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자는 사표낸 뒤 거대 통신사 이적설… SBS는 수십억 대 손실 떠안아

지난 주 SBS의 신사업 영역을 담당해 왔던 김 혁 전 미디어비지니스센터장이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떠났다. 조직 내에서는 지상파의 급속한 위축 속에 SBS의 미래 먹거리인 신사업을 전담하다시피 했던 책임자가 떠나면서 적잖은 파문이 일고 있다.

사측에 따르면 김 전 센터장이 퇴사한 배경의 핵심은 그가 추진해 왔던 엔터포털 구축 등 각종 신사업이 하나도 예외 없이 암초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NHN 엔터테인먼트와 합작투자한 엔터포털 사업 등 여러 영역에서 잠정적으로 드러난 것만 70억 원대의 손실이 빚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범 전부터 빈 깡통… 허공에 뜬 엔터포털 사업

출범도 못하고 문 닫을 위기에 놓인 엔터포털 사업을 살펴보자.

사측은 ‘네이버가 온라인 포털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가 지속되면서 SBS의 콘텐츠 수익 확보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대안을 모색해 왔다. 김 전 센터장은 아예 네이버에 대항하는 방송사업자들 중심의 새로운 포털을 구축하는 방안으로 NHN과 합작한 엔터포털 구상을 내놨다. 일이 계획대로 진행돼 2020년에 온라인 광고 시장 점유율 0.5%만 달성해도 470억원대의 영업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장밋빛 사업계획서가 사내에 나돌았다.

타 방송사업자 참여 거부… 예견된 좌초 위기

하지만 경쟁력이 입증되지 않은 새 포털에, 그것도 SBS가 주도적으로 만든 틀에 다른 방송사업자들이 선뜻 뛰어들 가능성은 처음부터 높지 않았다. 결국 타 지상파 방송사업자는 최근 엔터포털 불참을 공식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조합은 타 방송사업자들의 불참으로 인한 사업 무산 가능성을 투자 결정 이전에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전 센터장은 콘텐츠 사업자 연합체인 SMR(스마트미디어렙)을 통해 콘텐츠를 공급받을 수 있다며 위험 극복을 자신해 왔다.

하지만 법적으로 SBS는 SMR에 아무런 권리도 없는 별개의 사업체다. 콘텐츠 사업자도 아닌 지주회사 SBS 미디어홀딩스가 SBS의 사업기회를 가로채 대신 SMR의 주주 자리를 꿰차고 있기 때문이다. SMR 설립을 주도했던 사측과 김 전 센터장은 SMR의 다른 주주인 MBC 등으로부터 양해를 얻었다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법적으로 SMR 소속도 아닌 SBS가 주도하는 엔터포털에 왜 콘텐츠를 공급하냐’고 다른 SMR 회원사가 시비를 걸면 SBS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언제라도 직면할 수 있다. 김 전 센터장 등 일부 인사들이 네이버를 잡겠다며 한 때는 SBS 홈페이지까지 완전히 없애고 올인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쳤던 엔터포털은 첫 발을 떼기도 전에 ‘빈 깡통’이 될 예고된 운명이었던 것이다.

코나드(CONAD), KCP 등 타 신사업도 손실 누적

SBS 콘텐츠와 e-커머스를 연계해 새로운 수익사업으로 키우겠다던 코나드와, 넷플릭스처럼 미주 콘텐츠 판매 방식을 OTT 방식으로 전환해 유통망을 혁신하겠다던 KCP(코리안연합콘텐츠 플랫폼)도 적자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 같이 머지 않은 미래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처럼 요란하게 추진하던 신사업들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노동조합은 좌초 위기에 빠진 문제적 사업들의 추진과정을 보며 구체제 하에서 밥먹듯 이뤄진 적폐적 경영 행태를 다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투자 위험성 문제제기 묵살… 검증 부실로 손실 자초

우선 대주주 한 사람만 승인하면 내부 구성원들의 어떠한 우려와 위험 경고도 묵살하면 그만이라는 마구잡이식 투자 결정 자체가 그것이다. 노동조합은 지난 해 7월 4일 노보와 2분기 노사협의회 등을 통해 창사 이래 최대규모 투자라고 불리는 몇몇 신사업이 대주주와 일부 책임자들의 독단적 의사결정을 통해 사내 투자 심의 절차를 거수기로 전락시키며, 반대의견들을 깔아뭉개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부실화 가능성을 여러 차례 사측에 경고했다. 겉으로는 부서간 협의와 투자 심의를 거쳤으나, 이미 모든 결정은 내려져 있었으며 절차는 요식행위가 돼 버렸다. 위험 회피를 위한 아무런 장치나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졸속으로 사업을 추진하다가 뻔히 보이는 돌부리에 걸려 무릎이 깨진 게 지금의 SBS가 처한 상황이다.

투자 손실 책임은 누구에게 묻나?

또한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경영 행태는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일선 제작 현장의 사원들에겐 제작비 절감을 강조하며 마른 수건 짜내듯 하면서도 부적절한 투자 결정을 주도하거나 승인한 현 경영진은 왜 책임지지 않는가. 대주주와 박정훈 현 사장 등 당시 이사진 대부분은 노조와 노조 추천 사외이사 등 안팎의 문제제기를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문제적 투자 결정을 연발해 SBS에 막대한 손실을 유발한 책임을 피할 수 있는가. 아울러 김 전 센터장이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난장판이 된 신사업 분야를 재정리하고 수습하기는커녕 홀연히 사표를 던지고 잠재적 경쟁자인 거대 통신사에 자리를 마련해 떠나는 자의 행태는 부도덕한 책임 회피일 뿐이다.

한 사람 빠지니 신사업 전체 휘청… 사람 안 키우는 경영의 귀결

더욱 심각한 것은 지난 수년간 SBS의 미래 먹거리로 그 중요성이 널리 인식돼 온 신사업 분야의 의사 결정이 사퇴한 대주주와 퇴사한 김 전 센터장에 의해 배타적이고 독점적으로 이뤄진 탓에 실패의 경험조차 SBS 내부에 제대로 축적되고 있지 못한 현실이다. 건전한 사내의 논의와 콘텐츠 제작 현장의 경험이 조화를 이루고 치열한 토론과 검증 속에 과감하되 신중한 결정이 이뤄지기보다 대주주와 밀착된 특정인이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미래 사업 전략을 독단적으로 운영한 데 따른 폐단이다. 김 전 센터장의 무책임한 퇴사 이후 적절한 후임자를 찾지 못해 해당 투자 결정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사를 미디어비지니스센터장 직무대행으로 임명할 수밖에 없었던 사측의 고육지책은 이 같은 상황을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경영 적폐 완전한 청산 계기로 삼아야

노동조합뿐 아니라 SBS 구성원 누구도 조직의 미래를 위해 온라인 포털 전략 등 사업 다각화의 필요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같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앞서 지적한 적폐적 경영 행태를 시급하고 완전하게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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