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제작 기능 외주화 시도…드라마 본부 조합원 동요

사측이 비밀리에 드라마 본부를 통째로 분사하는 방안을 추진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노동조합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측은 전략기획팀과 경영기획팀, 김영섭 드라마 본부장 등이 중심이 돼 드라마 본부 분사 추진 방안을 논의해 왔으며, 최근 관련 사실이 우연히 드러나면서 드라마 본부 조합원들 사이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

노동조합은 최근 전략기획팀이 작성한 ‘드라마 스튜디오’ 추진방안 문건을 확보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사측은 플랫폼 다양화와 경쟁사와 외주사의 성장 등으로 인한 판권 확보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스튜디오 형태의 드라마 자회사를 추진 중이다. CJ의 드래곤 스튜디오 같은 제작 수직계열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전략기획팀 '드라마 스튜디오 모델 전략' 문서 중에서

 

분사 전략목표는 ‘그룹 이익 극대화’…제2의 콘텐츠 허브 만드나

문제는 이 같은 드라마 부문의 분사 추진이 과연 SBS와 구성원들의 이해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느냐는 점이다. 전략기획팀이 작성한 문건에 따르면 이 같은 분사 추진의 전략적 목표는 콘텐츠 주도권 확보와 아울러 그룹 이익의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결국 지금의 콘텐츠허브나 SBS플러스처럼 SBS와의 불공정 계약에 의존해 부당한 수익유출 통로가 된 지주회사의 타 계열사처럼 변질될 가능성을 대단히 농후하게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실제로 지난 주 드라마본부 PD들과의 간담회에서 김영섭 드라마 본부장은 스튜디오 설립 시 SBS의 100% 자회사가 돼야 한다고 밝히면서도 향후 SBS 플러스나 콘텐츠허브에 쌓여있는 유보금을 투자 유치하고 지분을 넘겨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결국 SBS의 수익유출로 막대한 자본이익을 쌓아놓은 플러스와 허브가 이를 종자돈 삼아 영속적으로 SBS의 핵심 콘텐츠 제작 기능에 지분을 확보하겠다는 의미이다. 결국 지금처럼 한시적 계약이 아니라 영구적인 지분 확보로 SBS의 이익 창출 핵심인 드라마 부문에 이른바 ‘빨대’를 직접 꽂겠다는 불온한 시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SBS 중심 플랫폼 다변화 전략 아닌 SBS 주변화 전략 가능성

사측은 또 설립될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판권을 확보해 SBS와도 방영권 협상을 벌일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런 방안은 이미 여러 차례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SBS의 직접 판권 확보 전략이 필수적임을 강조한 노동조합의 입장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사측의 방안대로라면 제작비 유치를 명분으로 지분이 뒤섞인 분사회사로 핵심 콘텐츠 제작 역량이 다 빠져 나가고 SBS는 편성기능만 남겨 그나마 방영권마저도 분사회사에 구걸하듯 협상해야 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짙다. 이는 향후 SBS를 지상파를 뛰어넘는 콘텐츠 생산의 중심축으로 성장시키고 재구축해 나가기 보다 SBS를 껍데기만 남은 지상파 채널 관리자로 전락시키고 다른 다양한 플랫폼에 공급하는 콘텐츠는 SBS 밖에서 생산해 대주주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겠다는 제2의 콘텐츠허브 설립 전략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분사하면 5년만 신분보장”…연봉제 추진 속내

사측은 또 드라마 PD들과의 간담회에서 드라마 분사를 전제로 전적하는 본부 조합원들에게는 5년 동안 신분 보장을 하는 방안을 거론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분사과정에서 제기되는 임금하락과 노동조건 악화에 대한 구성원들의 우려를 우선 달래고 5년 이후에는 성과 차등에 기반한 연봉제를 추진하기 위한 것으로 조합은 간주한다. 노동조합의 이런 판단은 근거 없는 의심이 아니다.

경영본부 ‘2017 경영계획 전략과제’ 중에서

사측은 올해 성과연동 보상체계 확대와 7년차 이상 PD들을 대상으로 연봉제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경영계획을 세운 상태다. 노동조합이 동의할 리도 없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폐기 1순위로 거론되고 있는 적폐가 성과 연봉제이며, 성과 평가에 대한 합리적 근거 마련이 거의 불가능한 방송제작업무의 특성상 도입 자체가 쉽지 않은 임금체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이 분사회사를 통해 연봉제를 추진하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은 현재 제작 부문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속적인 인력 유출이 호봉제 급여 체계 때문이라는 인식에 근거한다. 성과를 낸 PD에게 더 많은 연봉을 보장해 사람을 잡겠다는 논리인 셈이다. 하지만 더 많은 연봉이 인력 유출을 방지한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 실제로 인센티브만 받아 챙기고 바람처럼 조직을 등 진 사례들이 넘쳐날 뿐이다. 오히려 기회와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박탈감, 경직된 조직문화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는 대다수 드라마 조합원들에 모욕감을 줄 뿐이다.

 

조직 망가뜨린 분사의 추억…왜 또? 우연의 일치인가?

우리는 지난 IMF 위기 당시 취임 1년여에 불과했던 윤석민 기획실장의 주도 아래 수익성을 내세워 무리하게 추진된 뉴스텍과 아트텍 분사가 SBS와 구성원들에게 끼친 해악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윤석민 이사회 의장 취임 1년여 만에 밀실에서 추진돼 온 드라마 분사 계획이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보이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플랫폼 다변화 전략의 필요성과 경쟁력 강화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사측이 구상하고 있는 방식이 방송의 사회적 책임과 구성원들의 생존권을 가벼이 여긴 채 대주주와 지주회사 체제 이익을 우선적, 영구적으로 보장하는 SBS 주변화 전략이라면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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