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윤창현입니다.

지난 2주간 발행된 노보를 보고 많은 분들이 충격과 허탈, 분노를 토로하십니다. SBS가 정말 이런 회사였냐는 탄식부터, 곪아 터질 것이 터졌다는 이야기까지 모든 분들의 시선이 노동조합의 행보로 모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는 오늘 어쩌면 제가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는 무게일 수도 있는 책임을 왜 지려 하는지, 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이유를 좀 설명 드리려 합니다.

먼저 ‘신뢰의 위기’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SBS가 큰 틀에서 ‘신뢰의 위기’와 ‘구조의 위기’라는 중첩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주주와 경영진이 지난 수년 간 ‘우리가 다른 지상파보다 낫다’, 혹은 ‘JTBC 따위가 방송이냐’ 라며 포장했던 SBS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종잇장처럼 얇은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많은 구성원들이 이미 느끼고 있던 이 사실은 지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 끊임없이 작동해 온 대주주의 불의한 지침과 통제들이 SBS를 방송답지 못하게, 언론답지 못하게 만든 핵심적 요인이었음이 지난 251호, 252호 노보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회사를 위한 것’, ‘허가 산업인 지상파가 어떻게 정권을 눈치를 안 보느냐’는 따위의 궤변으로 일관하며 SBS 방송 노동자들에게 재갈을 물려 온 행태가 결국 스스로 자기 발등을 찍어 신뢰 추락으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신뢰의 위기’가 심각한 것은 그저 방송독립, 공정방송 같은 거창한 명제 때문만은 아닙니다. 여러 차례 말씀 드린 것처럼 사회적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는 시청률은 그저 허망한 지표일 뿐이라는 게 경영실적을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습니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특단의 조치, 방송을 방송답지 않게, 우리를 우리답지 않게 하는 구태들을 일소할 변곡점을 하루 빨리 만들지 못하면 SBS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침몰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최근 공영방송 정상화를 촉구하는 시민집회에 모여드는 수천 시민들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했습니다. 과연 SBS가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도와줄 시민들이 있을까? 우리가 광장에서 외쳐대면 몇 명이나 도와줄까? 자신이 없었습니다.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창사 27년이 된 청년 방송사지만, 우리가 사회에 각인한 기억은 사익을 위해 방송을 이용하거나, 결정적 국면마다 국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등져 온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억들은 우리가 크고 작은 실수를 할 때마다 SBS 디스카운트로 증폭돼 더더욱 SBS를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지금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는 MBC와 KBS는 이 국면을 넘어서면 9년 간 온갖 고난을 함께 했던 동료애와 조직력이 역으로 무서운 에너지로 승화해 치고 올라올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돌파해 낼 다른 지름길은 없습니다. 그 근본적인 원인, 대주주의 방송사유화 고리를 완전히 단절해 썩은 뿌리를 끊어내는 것뿐입니다. 그저 선언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인적으로 청산할 것들을 완전히 청산해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SBS에 대한,완전히 새로운 사회적 기억과 인식들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구조의 위기는 SBS의 정상적 피돌기를 불가능케하는 핵심적 요인입니다.

이는 우리의 근로조건과 정상적인 콘텐츠 투자를 어렵게 해 조직의 경쟁력을 갉아 먹어 온 원인입니다. 조합이 그동안 사측이 제공한 자료들을 토대로 분석해보니, 지난 2008년 지주 회사 체제로 전환한 이후 대주주 지분이 높은 타 계열사로 부당하게 유출된 SBS의 수익이 최소 2,000억원 대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이는 단순히 SBS의 수익이 유출된 것만이 아니라,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감내하고 건강과 가족을 희생해 가며 SBS의 경쟁력을 위해 분투했던 우리의 노동이 완벽하게 착취당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밑 빠진 독처럼 줄줄 새 나가는 구조를 방치하고 땜질이나 하는 미봉책으로는 경쟁자들의 약진 속에 더 이상 콘텐츠 경쟁력을 유지할 재원도 마련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이런 ‘구조의 위기’ 정점에 또한 대주주가 있습니다. 콘텐츠 생산 기지인 SBS 중심의 제작, 투자, 유통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기보다 자본 흐름의 길목마다 터널을 만들어 사익을 추구해 왔습니다. 이번 기회에 콘텐츠 제작과 생산의 중심인 SBS에 생기를 불어넣을 사업구조와 수익구조의 근본적 개혁에 대한 전기를 마련해 내지 못하면 우리는 회복 불가능한 지경으로 내몰릴 것입니다.

다시 꿈을 꿉시다. 이제 우리가 바꿉시다.

이런 복합적 위기의 핵심에 있는 대주주에 대한 문제는 거론하는 것조차 불경으로 여겨지는 SBS의 성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성역을 허물지 않고는 SBS 전체 구성원들의 미래를 열어갈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습니다.

지난 6일 대의원회는 긴급히 소집한데다, 사외에서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가장 많은 대의원들이 참석했습니다. SBS 혁신에 대한 갈망과 요구들이 얼마나 절실한지 서로 확인한 자리였습니다.

참석 대의원들이 한 자 한 자 수정해 가며 만장일치로 채택한 대의원회의 결의문은 한 줄 한 줄이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선 “소유와 경영의 완전하고 실질적이며 불가역적인 인적, 제도적 분리를 확립한다.”는 결의의 첫 항은 지난 2004년 재허가 파동과 2008년 지주회사 출범 과정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담고 있습니다. 대주주의 선의를 믿고 독립경영, 방송 불개입의 구두약속들을 받아들였던 패착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또 다시 말뿐인 약속에 구성원들의 미래를 담보 잡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방송취재, 제작, 편성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완전히 확보한다.”는 둘째 결의는 시청자 신뢰 회복을 위한 기본적인 조치이며, 대주주의 부당한 개입과 통제에 의해 훼손된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필수적인 대목들입니다. 이 역시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면밀한 제도적 틀을 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셋째 항은 “우리는 대주주의 사익추구를 위한 착취적 지배구조를 배격하며 SBS의 사업 및 수익구조를 시청자 이익에 최우선을 복무할 수 있도록 근본적이며, 지속 가능하게 정상화한다.”입니다. 이 결의는 앞서 설명 드린 것처럼 소유-경영 분리의 틀이라고 도입해 놓고 사익을 위한 이익 빼가기와 SBS 착취 구조로 변질돼 버린 지주회사 체제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야 SBS에 숨통이 트인다는절박한 현실 인식을 반영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 결의문은 방송독립, 공공성 같은 당위의 언어들이 아닙니다.

한 구절 한 구절 SBS의 생존, 조합원의 미래를 담은 ‘간절함’의 언어들입니다.

조합원 여러분, 무기력과 책임회피, 체념과 수동이 지배하고 있는 SBS에 다시 숨결을 불어 넣읍시다. 유보했던 1등 방송의 꿈을 다시 만들어 나갑시다.

이제 우리가 바꿉시다. 조합과 함께, 조합원과 함께 걸어 길을 열어 갑시다.

Reset!! SBS!!

                  

      

2017. 9. 8

전국언론노동조합 SBS 본부장 윤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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