들의방만한 경영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매출과 이익이 저절로 보장되는 구조 속에서 누가 생존을 위한 경영혁신과 시장 개척에 나서겠는가. 백 번을 양보해서 지상파가 독과점적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익을 다른 계열사에 나눠주는 게 ‘상생’이라 치자. 그러나 이미 완전히 바뀐 시장 경쟁의 틀과 미디어 환경 속에서 SBS마저 구조적으로 대규모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더 떼어줄 살과 더 흘릴 피가 남아 있기나 한가. 각자가 독자 생존의 기반을 마련하지 않는 한 ‘상생’은 환상에 불과하다.

대답해 보라. 경영진은 체력 저하를 넘어 생존의 갈림길에 선 SBS에 꽂힌 매혈의 링거줄을 남겨 놓고 ‘상생’을 입에 담을 수 있는가.

전국언론 노동조합SBS본부(본부장 윤창현)의 판단과 결론은 자명하다. SBS는 더 이상 어떤 정당성도, 합리적 경영판단도 배제된 지주회사 체제의 희생양이 될 수 없다. 더 이상 이런 체제를 방치하는 것은 전체 SBS 구성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배임이다. 노동조합은 2016년 임단협에서 SBS홀딩스 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협상할 것이다. 이는 임금 몇%를 올리는 문제가 아니라 SBS의 생존을 확보하고 보다 넓게 홀딩스 자회사들의 독립경영을 이루는 일이다.

노동조합의 이런 입장은 지속 가능한 백년 기업, 신뢰받는 방송으로 가기 위한 다리를 놓고자 하는 진정한 상생의 손길임을 사측은 명심하라.

저작권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SBS 본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