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근절 가능했던 ‘상품권 페이’…감사 지적 무시하고 강행   

최근 사회적 논란이 거셌던 ‘상품권 페이’ 문제는 성과만능주의를 앞세운 해묵은 경영 철학이 만든 괴물이다. 나날이 가중되는 경영진의 제작비 절감 압박 속에 일선 제작진은 모자란 제작비를 상품권으로 충당하며 근근이 버텨왔고, 이익만 내면 그만이라는 성과만능주의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의 문제적 행태에 멋대로 면죄부를 뿌려왔다.

노동조합 파악 결과, 외부인력에 대한 임금 일부를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관행이 SBS 자체 기준을 어긴 행위라는 점이 지난 2013년과 2015년 사내 감사에서도 반복적으로 지적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내 감사에서도 지적할 만큼 문제 있는 관행이었지만, 이후에도 아무것도 변한 건 없었다는 얘기다. 감사 지적을 일선 제작 현장과 경영 지침에 반영했더라면 문제가 된 ‘상품권 페이’ 같은 부조리는 좀 더 일찍 바로 잡혔을 것이 자명하다.

감사 업무 독립성 강화로 문제적 경영 관행 근절해야  

이는 감사 실무를 맡은 윤리경영팀이 경영책임자인 사장 아래 배속돼 독립성과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성과만능의 경영 관행에 제동을 걸고 부조리를 근절할 권한이 없고 의지마저 갖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감사 기능의 독립성 확보는 더 이상 미물 수 없는 과제라는 게 재차 확인됐다. 이에 노동조합은 노사협의회 등을 통해 윤리경영팀을 감사위원회 산하로 독립 배치해 투명성을 강화하자는 제안을 수 차례 했으나 사측은 여전히 ‘효율성’을 앞세워 반대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사측의 재고를 촉구한다.

성과만능주의 경영 철학 폐기 불가피... 지속가능한 경영 전략 재구성해야

사측은 필연적으로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상품권 페이’ 문제를 ‘파문의 한 가운데 있던 당사자가 퇴사했으니 됐다’는 식으로 적당히 마무리하지 않기 바란다. “제작 PD 한두 명의 문제가 아니라 SBS 전체가 자성하고 바로 잡아야 할 사안”이라는 1월 18일 사측의 발표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문제의 뿌리인 ‘성과만능주의 경영 철학’과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 SBS 방송노동자들과 외주, 비정규 인력을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과 부당한 관행으로 내몰아야 겨우 이익을 낼 수 있는 낡은 경영 전략을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 이번 논란을 기회 삼아 촛불혁명 시대에 걸맞는 SBS의 경영철학과 비전, 제도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SBS 방송노동자들도 ‘갑질’ 책임 피할 수 없다.

‘상품권 페이’와 여타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드러난 이른바 ‘방송 갑질’ 관행의 책임을 오롯이 경영진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일선 현장의 최종 실행자로서 ‘갑질’의 당사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내외부 인력의 협업 체계가 구축된 방송 제작 특성상 다수의 SBS 조합원들은 현장의 권력 관계와 위계적 질서 속에 ‘갑’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오랜 방송계의 관행과 구조 속에 우리 조합원들이 불가피하게 노동착취와 차별적 제도의 실행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면죄부를 줄 순 없다. 현장의 권력 관계를 이용해 능동적 가해자로 온갖 형태의 ‘갑질’ 당사자가 되길 주저하지 않았던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져 왔음을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갑질 근절과 제도 개선을 위한 내부 자성 절실

촛불혁명 이후 사회 변화의 흐름은 불공정과 차별에 대한 근본적 시정을 일관되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요구와 배치되는 경영 전략은 물론이고 제작 현장의 개별적인 ‘갑질’ 관행 역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지상파 독과점 시대에 횡행했던, 우리 안의 철 지난 선민의식과 기득권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음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일선 제작 현장에서부터 방송 지원 업무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 걸쳐 부당한 ‘갑질’ 관행과 완전히 결별하기 위한 조합원들의 깊은 자성과 지속적인 개선 노력이 절실하다. 이는 사회적 신뢰 없이 존립할 수 없는 SBS 방송인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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