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꽃노동법률사무소 대표 노무사 김유경

7월, 3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한 주 최장 52시간 근로시간제 시행을 코앞에 두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이 앞다퉈 ‘재량근로제’, ‘선택적·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 방안을 내놨다.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에서 정하고 있는 이들 ‘유연근로 시간제’는 요건을 갖추면 법정근로시간의 틀을 일정 정도 벗어나 일, 주, 월 단위의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배분해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사용자들은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업무 효율을 높인다는 미명으로 이들 제도를 대안으로 내세운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방송 업종에서의 유연근로시간제는 근로시간 특례가 존재했던 때의 근무형태를 유지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1. 재량근로제- 노사 합의로 장시간 노동에 따른 가산수당 지급 의무 면제

 

근기법에 규정된 ‘재량근로제’는 아래와 같다.

근기법 제58조[근로시간 계산의 특례]

③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업무 수행 방법을 근로자의 재량에 위임할 필요가 있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는 ⓒ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로 정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본다. 이 경우 서면 합의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명시하여야 한다.

1. 대상 업무

2. ⓓ사용자가 업무의 수행 수단 및 시간 배분 등에 관하여 근로자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아니한다는 내용

3. 근로시간의 산정은 그 서면 합의로 정하는 바에 따른다는 내용

 

재량근로제의 핵심은 신기술 개발이나 창작물을 제작하는 업무 등은 업무의 성질상(ⓐ) 업무 수행 방식을 근로자가 재량대로 정할 필요가 있고(ⓑ), 업무의 질 등에 따라 임금을 정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전제 아래 실제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계산하지 않고 노사가 서면 합의로 일정하게 정한 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방송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재량근로제’를 근로시간 단축의 0순위 대책으로 고려 중인데, 이는 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에 ‘신문, 방송 또는 출판 사업에서의 기사의 취재, 편성 또는 편집업무’와 ‘방송 프로그램·영화 등의 제작 사업에서의 프로듀서나 감독 업무’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일단 노사가 PD 업무에 대한 근로시간을 19시간으로 서면 합의한다면, 실제 해당 PD가 합의 이후 매일 11시간씩 일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노사가 정한 9시간을 초과한 실근로시간 2시간에 대해서는 임금을 아예 청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근로시간 특례에 따라 사실상 무한정 연장 노동이 허용됐던 SBS에서 재량근로제를 도입한다면 어떤 상황이 예측 가능한가? 근기법 제58조 제3항에는 노사가 ‘법정근로시간 한도 내에서’ 1일 또는 1주일의 노동시간을 정해야 한다는 명시적 규정은 없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방송 업종이 근로시간 특례에서 제외된 마당에 노사가 곧 시행될, 단축된 근로시간의 한계를 크게 벗어난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정할 수는 없다고 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노사가 재량근로제를 실시한다면 주 최장 52시간 범위 내에서 1일, 1주당 근로시간을 정하게 될 것인데 인력 확충이나 사전제작 시스템 등이 갖춰지지 않은 현실에서 실제 노동시간이 기존처럼 유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 설명대로 특례업종에 포함된 상황에서는 그나마 실제 연장근로에 대한 수당 청구가 가능했으나, 재량근로제가 도입되면 서면상 명시된 시간 외에는 추가 수당 청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한 마디로 재량근로제는 노사 합의로 합법을 가장한 채 수당 청구조차 불가능한 실근로시간을 늘릴 수 있는 제도인 셈이다. 고용노동부가 조만간 도입 금지 지침을 내릴 포괄임금제보다 악용될 소지가 더 큰 제도이다.

덧붙여 ⓓ에서 사용자가 노동자에 대해 업무 수행 수단과 시간 배분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는데, 실시간으로 집단 협업이 이뤄지는 방송에서 과연 이것이 가능할 지도 의문이다.

