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은 왜 협상 결렬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는가?

대주주의 일방적 사임에서 실무 협상 결렬까지

지난 달 11일 대주주의 사임 선언은 혼란의 출발점이었다.

노동조합과 어떠한 사전 협의나, 통보도 없이 진행된 사임 발표 이후 대주주는 조합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조합은 윤세영 회장에게 책임 있고 질서 있는 SBS 재편을 위해 조합의 안을 검토하고 협상할 것을 요구했으나, 윤 회장은 “솔직히 프리미엄 받고 경영권을 팔고 싶다”며, 조합의 협상안 문서를 받는 것조차 거부했다.

 

9월 11일 윤 회장 “솔직히 경영권 팔고 싶다”...노조 “협상 통해 소유-경영 분리 제도화”  

조합 집행부는 ‘주식 팔고 떠나면 그만’이라는 식의 대주주 발언에 큰 충격을 받았으나 구성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조기에 조직을 안정시키려면 대주주와의 협상을 통한 SBS 재편 계획이 수립돼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틀 뒤인 13일 김희남 경영본부장을 통해 조합의 Reset!SBS!! 방안을 대주주 측에 전달했다.

9월 15일, 대주주 측은, 조합이 제시한 ‘의결권 법인 신탁(상법 368조 3항에 근거)’과 ‘사장추천위원회 구성’은 수용할 수 없으며, 대신 ‘주주총회 전 사내이사 후보 선정 제도 개선을 노조와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내용의 문서를 조합에 보내왔다.

 

9월 15일 대주주 측 “대표이사 포함 이사 전원 임명동의제 “제안 

이에 대해 윤창현 SBS 본부장은 대주주를 대리한 김희남 경영본부장에게 “대주주가 이사 임명동의제를 시행하자는 것이냐? 사내 이사 전체, 즉 대표이사(사장)를 포함하는 방안이냐?”고 확인했으며, 이에 김 본부장은 “회장님이 ‘세상이 바뀌었으니 구성원이 반대하는 사람을 경영진으로 뽑을 수 없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대표이사(사장)도 이사회 멤버이므로 당연히 임명동의를 받는 것이다, 과반으로 동의할 것인지 등은 추가로 논의하면 되는 것이고.”라고 사측의 입장을 밝혔다.

노동조합은 인적 청산과 사업구조 재편에 대한 약속 등이 보장된다면, 의결권 신탁이나 사추위 제도가 아니더라도 대주주 측이 제안한 대표이사를 포함한 사내이사 임명동의제 도입을 논의해 볼 수 있다는 내부 입장을 정리해 18일 대주주 측에 문서를 전달했다.

이후 노동조합 대표자와 윤세영 회장의 면담이 이뤄질 때까지, 대주주 측은 여러 경로를 통해 조합이 지목한 문제적 인사들의 10월 내 청산과 사내이사 전원에 대한 임명동의제 도입에 동의한다는 뜻을 거듭 조합에 전해왔다.

 

9월 25일 대주주 면담/ 노조, 의결권 신탁 및 사추위 구성 등 대폭 양보

윤창현 본부장은 이러한 대주주의 입장을 믿고 윤세영 회장과 9월 25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윤 본부장은 지주회사 출범 이래 SBS의 이익에 반해 콘텐츠 수익을 부당하게 유출시키고 방송 독립을 저해해 온 전·현직 경영책임자들을 10월 중에 청산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윤 회장은 기존 입장과 달리 11월 정기 인사에 맞춰 일부를 정리하고 현재 경영 책임을 맡고 있는 일부 인사는 윤석민 부회장과의 협의를 거쳐 11월 중에 정리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9월 25일 윤 회장 “이사 9명 뽑을 때 과반이든, 2/3이든 조직원이 반대하는 사람은 재고”

“11월 정기인사 맞춰 인적 청산” 약속

조합은 소유-경영 분리의 완벽한 제도화가 우선 과제라고 판단해 박정훈 사장에 대한 즉각 사퇴 요구는 철회하고 나머지 전직 사장들에 대한 청산도 윤 회장의 제안대로 11월 중에 하는 것으로 양해했다.

윤세영 회장은 이어 “전체 이사가 9명 아니냐, 내부 이사 5명, 사외이사 4명. 그 9명을 선정하고 그럴 적에 조직원들이 정말 이 사람은 안되겠다… 과반수 이상이든 2/3 이상이든… 그러면 우리가 정말 재고를 해서 다른 사람을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내가 (이사임명동의제를) 이야기 한 것이라고.”라며 대표이사를 포함한 이사진 전원에 대한 임명동의제 도입을 먼저 제안했다.

