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같이 느껴진 한 달이었습니다.

RESET! SBS!를 결의하고 싸움을 시작할 때만 해도 창사 이래 늘 꿈같이 존재했던 ‘소유-경영의 완전한 분리’, ‘거스를 수 없는 방송의 독립성 확보’와 ‘망가진 수익 구조의 정상화’라는, 이 거대한 목표에 얼마나 근접할 수 있을지 저 자신도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방송환경 속에 무너진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면, 그리고 왜곡된 수익구조를 이번에 바로 잡지 못하면 SBS라는 배가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고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저와 SBS 본부 집행부로 하여금 물러설 수 없는 걸음들을 옮기게 만들었습니다.

대주주의 사임 발표 이후 ‘그만하면 된 것 아니냐’, ‘조합이 어디까지 가려고 하느냐’는 비판도 제기됐고 ‘노동조합이 조직에 혼란을 조장한다’는 마타도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진퇴만 있을 뿐 독립경영과 수익 구조를 정상화할 아무런 조치와 합의도 없는 상태로는 아무것도 RESET할 수 없었고, 싸움을 멈출 수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저는 이 싸움의 과정에서 조직의 속살에 밴 고름이 암덩어리로 변하기 전에 짜내야 하는 고통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청소하려면 먼지가 날리는 것이 당연할 일이기도 합니다.

창업주와 대주주에 대한 인간적 연민과 미안함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SBS가 환골탈태해야, 새롭게 출발해야 창업주에게도, 대주주에게도 결국은 미래가 있는 것이고 명예도 보장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노동조합의 투쟁이 지속 가능한 SBS를 만들기 위한 충심이자, 조직에 대한 애정이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SBS는 물론 SBS A&T 사장을 포함하는 임명동의제 합의는 분명 역사적 성과입니다. 민방은 물론 공영방송에서도 시행된 적이 없는 혁신적 제도의 일환입니다. 적어도 제도적 측면에서는 SBS가 이제 1등 방송의 조건을 갖춘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제도만으로 저절로 무너진 신뢰가 돌아오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동안 사내에서 벌어진 온갖 부조리와 패착을 대주주와 경영진의 탓으로 돌리며 SBS와 SBS A&T의 미래를 술자리 안줏감으로 삼아 왔던 방식과 완전히 결별해야 합니다. 저와 조합원들께서 먼저 면피와 책임회피, 복지부동 속에 입으로 비판만 하는 낡은 조직문화를 허물어야 합니다. 대주주가 사임하고 대표이사 사장을 전 사원의 동의절차를 거쳐 선임하게 된 이상, SBS와 우리 자신의 운명은 오롯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조합원 스스로의 책임이 됐기 때문입니다. 

저와 SBS 본부 조합 집행부는 이번 합의의 소중한 성과를 평가하되, 도취되지는 않겠습니다.

차분하게 조직 내 곳곳에 남은 낡은 질서들을 정리하고, 진정한 혁신을 이루기 위한 세부 과제들을 점검해 가겠습니다. 방송 사유화 조사 특별위원회의 활동은 과거의 교훈을 잊지 않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백서로 정리해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또한 이번 합의의 빈 구석을 채워야 할 추가 논의에도 구성원들의 미래를 최우선에 놓고 신중하게 임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이제 SBS와 SBS A&T 조합원 여러분께서 RESET의 주인공으로 나서 주십시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조직의 미래이자 주인이라는 책임감을 저와, 조합과, 그리고 회사와도 나눠 주십시오.

다시 신발끈을 조이고 RESET! SBS의 긴 여정에 함께 해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RESET! SBS!!

 

윤창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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