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S-TF’라는 조직이 있었다. 대주주 스스로 자신부터 변하겠다며 전권을 부여해 멸종해 가는 공룡처럼 변한 SBS의 조직 문화를 진단하고 미래의 활로를 모색하고자 했던 TF였다. 이 TF 보고서인 <1등 방송을 위한 제언>은 SBS가 직면한 핵심 문제로 ‘5不’ 을 꼽았다. 불통, 불신, 불만, 불안, 부동… 키워드마다 이런 설명도 덧붙여져 있다.

  • 불통 ; 일방향 소통으로 구성원들은 입을 닫고 창의성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 불신 ; 부서, 직종 간 불신이 혁신의 필수요소인 협업을 어렵게 한다.
  • 불만 ; 자유로운 의견표출과 창조적인 토론은 지시형 리더십에 가로막혀 불만이 안으로 쌓이고 있다.
  • 불안 ; 공식적 프로세스가 아니라 비공식적 통로로 미래 투자 방향이 결정된다. 면밀한 사후 검증이나 토론도 없다. 미래에 대한 비체계적, 비조직적 대응을 보면서 사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 부동 ; 권한을 쥔 소수를 제외하고는 체념과 무기력에 빠져 움직이지 않는다.

 

TF는 소리소문 없이 폐기됐고 2016년의 자화상 ‘5不’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 여전히 조직을 좀먹고 있다. 이런 ‘5不’은 논란이 된 드라마 본부 분사 추진 과정과 엔터포털, 디지털 광고회사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 결정 과정에도 여지없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일부 경영진을 중심으로 드라마 분사를 추진하다 노동조합이 문제를 제기하고, 일선 조합원들 반발이 이어지자, 사측은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며 발을 빼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침은 지난 달 2분기 이사회에 보고된 ‘비전 2020’에도 전략검토 과제로 분명히 담겨 있었다. 열린 과제가 아니라 방향성이 분명히 정해진 일이었다. 일방적 소통, 즉 불통(不通)으로 조직 내 불신(不信)을 초래한 대표적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드라마를 넘어선 조직 전체의 구조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중대 현안임에도 불구하고 소통과 토론에서 배제된 대다수 구성원들의 불만(不滿)이 고조되고 있다.

또한 엔터포털과 디지털 광고회사 투자 건은 조직 내 프로세스를 사실상 무력화하며 사원들을 불안(不安)케 하는 결정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창사 이래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3백억 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이지만, 이미 대주주를 비롯한 몇몇 경영진이 사실상 투자 결정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투자심의위원회’ 같은 조직 내 필수 절차를 형식적 거수기로 변질시켰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투자의 적정성과 미래 운영 계획 등이 부실하게 논의되고 심의됐다는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디지털 광고회사 인수의 경우, 시장 안팎에서 SBS가 인수 대상인 DMC 미디어의 기업 가치를 과대평가해 과도한 대가를 지불했다며, 이른바 ‘봉’ 노릇하고 있다는 비아냥까지 들려오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최근 일련의 과정을 통해 드러난 사측의 경영 판단 능력이다. 신뢰도 추락의늪에 빠진 보도를 포함해 콘텐츠 기업이라 말하면서도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을 높일 방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고민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오로지 자본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몸집 불리기’가 경영 판단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백화점 건물은 멀쩡하게 지어놓고도 정작 팔 것이 없어 파리 날리는 신세를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미래를 말하면서 지독히도 과거의 방식에 머무르고 있는 경영 행태에 많은 구성원들은 체념과 무기력 속에 부동(不動)하며 각자도생의 길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다. 노동조합도 고민이 깊다. 과연 이런 경영을 언제까지 바라보고 있을 것인가? 과연 우리의 미래를 믿고 맡겨도 좋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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