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희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SBS 시청자위원회 위원

 

 

 

 

 신선한 충격이었다. 공영방송 연구자로서 매양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거버넌스 개선을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정권 교체 이후에도 여전히 한 동안은 주요 공영방송의 기능 정지를 책임져야 할 경영진이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을 때, 민영방송 SBS가 사장 임명동의제를 도입했다. 공영방송도 아닌 민간 소유 방송기업이 CEO에 대한 임명동의제를 타결하고 곧바로 적용했다는 건, 솔직히 예측도 기대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몇몇 신문사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는 제도라면서 짐짓 태연한 척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물론 세계 어디를 뒤져봐도, 과거에든 현재에든, 민간 소유 언론사에서, 편집장이나 국장도 아닌, 사장에 대한 임명동의제를 실천하는 경우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예외적 상황이란, 대단히 (긍정적으로) 획기적인 것이거나, 어떤 이유에서는 불가능에 가깝고 그만큼 비현실적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나로서는 단연코 전자에 걸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저널리즘 전문직’이라는 이상을 통해, 신문 기업의 ‘비기업적’ 속성이라는 특이한 현실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론화하는 데 성공했던 과거 그리고 현재 유럽의 경우에도, 그 숱한 공영방송사는 물론 대규모 민간 방송사가 그 범주 안에 들어간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느슨한 형태의 관습적 동의, 정확히 말하자면 구성원의 명백한 저항을 고려하진 않을 수 없었던 일부의 경우를 포함하고서도 말이다. SBS의 실험은 미디어 종사자의 제작 자율성이 단지 이념형적 지향으로서만이 아니라 시장 기업의 운영에도 핵심적인 고려 요인이 되어야 함을 현실의 의제로 부상시킨 실질적인 첫 사례라 할만하다.

 

그 뒤로 1년이 흘렀다. 나는 1년 전의 내 기대가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며 안도한다. 이는 임명동의제를 이끌어낸 강력한 ‘노조’ 추천으로 시청자위원회에 합류할 수 있었던 나의 개인사와는 무관하면서 또 유관하다. 시청자위원이라는 자리는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기만 한 지금의 내겐, 권한이기보단 책임이며, 한 달 한 달 막중한 의무감에 시달리게 만드는 악몽같은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악몽은, 꾸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꿈이자 현실이다. 채 1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외부에서 들었던 무시무시한 시청자위원회의 풍경을 매번의 자리에서 직접 맞닥뜨린 적이 없다. 내게 시청자위원회는 각종 공영방송 이사회 부럽지 않게 여야로 갈리고 이해관계로 나뉜 대리전의 진창이거나,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대접받는 한직들이 모여 한담과 덕담을 나누다가 가끔씩 의미 없는 책잡기로 밥값을 대신하는 자리인 것처럼 비쳐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경험한 시청자위원회는 그런 살풍경과는 판연히 달랐다. 시청자를 대의하는 전문가로서의 내 역량이 불충분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좀 다른 의미에서 좌절하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자리에 더 가까웠다. SBS는 임명동의제 이전부터 조금은 나았을 지도 모르고, 그것이 임명동의제의 효과라고 말하기에는 근거가 너무 부족한 것일 수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지면 관계상, 그리고 SBS 임명동의제에 연관된 여러 결과적 변수에 대해 충분히 경험하고 확인해볼 수는 없었기에 시청위원회의 범위를 넘어선 이야기를 전하기는 어렵다. 대신 이 이야기는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성 싶다. 지금까지의 SBS는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제작자율성을 거론하며 편성위원회와 편성규약 강화를 지향하는 목소리 반대편에서의 기대(?)인 이른바 ‘노영방송의 비극’을 상당 부분 무색하게 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음은 분명하다. 보도 및 제작에서의 자율성이 시시각각 경쟁에 노출된 민간 기업의 경영 행위와도 공존하면서 상당 부분 선순환적 면모까지 지닐 수 있다는 단초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단초일 뿐 확실한 증거는 아니다. 어쩌면 논자에 따라서는 그 반대의 증거를 더 많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근본적으로는 양자택일의 문제일 수도 있을 이 대립항 위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성공시키는 것은 어정쩡한 타협일까 아니면 변증법적 생산력일까? 앞으로의 1년, 더 앞으로의 1년,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SBS 노사 스스로 입증해보길 충심으로 응원하며 기대한다.

 

 

저작권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SBS 본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