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단체협약, 방송독립성 확보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

 

 MBC의 암흑기를 되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절망’과 ‘고통’이다. 김재철 사장이 부임한 2010년 3월부터 김장겸 사장이 해임된 2017년 11월까지, 8년이라는 긴 터널을 MBC 구성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견뎌내야 했다. 회사는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했고, 부당한 업무지시와 청탁을 일삼았다.  방송강령·윤리강령·MBC방송제작가이드라인 등의 사규 위반이 빈번하게 이루어졌고, 불법 대량 해고와 징계, 부당 전보, 구성원 사찰 등 강도 높은 노동 탄압과 인권 침해 사건도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회사가 MBC 구성원들을 상대로 이 같은 전횡과 횡포를 마음껏 일삼을 수 있었던 건, MBC 노사가 ‘무단협’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지난 2011년 1월, 회사는 일방적으로 단체협약 파기를 통보했다. 1987년 노동조합 창립 이후 단체협약은 언론인의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의 하나인 언론 독립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이자 공정방송 실현의 제도적 근간으로 존재했으며 공영방송 MBC의 헌장과도 같았다. 그러나 회사는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조항인 ‘국장책임제’와 ‘공정방송협의회’를 무너뜨리고 보도와 제작, 편성을 장악하기 위해 단협 파기를 자행했다. 언론사 노조 20여년의 역사에서 회사가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그렇게 ‘무단협’ 상태에 놓여진 MBC 구성원들은 경영진의 폭거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단협이 해지되고 공정방송을 위한 안전장치가 사라져버리자 MBC는 끝모를 추락을 거듭해야만 했다. 부당한 보도 지시에 순응하지 않은 기자들에게는 곧바로 인사 보복이 내려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시사프로그램은 경영진 마음대로 폐지해 버리거나, 연출진을 모두 교체해버렸다. 뉴스와 시사보도 프로그램에는 사실상의 ‘금지어’와 ‘영상지침’이 생겼고, 사전 검열이 일상화되면서 제작 자율성은 말살됐다. 경영진의 월권은 교양과 예능, 드라마와 라디오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출연진과 방송 내용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 빈번하게 이뤄졌다. 한 PD는 회사의 과도한 개입과 요구에 참담함과 부끄러움을 느껴 방송에 자신의 이름을 가명으로 내기도 했다. 회사가 휘두르는 무소불위 칼날에 기자와 PD, 아나운서는 물론 기술, 영상 등 방송국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전문성과 관련 없는 부서로 쫓겨나거나 징계를 받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당시 MBC는 그야말로 ‘디아스포라’였다.

  단체협약 일방해지를 당하는 수많은 사업장 가운데 노동조합이 무력화되어 회사에 맞서 싸우지 못 한 곳들은 결국 사측에 불리한 내용이 삭제된 ‘단체협약 개악안’을 무기력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회사가 단협 파기로 노리는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실제 MBC 사측도 무단협 상황에서 공정방송 조항을 전면 삭제하고, 징계와 해고가 쉬워지는 조항은 강화하며, ‘특별상여’는 ‘임금’이 아니라고 명시한 ‘개악안’을 내밀며 수년간 조합을 압박했다. 그러나 MBC 조합원들은 끝까지 맞서 싸우며 개악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SBS라고 다를 거라는 보장은 없다. 조합원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 한다면 언론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장치들은 단체협약 조항에서 사라지고, 회사는 노동조합을 무시한 채 일방의 독선으로 조직개편과 구조조정 등 근로조건 악화의 칼날을 들이밀 수 있게 될 것이다. 치열한 싸움을 통한 단체협약 사수만이 회사를 견제하고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방송의 독립성과 제작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2021.10.14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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