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땅에 헤딩..땅은 멀쩡하고 머리에서 피만 흐르는 느낌..”

한겨레를 통해 최순실이란 이름이 회자되고, jtbc가 테블릿 PC로 세상을 뒤흔들기 시작할 때까지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방기했던 SBS가 뒤늦게라도 선전할 수 있었던 데는 기자정신을 잃지 않으려 했던 보도국 기자들의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한참이나 뒤쳐진 상태에서  출발선에 서야했던 암담한 상황에서 ‘SBS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별취재팀’은 묵묵히 취재 전쟁의 한 복판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습니다. 특별취재팀에서 맹활약했던 박수진 기자에게서 치열했던 취재현장의 이야길 들어봤습니다.

특별취재팀 박수진,최우철,김민표,박민하 기자 (왼쪽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별취재팀은 언제 구성됐고, 몇 명이었나?
특별취재팀은 지난 해 10월25일 구성됐다. 전날(10월24일) jtbc를 통해 최순실 태블릿pc에서 발견된 연설문 보도가 나오고 박 전 대통령이 1차 대국민사과 담화를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됐다. 특별취재팀을 거쳐 간 기자들은 총 12명이다. (배재학, 김민표, 진송민, 박민하, 하현종, 심우섭, 김정윤, 조기호, 임찬종, 최우철, 박수진, 정혜경) 배재학, 하현종, 임찬종, 정혜경 기자는 독일과 덴마크에서 정유라와 최순실 추적을, 나머지는 국내에서 각종 의혹들을 취재했다. 막바지엔 3명으로 유지되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직후 소속 부서로 돌아갔다.

처음 특별취재팀에 주어진 부담감이 매우 컸을 텐데 팀 분위기는 어땠나?
26일 오후 3시쯤, 시민사회부 김승필 부장이 카톡을 보냈다. "이 시간부로 특별취재팀이다. 김민표 부장 지시 받아라.” 부담감이 정말 컸다.?선제적으로 보도를 시작했던?한겨레나?TV조선에서는?이미 '취재 후기'까지 기사로 나올 정도였고, jtbc의 태블릿pc 보도까지 나온 상황에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주요 취재원의 연락처도 알지 못하는데 제보도 없었다. 맨 땅에 헤딩하는 것까진 좋은데 헤딩을 계속해도 땅은 멀쩡하고 머리에서 피만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초반엔 일주일 넘게 기사 한 꼭지 쓰지 못했던 시간도 있었다.

첫 특종은 어떤 것이었나? 우리의 삼성 기사는 검찰 수사의 문을 연 것 아닌가?
첫 ‘특종’은 <삼성의 정유라 특혜 지원>이다. 11월 6일 8시뉴스에서 4꼭지를 연달아 보도한 이후 관련 내용을 꾸준히 보도했다. 최순실이 독일에서 비덱스포츠를 만들 당시 공동대표였던 독일 헤센주 승마협회장을 정혜경 기자가 독일 현지에서 인터뷰 했고, 국내에서 인터뷰를 받아 독일어 통번역 전문가를 섭외해 정확한 의미를 파악했다. 그는 “삼성이 정부 지원을 약속 받고 정유라를 지원했다” “삼성은 독일에서만 우리 돈 200억 원 이상을 지원하기로 돼있었다” “삼성 관계자들을 만날 때는 대부분 최순실과 함께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박근혜-삼성-최순실’ 커넥션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후 삼성 관계자와 최순실 측이 주고받은 이메일, 정유라에게 가격과 상관 없이 비싼 말을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파악해 보도했다. 특검 수사를 거쳐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났고 이재용부회장 구속 및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 혐의 입증에 중요한 근거가 됐다.

삼성이 그냥 두고 보지 않았을 텐데..압력은 없었나?
삼성 측의 적극적인 해명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팀 막내인 내가 피부로 느낄 만한 ‘제약’은 없었던 것 같다. 삼성 관련해 취재하고 준비한 기사가 나가지 못한 경우도 없었다. 이런 배경에는 보도국 선후배 동료들이 특별취재팀을 믿어주고 응원해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밖에 수많은 특종이 있었다. 어떤 기사들이 있었나?
문체부 블랙리스트 연속 보도도 의미 있는 특종이었다. 실물을 입수해 보도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었다. 블랙리스트에 올린 이유가 명확하게 나타나있었고, 블랙리스트가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국정원의 이중 확인을 거쳐 수시로 업데이트 되고 있다는 사실도 보도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풍문만 무성했던 문화예술계 탄압의 실체를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박근혜 ‘비선의사’인 김영재와 부인 박채윤이 운영하는 ‘성형 실 업체’ ‘와이제이콥스메디칼’이 중동 진출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기사도 의미 있는 특종이었다.

세간에 화제가 된 정유라 승마 동영상은 어떻게 발굴하게 된 것인가?
2015년 9월 독일 카셀만 승마학교에서 정유라가 말을 타는 장면인데, 이 영상은 우리가 보도하기 몇 주 전 국회 청문회에서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일부 공개했던 영상이었다. 사실 다른 취재를 위해 뒤늦게 박영선 의원에게 요청해서 풀 영상을 받았는데 청문회 때 공개되지 않은 부분 중 당시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의 싱크가 담겨 있었다. “회장님이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흐뭇해하실까”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삼성이 준 돈으로 수십억 원짜리 말을 타며 희희낙락하는 정유라와 최순실 측근들의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이 분노했다.

특별취재팀과 법조팀 활약 때문에 타사 기자들이 매우 힘들어 했을 것 같다. 반응은 어땠나?
=특별취재팀 보도가 의미 있는 보도로 남을 수 있던 배경에는 법조팀의 활약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법조팀에서 고생해서 확인한 특검 수사 내용들을 통해 ‘의혹’으로 남았던 부분들도 상당수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법조팀에 파견 간 수습기자들도 특검 사무실 쓰레기를 뒤지는 투혼까지 발휘해 선배들의 취재에 일조했다고 들었다. 타사 법조팀에 있는 기자들이 ‘오늘도 SBS에서 단독 나오냐’라고 물어올 때마다 기분 좋았고 자랑스러웠다.

5개월의 특별취재팀 기간이 박 기자에게 주는 의미는?
처음엔 ‘아, 내가 왜..’라는 마음도 솔직히 있었다. 지난 5개월은 기자 생활 7년 중 가장 치열했고 가슴 뛰던 시간이었다. 현직 대통령을 탄핵 시킨 역사적인 사건을 적극적으로 취재할 수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좋았고, 선배들과 취재부터 기사 작성-제작까지 함께 고민하면서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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