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은 지난 5월부터 내부적으로 이명박•박근혜 정권 기간 동안의 방송 독립성과 소유 경영 분리 원칙을 무너뜨린 방송 사유화의 대표적 사례들에 대한 기초 조사 작업을 벌여왔다. 방송사유화 조사 특별위원회의 활동과 함께 '궁금한 이야기 WHY' 시리즈를 통해 관련 내용을 순차적으로 소개할 방침이다. 그 첫 순서는 안식년에 접어든 선임기자 박수택 조합원의 한 맺힌 이야기로 시작한다

 

회장실에 불려간 환경 전문기자

정년 퇴임을 앞둔 박수택 조합원은 자비를 들여 중국 연수를 다녀온 뒤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박 조합원은 ‘그 날’ 이후 고혈압 등 지병이 생겼으며, 지속적인 심리적 고통까지 겹쳐 2차 피해를 겪고 있다며 힘겨워했다.

이야기는 2009년 6월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조합원은 2003년 부장 승진 이후 보직을 스스로 거부하고 환경전문기자로 일선 취재 현장을 누비고 있었다.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정년 퇴직하는 게 그의 꿈이었다. 전문성을 갖춘 날카로운 비판으로 ‘환경의 날 국민포장’과 녹색언론인상 등 수많은 대외수상을 통해 SBS 보도의 위상을 높이는 데 적지 않은 공로를 세우기도 했다.

2009년 당시 박 조합원은 거센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던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보도를 연일 이어가고 있었다.  환경전문기자가 당연히 할 일이었고 그가 늘 해오던 일이었다.

그러던 2009년 6월 초, 박 조합원은 회장 비서실장으로부터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빨리 회사로 들어오라는 호출을 받는다.  윤세영 회장이 급히 찾는다는 이유였다.

박 조합원은 목동 사옥 20층 회장실에서 윤 회장과 단 둘이 마주 앉았다고 기억했다. 그리고 윤회장으로부터 40여 분 간에 걸쳐 4대강 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취재보도를 하지 말라는 취지의 압력성 발언을 들어야 했다고 밝혔다.

박 조합원의 낡은 취재수첩에는 당시 윤 회장의 발언 내용이 꼼꼼히 기록돼 있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윤세영 회장은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추진 논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발언을 이어간 것으로 나타나 있다.

 

기자의 취재수첩…4대강 비판 말라는 대주주의 노골적 압박

이 기록에 의하면 윤 회장은,

4대강 보 건설에 따른 수질 오염과 관련해 “물이 부패할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내가 볼 때는 밑의 모래를 다 준설해서…”라는 이명박의 지론을 그대로 주장한다.  

또한 4대강 사업은 “문화, 역사, 역사성을 창조하는 것”이며, “강 호안, 양안 정비에 투자하다 보면 이용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4대강에) 배가 들어와서 나쁠 게 뭐 있으며, 보를 만들면 뭐가 나쁜가?”라며 환경단체들의 4대강 반대 운동을 비판하기도 한다.

대화 말미에 윤 회장은 “ 박 부장에게, ‘믿고’ 내 생각을 이야기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리포트를 봤는데, 보를 쌓으면 수질이 망가진다. 좀 더 따져보고, 나한테 보고해주고..”라며 4대강 관련 취재를 보고하도록 지시하기도 한다.

또 “(보도할 때) 진정성, 객관성, 비판 기능은 당연한 것이나, 역사성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비판하려면 이런 것이 수반돼야 한다”며 사실상 4대강 비판보도를 하지 말라는 취지로 박 조합원을 압박한다.

 

4대강 보도 통제에 직접 나선 대주주 – 방송법, 그리고 소유-경영 분리 약속 위반

박 기자의 취재수첩 내용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대화의 모양새는 토론이었으나 내용은 온통 부당한 보도통제와 권력 옹호로 점철돼 있기 때문이다. 우선 SBS의 모든 의사결정권을 틀어쥐고 있던 대주주가 보도담당 임원이나 책임 간부도 아닌 특정 분야의 취재기자를 직접 호출해 압박한 것 자체로 보도준칙과 편성규약, 나아가 방송법 위반이다. 더구나 2009년은 SBS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뒤 채 1년 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SBS 구성원들은 재허가 파동 끝에 SBS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방송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대주주의 약속을 믿었지만 약속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주주는 노골적으로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통제하는 방송 개입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압박 그 후…4대강에 뛰어든 태영건설

문제는 그 이후이다. 박 조합원은 그 뒤로도 4대강 아류인 경인운하에 대한 비판 기사 등을 지속적으로 발제한다.  윤 회장의 직접 압박이 먹히지 않자, 면담 6개월 뒤 SBS 사측은 아무런 사전통보도 없이 박 조합원을 논설 위원실로 강제 발령낸다. 전문기자의 직함을 일생의 명예로 여기고 현장에서 정년을 맞겠다던 한 언론인의 소망을 잔인하게 짓밟은 것이다. 박 조합원 외에 4대강 사업을 비판적으로 취재하던 또 다른 기자도 이 즈음 내근부서로 갑작스레 발령이 난다. 4대강 취재팀이 사실상 해체돼 버린 것이다.

박 조합원 등에 대한 인사 보복 이후 ‘그나마 SBS’라는 세간의 평판을 듣던 4대강 관련 보도는 급변침한다.  이명박 정권의 입장을 그대로 내보내거나, 관련 행사를 일방 중계하며 최소한의 균형마저 무너진다.

노동조합은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이 그저 단순히 대주주의 개인적 취향에 의한 것이라거나, 조직원 길들이기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SBS의 4대강 관련 보도를 무력화 시킨 뒤 윤 회장이 지배하는 태영건설이 직접 4대강 공사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최근 국회 최인호 의원실의 협조로 건설업체들의 관급공사 수주 내역을 확보했다. 이자료에 따르면 윤 회장이 박수택 기자에게 보도통제 압력을 가한 이후 넉 달 여 만인 2009년 10월 낙동강 22공구 달성-고령 지구를 시작으로 모두 5곳에서 4대강 관련 공사를 수주한다. 공사금액은 1천억 원대를 훌쩍 넘는다.

이 뿐 아니라 태영건설은 4대강 연계 공사인 농업용 둑 높이기 공사 수주 과정에서 한화건설과 입찰 가격을 475억 원으로 담합한 혐의가 적발돼 지난 해 초 담당 임원이 벌금형을 선고 받기 까지 했다.  

결국 박수택 기자 등에 대한 대주주의 압력과 보복 인사 조치는 태영의 4대강 사업 수주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SBS의 비판보도 기능을 마비시키려 취해진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태영건설의 사적 이익을 위해 방송의 공적 책임과 언론의 사명을 뒤로 하고 국민의 자산인 전파가 대주주의 사유물로 전락한 대표적인 방송 사유화의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이는 이후 SBS에서 전면적이고 거리낌없이 벌어지는 방송 사유화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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