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윤세영 회장 부자의 사임 발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소식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감동도, 새로운 바람도 불러 일으키지 못한 채 앞으로는 사퇴하고 뒤로는 여전히 모든 것을 쥐고 가겠다는 껍데기 선언에 불과한 쇼였다.

노동조합은 물론 많은 구성원들이 이런 눈속임에 속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양치기 소년같은 소유-경영 분리 선언과 번복을 우리는 너무 많이 경험했다.

 

“대주주는 상법과 관련 법규에서 부여한 권한에 따라 이사회를 중심으로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이것을 소유와 경영의 분리로 해석해도 좋을 것입니다.”

<2004.2.20 방송전문경영인 시대 선언>

 

소유와 경영 분리를 천명한 지난 2004년 윤세영 회장의 발언이다. 이후 윤 회장은 SBS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얼핏 보면 지난 11일 윤 회장의 사임 담화와 유사하나 이는 무려 13년 전의 일이었다. 윤세영 회장은 이때 소유-경영 분리와 대표이사 사퇴를 선언했고 1년 뒤 물러났다. 하지만 윤 회장은 SBS 이사회 의장을 맡아 그 뒤로도 계속 SBS 경영을 좌지우지했다.

대주주의 ‘소유와 경영 분리’ 선언, (무늬만) 사퇴, 그리고 (슬그머니) 복귀는 SBS 역사에서 계속 반복돼 왔다. 이번에도 “또야?” 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이 카드를 제시할 땐 항상 대주주가 수세에 몰려 있었다. 당시는 재허가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2004년 재허가 조건으로 ‘소유-경영 분리’가 제시되면서 윤세영 회장이 택한 건 지주회사 체제였다. 진통 끝에 2008년 3월 SBS를 자회사로 한 SBS 미디어홀딩스라는 지주회사가 출범했다. 대주주는 홀딩스의 지분을 갖지만 SBS는 전문경영인이 책임지고 양질의 콘텐츠 생산에 전념하겠다는 취지였다.

불과 1년 뒤 윤석민 부회장이 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로 취임해 실권을 장악하면서 ‘경영 세습’은 확실하게 진행됐고 홀딩스를 통한 SBS의 방송과 경영에 대한 개입과 간섭은 지난 노보에서도 드러났듯 노골적으로 이뤄졌다.

윤세영 회장은 또 사퇴했다.

 

새로운 리더십을 위해 저는 2 주총 이후 SBS 회장과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앞으로 SBS 그룹의 명예회장으로서 그룹 발전의 조력자 역할에 충실할 것입니다

<2011 신년사>

 

명목상의 ‘소유-경영 분리’는 지주회사 체제로 해놨기 때문에 이때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라 결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회장은 3년여 뒤인 2014년 11월 슬그머니 ‘명예’ 자를 떼면서 복귀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소유 경영 분리’라는 선언 자체를 폐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저는 제너럴리스트로서 경영의 최종 책임을 지고자 SBS 그룹 지주회사의 이사회 의장에 취임합니다.” <2016.3.24 SBS 미디어홀딩스 이사회 의장 취임사>

 

지난 해 3월 윤세영 회장은 아예 책임 경영을 강화한다며 SBS 미디어홀딩스 이사회 의장으로 완전히 복귀한다. 소유-경영 분리 약속을 완전히 폐기한 것이다.

그런데 하루 뒤 SBS 이사회 의장으로 취임했던 윤석민 부회장은 정작 2004년 윤세영 회장의 소유-경영 분리 선언을 계승하겠다며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말을 한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란 말인가.

 

본인이 이사회 의장에 취임하더라도, 2004 2 윤세영 회장께서 선언하신 것처럼 SBS 경영진의 권한과 책임에는 변함이 없으며, 방송전문 경영인 제도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선언의 철학과 정신을 계승할 것입니다.” <2016.3.25 SBS 이사회 의장 취임사>  

 

그러나 이 역시 또 한 번 구성원을 기만하는 거짓이었음이 이미 여러 사례들로 증명됐다.

노동조합이 윤세영 회장과 윤석민 부회장의 사퇴를 선의로 바라볼 수 없는 건 바로 SBS의 지난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더군다나 “상법에 따른 이사 임면권만 행사”한다는 담화문의 조건은 지주회사 출범 이후 불법적으로 SBS를 지배해왔던 걸 상황이 잠잠해지면 다시 되풀이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읽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윤세영 회장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이사임면권’으로 앉힌 박정훈 사장은 윤 회장 담화 발표 과정에서 조합을 철저하게 기만했다. 지난 주말 조합은 박 사장에게 회장과의 공식면담을 주선하도록 요청했고, 사장도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으나 정작 다음 날 조합의 거듭된 메시지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조합은 윤세영 회장의 일방적 담화 발표를 사내 방송을 통해 접했으며, 대화를 주선하겠다던 박정훈 사장은 조합을 철저하게 농락하고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농간으로 덮어 버렸다.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

대주주의 오래된 거짓말에도, 사장의 거듭된 농간에도 더 이상 속을 노동조합이 아니다. 대의원 투쟁 결의문에 담았듯 “소유와 경영의 완전하고 실질적이며 불가역적인 인적, 제도적 분리”만이 답이다.

 

조합은 조합의 길을 담담하게 것이다. RESET!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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