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대응에 부실한 교섭안으로 일관…7월 1일 68시간 근무 체제 도입 불가능

방송업의 노동시간 특례 제외가 결정된 지 어느덧 4개월이 흘렀다. 당장 다음 주부터 주 68시간으로 최대 노동시간이 제한되지만, 노사 간 노동시간 단축 관련 협상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SBS는 무제한 노동 체제에서 만들어진 낡은 시스템을 68시간 체제 하에서도 벗지 못한 채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책임은 전적으로 사측에 있다. 노동조합은 노동시간 단축이 단순한 노동시간의 문제가 아닌 SBS 경영모델의 전면적 쇄신을 전제할 수 밖에 없으므로 신속히 대안 마련에 나설 것을 1분기 노사협의회를 포함해 수 차례에 걸쳐 지적해 왔다.

하지만 당장 다음 달부터 적용해야 할 68시간 체제 협상안을 본사는 불과 십여일 전에, A&T는 닷새 전에 제시하며 사실상 법적 시한인 7월 1일부터 노동시간 단축이 불가능한 상황을 초래했다. 제시한 협상안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사실상 무차별적인 공짜 노동을 전제로 한 근무체제와 법적 기준에 한참 미달하는 불법적인 시간외 수당 보상 기준을 또다시 제시하고 나섰다. 단계적인 68시간, 52시간 체제의 안착에 필요한 인력확충, 제작 시스템 변환 등의 계획은 아예 담겨 있지도 않다. 조합이 회사 경영 상태를 반영한 현실적 고려를 한다고 해도 간극을 좁히기 어려운 수준의 협상안이다.

사측이 제시한 협상안은 ‘법대로 적용하고, 법대로 받고, 공짜로 일하지 않는다’는 조합의 3대 협상 원칙과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우선 살인적 노동시간과 열악한 제작환경으로 인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드라마와 예능은 물론 교양 부문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인 재량근무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재량근무체제는 노사간에 일정기간의 노동시간을 합의하되, 실제 노동시간을 측정하지 않는 근무형태다.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해 법적 보상 기준을 넘어서는 장시간 노동이 빈발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경우, 재량 근무 체제 도입 이후 언론계에서 과로사가 속출하고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법적 한도를 넘어서는 초과노동이 빈발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에 따른 보상은 사전에 정해진 정액만 이뤄지기 때문에 ‘보상없는 노동착취’가 일상화될 수 있다. 이는 노동부에서 조차 금지 지침을 고려하고 있는 ‘포괄임금제’와 맥을 같이 한다.

시간외 보상안은 더 당혹스럽다. 법적 기준인 통상시급의 1,5배에 한참 미달하는 것은 물론이고,사측이 제시한 안을 토대로 조합이 몇몇 조합원들의 시간외 수당 보상액을 비교 분석해 본 결과, 기존보다 약 30% 안팎의 시간외 수당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부 분야에 대해서만 별도의 보상기준을 적용하자며, 조합원간 형평성을 무너뜨리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재난 취재와 빅 이벤트 등의 경우, 아예 노동시간 제한을 벗어난 불법적 근무 체제와 보상기준을 제시하는 대담함을 서슴지 않고 있다. .  

협상안에 드러나 사측의 인식은 근본적 쇄신의 첫 단추로 68시간 체제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SBS 노동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전제로 당장 법 위반의 책임만 면해 보겠다는 ‘면피’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노동조합의 52시간 체제 이행의 전 단계로 68시간 체제를 준비해야 하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순조로운 이행과 근본적 혁신의 발판이 아닌 일방적 희생과 책임회피를 전제로 한 협상은 받아들 일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합에 유연성을 요구하려면 사측은 이제라도 전향적 태도로 협상에 나서기 바란다. 이대로라면 다음 주부터 벌어질 방송 현장의 혼란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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