이에 대해 윤창현 본부장은 사내 이사 전원에 대한 임명동의제 시행을 일단 수용했다. 다만 ‘사외이사에 대한 임명동의는 경영투명성을 감시하고자 하는 제도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부정적 입장을 설명하고 실무협상에서 이 부분은 추가 논의하기로 정리했다. 

또한 사업구조 정상화를 위한 방안에 있어서도 실무 협상 과정에서 큰 틀의 합의를 구체화하자고 대주주와의 협의를 마쳤다.

 

9월 26일 실무협상 착수/ 대주주 측의 말 바꾸기 ”사장은 임명동의에서 빼달라”

회장 면담 다음 날부터 열린 실무협상에서 사측은 갑자기 사장(대표이사)을 임명동의 대상에서 빼달라고 요구했다. 대표이사가 당연히 이사 임명 동의제에 포함되며, 사외이사를 포함해 이사진 9명 전원을 임명동의 대상으로 하자던 대주주의 약속을 부정한 것이다. 대주주와의 협의 과정에서 한 마디도 거론된 적이 없는 안이므로 조합은 받아 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9월 29일 실무 협상 결렬 / 판을 엎은 대주주 측 “이사임명 동의제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

스스로 제안하고 스스로 부정

이윽고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29일 열린 마지막 실무 협상에서 대주주와 사측은 완전히 입장을바꿨다. 대주주 측 협상 대표자는 “이사 임명 동의제는 주주의 인사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법적인 문제가 있어서 수용할 수 없다”며 윤세영 회장이 제안했던 안이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곧바로 “보도와 교양, 편성 등은 임명동의제를 수용할 수 있다”며 앞뒤가 맞지 않는 안을 던졌다. 스스로 제안한 이사 전원 임명동의제를 불법으로 규정하더니 방송 현업 관련 책임자의 임명 동의는 받겠다는, '아니면 말고'식의 협상안이었다.

또한 ‘대주주가 무엇을 약속했느냐? 아무것도 약속한 게 없지 않느냐?’며 조합 대표자와 대주주 간의 면담과 합의 내용 자체를 통째로 부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사업구조 개편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방향성이라도 설정하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조합의 입장에 대해 대주주 측은 실무 논의만 계속하자는 모호한 태도로 의지 없음을 드러냈다.

조합은 대주주와 사측이 진정성 없는 태도로 자신들이 제안한 안조차 부정하고 모호한 말장난으로 시간을 끌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이상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협상 결렬 직후 박정훈 사장은 윤 회장의 말이라며 “노조에 충분히 줬다, 더 줄 것이 없다”는 입장을 경영진과 간부들에게 전달했다. 

노동조합은 대주주의 진의를 확인하기 위해 추석 연휴 기간 윤세영 회장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윤 회장은 현재까지도 조합과의 통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왜 협상 결렬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는가?

 

1) SBS 구성원을 기만한 대주주와 사측의 협상 태도

SBS의 명운을 건 중요한 협상이 결렬된 책임은 오롯이 대주주와 사측에 있다.

노동조합은 이미 대주주 의결권의 SBS 법인 위탁과 사장추천위 구성 등 핵심 요구안을 양보하고 대주주가 먼저 제안한 ‘이사 전원에 대한 임명 동의안’을 전제로 협상에 착수했다.

하지만 정작 실무 협상이 시작되자 대주주와 사측은 임명 동의 대상 축소를 요구하더니, 급기야는 자신들이 먼저 제안한 이사 전원 임명동의제가 ‘사실은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윤세영 회장의 약속마저 부정했다.

대주주와 조합 대표자간의 합의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그것도 SBS의 미래가 걸린 협상 과정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뒤엎어 버리는 그들의 진정성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2) 임명동의제 말 바꾸기는 소유-경영 분리 무력화 의도

노동조합이 협상 결렬을 선언한 이유가 단순히 대주주와 사측이 말을 바꿨기 때문만은 아니다. 설혹 그들이 신의 없이 말을 바꿨다 해도 SBS의 경영 혁신과 재편에 도움 되는 길이라면 조합은 기꺼이 수용하고 논의할 수 있다.