 

2. 3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연속 9주간 주 최장 64시간 노동, 법 개정 취지 무력화

 

‘탄력적 근로시간제’ 시행단위는 ‘2주’ 또는 ‘3개월’ 중 선택 가능한데, 방송사들이 주로 고려 중인 ‘3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근기법 제51조[탄력적 근로시간제]

②사용자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에 따라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정하면 ⓐ 3개월 이내의 단위기간을 평균하여 1주 간의 근로시간이 제50조 제1항의 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특정한 주에 제50조 제1항의 근로시간을, 특정한 날에 제50조 제2항의 근로시간을 초과하여 근로하게 할 수 있다. 다만, 특정한 주의 근로시간은 52시간을, 특정한 날의 근로시간은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1. 대상 근로자의 범위

2. 단위기간(3개월 이내의 일정한 기간으로 정하여야 한다)

3. 단위기간의 근로일과 그 근로일별 근로시간

4.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서면 합의의 유효기간)

 

쉽게 풀어보면, 최대 3개월 내에서 이 제도를 시행할 ‘단위기간’을 정하고(ex> 3개월, 2개월...), 그 정한 단위기간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주당 40시간을 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일이 몰리는 특정 주에는 주당 40시간을 넘겨서 일을 시킬 수 있고, 일이 많은 특정한 날에는 1일 8시간을 넘겨 12시간까지 시킬 수 있다(ⓑ).

다만 특정주와 특정일에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했더라도 그 특정주의 노동시간은 최대 52시간, 특정일은 최대 12시간으로 제한했다(ⓒ).

한 마디로 3개월간 주당 평균 40시간 기준으로 노동시간 총량의 한도가 있고, 그 한도 내에서 일이 많은 특정주에는 기준을 초과해 일을 시키고, 일이 없는 주에는 적게 일을 시키는 것이 이 제도의 핵심이다. 중요한 것은 재량근로제와 유사하게 이 제도 역시 요건을 갖춰 시행할 경우, 특정주와 특정일에 주 40시간, 일 8시간을 넘겨 일을 시켜도 법정근로시간 위반이 아님은 물론 해당 연장근로에 대한 가산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또한 이 제도가 실시된다면 사실상 근로시간 단축법 개정의 취지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위 설명에서는 3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실시하더라도 특정주와 특정일의 노동시간이 각각 52시간, 12시간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했으나, 1주에 12시간 한도 내에서 노동자 개별 동의에 의해 추가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이 제도에서 특정주의 최대 노동시간은 52 + 12= 64시간, 특정일의 최대는 12 + 12= 24시간이 도출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시뮬레이션 해보자.

 

3개월(12주) 총 근무시간은 주당 평균 근로시간 45시간 X 12주 = 480시간, 여기에 주당 12시간씩 연장근로가 가능하므로 합산하면 3개월간 총 624시간이 도출된다.

일이 몰리는 특정주의 최장 노동시간은 64시간이므로 1주~ 9주까지 연속 64시간씩 일을 시킨 뒤, 나머지 3주에 총량 624시간에서 남은 48시간을 배분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1주

2주

3주

4주

5주

6주

7주

8주

9주

10주

11주

12주

64h

64h

64h

64h

64h

64h

64h

64h

64h

16h

16h

16h

[예시] 3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 운용 시간표

 

 

3개월 단위 탄력근로시간제를 시행하려면 노사간 유효기간을 정해야 하는데, 법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위와 같이 제도를 도입하고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는 내년이 되면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는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사용자들은 법상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시행할 수 있는 ‘단위기간’을 최대 6개월에서 1년까지 늘려달라는 요구를 지속해왔다.

6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위와 동일 조건에서 계산해보면, 최대 64시간씩 연속 근무시킬 수 있는 주 수가 무려 19주로 대폭 늘어난다. 제대로 된 수당도 못 받으면서 19주간 64시간씩 노동이 가능해지는 제도가 합법화된다는 건 상상조차 끔찍한 일이다.

 

3. 유연근로시간제에 앞선 근본적 구조 개혁 고민할 때

 

사용자들의 유연근로시간제 도입이 속도를 내는 가운데 현장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마치 재량근로제와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방송 업종의 특성에 맞춰 법을 준수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비춰지고 있으나 내막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들 제도 모두 근로자대표(과반수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의 경우 과반수 노조 대표자)의 서면 합의가 있어야 시행 가능하다는 점이다.

현 시점에서 사용자가 고민해야 하는 건, 손쉽게 도입 가능하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아니 오히려 악용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제도 도입을 서두르기보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에게 ‘유연하고 효율적이면서 합법적인 제도’라는 설명만 앞세워 유연 근로시간제에 대한 진짜 진실을 가리려는 시도는 당장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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