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여러분, 즐거운 명절 보내셨습니까?

이미 입춘이 지나고 봄의 기운이 저 어디쯤 와 있는 듯 느껴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직장 SBS에 오길 기대했던 봄은 아직 겨울의 마지막 문턱에 걸려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임금협상도 14차례 넘게 진행됐으나 여전히 간극이 적지 않고 단체협약 개정 역시 논의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습니다. 임협 지연에 불만이 있으실 줄 알지만, 늦어진다고 해서 적당히 타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무엇보다 30년 미래를 가늠할 SBS 정상화 논의가 큰 고비를 맞고 있습니다.

이미 알고 계신 대로 저와 노동조합은 약 두 달 전 사측에 껍데기만 남은 미디어 홀딩스 체제를 해체하고, SBS 중심으로 자산과 기능을 집중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디어 격변의 파고를 넘을 미래전략을 구현하자는 최종안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조합이 제시한 답변 시한을 어긴 사측과 대주주는 이번에도 조합이 제시했던 지난 8일 까지 답변을 주지 않은 채 시한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대주주가 해외 체류 중이라는 설명이 있었지만, 노동조합과 구성원의 요구에 진지하게 답할 의지가 있다면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에 소통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부터 사측과 대주주가 구성원과 노동조합의 요구에 진정성 있게 답할 때까지 목동사옥 로비에서 무기한 철야 농성에 들어가겠습니다. 당분간 목동 사옥 로비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농성의 중단 여부는 전적으로 사측과 대주주의 답변에 달려 있습니다.

조합원 여러분, 낡은 미디어홀딩스 체제를 해체하자는 우리의 요구는 대주주를 무조건 배척하고 유출된 수익을 되찾아 우리끼리 성과급 잔치나 벌여 보자는 저급한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구성원 개개인이 땀 흘려 노력하면, 우리가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그 수익이 온전히 모여 다시 더 좋은 콘텐츠에 투자할 수 있는 회사, 자율성과 독립성을 갖춘 구성원과 경영진, 대주주가 서로 굳건히 신뢰하는 방송사, 이를 통해 조직의 성과와 개인의 성장이 조화를 이루는 회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지속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역할과 기능을 상실한 미디어 홀딩스 체제의 해체가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사측과 대주주는 이제 정말 진지하게 SBS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 무엇인지 답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적당한 현상 유지와 미봉책들이 너무 오래 앞길을 가로 막았습니다.

이대로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SBS를 꿈꿀 수 없는 위기의 시간이 지금도 흐르고 있습니다.

조합원 여러분, 저는 노동조합의 대표이기 전에 입사 24년차 SBS 가족이자 선배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 이 시간에도 헌신하고 있는 많은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을 억누르기 힘듭니다. 제가 입사하던 그 때, 그리고 저보다 앞서 SBS의 기틀을 닦은 선배 사원들은 그래도 땀 흘리면 충분히 보상받았고 SBS人으로 무사히 커리어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안도감 속에 직장생활을 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주회사 체제의 왜곡과 착취 속에 SBS가 스스로 발목에 족쇄를 단 채 미디어 격변의 충격에 노출되면서 우리 후배들은 이제 성과급은 커녕 이대로 정년을 맞을 수 있겠느냐는 자조를 내뱉으며 SBS의 불투명한 미래를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한 배를 타고 있다면 과거의 영광을 재연하지는 못하더라도,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 동료와 후배들에게 힘을 합쳐 노를 저어 나아가면 큰 파도를 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는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할 체제는 함께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싸움의 본질은 여기에 있습니다.

대주주는 대주주대로, 경영진은 경영진대로, 조합원은 조합원대로 갈라지고 나눠진 SBS 공동체를 다시 복구하는 일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미래를 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함께 싸워 주십시오. 함께 외쳐 주십시오. 함께 느껴 주십시오. 함께 일어서 주십시오.

언제나 로비에서 조합원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할 따뜻한 차 한 잔, 아니 그보다 더 뜨거운 마음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 함께! 또 한 걸음!

2019년 2월 11일

전국언론노동조합 SBS 본부장 윤창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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