사장 등 핵심 경영진 장악해 대주주 입김 관철하겠다는 의도

하지만 그렇게 입장을 뒤집으면서 내놓은 대주주와 사측의 안은 지난 10년 간 SBS를 망가뜨린 경영 방식과 문제 인사들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지난 10년 간 대주주가 구성원 동의 없이 선임한 사장들은 부패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언론 부역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거나, SBS 콘텐츠 수익 빼돌리기 등 대주주의 방송 사유화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노동조합은 그들을 인적 청산 1순위로 지목하고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사장을 임명동의 대상에서 빼자는 주장은 SBS 사장을 과거처럼 대주주의 개인 비서로, 사익추구의 도구로 삼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경영투명성 보장 위해 사내이사 전원 임명동의 불가피

임명동의 대상에 경영본부 등 핵심 분야의 이사들을 포함시킬 수 없다는 사측의 주장에서 이런 의도는 더욱 분명해진다. 지주회사 체제 아래 콘텐츠 수익 빼돌리기로 SBS에 피멍이 드는 동안 경영본부장 등 돈을 다루는 핵심 임원들은 온갖 불·탈법을 감행하며 대주주의 사익 극대화 요구에 순응해 왔다. SBS의 재편과 수익 구조 정상화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신뢰와 동의를 얻은 이사진이 경영 전 분야를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대주주와 사측이 입장을 바꿔 경영 핵심 분야의 이사진을 임명동의 대상에서 빼자고 주장하는 것은 SBS의 경영 투명성과 수익 구조 정상화를 실현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다. 소유-경영 완전 분리를 선언한 대주주의 말이 식언이었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3) 협상깨기에 올인한 인사들… 청산해야 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 졌다

노동조합은 대주주의 일방적 사임부터 협상 결렬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에서 끊임 없이 조합을 음해하고 구성원들 사이를 이간질하며 자신의 안위를 지키겠다는 청산 대상자들의 무모한 행동을 접해 왔다.

이미 밝힌 것처럼 대주주에게 전달한 RESET!SBS!! 계획안이 조합원들에게 설명도 하기 전에 방통위 상임위원들에게 유출되는가 하면 일부 인사들은 정치권 관계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조합을 음해하고 대주주 구명 활동을 벌이고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일례로 박정훈 사장은 지난 달 하순 청와대와 가까운 여당 인사를 접촉해 ‘노동조합이 너무 한 것 아니냐’는 음해성 메시지를 퍼뜨렸다고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이 증언했다.

 

전-현직 일부 경영진, 정관계에 노동조합 음해 시도

전-현직 일부 경영진들은 앞으로는 협상하자고 제안하면서도 뒤로는 자신들이 외부 세력에게 노조를 음해해 놓고 이를 마치 정부 여당의 입장인 것처럼 포장해 사내에 다시 유포하는 저열한 방식으로 Reset!SBS!!를 염원하는 구성원들의 의지를 꺾으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또한 청산 대상으로 지목된 일부 사측 인사들은 ‘인적 청산은 없던 일로 하기로 노조가 동의했다’는 등의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며 협상을 교란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특히 이웅모 SBS 미디어홀딩스 사장의 경우, 아무런 법적 권한도 없는데도 직·간접적으로 SBS의 노사 협상 과정에 개입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노동조합이 복수의 사측 관계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이 사장은 수시로 사측의 협상 전략 수립에 관여하고 SBS 간부들에게 조합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문하기까지 했다. SBS에 법적 지위 없는 이웅모 사장의 개입은 대주주와 구성원들 사이를 끊임없이 이간해 청산 대상인 자신의 살 길을 보장받겠다는 치졸한 시도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임명동의 말 바꾸기’ 배후에 적폐인사 입김 의심

노동조합은 대주주와 사측이 갑자기 입장을 바꿔 임명동의제 자체를 부정하고 대상을 대폭 축소하자는 상식 이하의 주장을 내놓은 배경에는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을 자신이 없는, SBS 적폐 인사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본다. 

SBS를 농단해 온 자들이 여전히 대주주의 눈과 귀를 가린 채 조직의 건강한 재편을 위한 협상판을 흔드는 한 합리적 협상이 이뤄질 리 만무하다.

 

대주주와 사측은 이성을 회복해야

대주주와 사측은 노동조합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선동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파기한 협상안은 조합이 제안한 것이 아니라 대주주와 사측이 먼저 내놓았던 안임을, 자신의 입장을 스스로 뒤엎은 것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혀 둔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우리 내부의 곪디 곪은 적폐를 청산하고 책임이 무거운 경영책임자들이 스스로 거취를 정리할 통로를 열어 주고자 했던 조합의 노력과 배려는 대주주와 사측의 기만과 책임회피에 의해 철저하게 농락 당했다.

조합은 내일(11일) 저녁 긴급 대의원 간담회를 통해 전·현직 경영진들의 불·탈법적 경영 행위 내역을 설명하고 법적 조치를 포함한 향후 대응 방안과 일정을 공유할 방침이다.

마지막으로 대주주와 사측에 요구한다. 지금이라도 이성을 회복하고 노동조합과 구성원들이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 협상안을 가지고 대화에 나서라!

 

RESET!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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