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윤석민 태영 회장의 SBS 재장악 시도를 극도로 경계하는 이유는 소유 경영 분리 원칙과 독립 경영 약속, 노사 합의 파기 때문만은 아니다. 윤석민 회장의 그림자가 SBS에 어른거릴 때 마다 구성원과 조직이 겪어야 했던 갈등과 상처, 그로 인한 위기의 기억이 너무나도 뚜렷하게 SBS 역사에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윤석민 회장은 지난 1996년 이사대우 기획실장으로 SBS에 첫발을 들인다. 대학원을 갓 졸업한 뒤 방송 경영에 관한 경험이 전무했으나, 창업주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입사부터 엄청난 특혜를 받으며 SBS에 진입한 것이다.

당시 윤석민 기획실장 체제가 만들어 낸 첫 작품이 바로 뉴스텍, 아트텍 분사였다. 구성원의 동의없는 밀실추진과 무리한 분사전략으로 SBS는 심각한 혼돈에 빠질 수 밖에 없었으며, 조직 구성원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지금도 이러한 내상은 SBS의 미래지향적 조직문화 구축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 세습 경영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구성원들의 반대, 그리고 분사와 관련한 조직 갈등의 책임을 지고 SBS에서 물러났던 윤 회장은 이후 SBS 외곽에서 복귀 기회를 엿본다. 2004년 재허가 취소 위기 속에 노와 사, 시청자 대표가 구성한 민방특위는 소유-경영 분리의 제도화를 목적으로 지주회사 제도를 도입했고 이는 대주주의 경영세습에 길을 열어준다. 대주주는 지주회사인 SBS 미디어홀딩스를 지배하고 SBS는 방송과 경영 독립을 보장하면 되는 체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9년 윤석민 회장은 SBS 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로 복귀했고 그 뒤 SBS는 윤석민 체제 아래 벌어진 노골적인 불공정 거래와 수익 빼돌리기로 성장이 정체되고 경쟁력을 상실해 가며 빈사상태에 놓인 채, 미디어 격변에 대비할 체력이 고갈된다. 이번 인사를 통해 SBS 미디어홀딩스 전략투자 담당으로 임명된 유종연 전 콘텐츠허브 사장은 윤 회장의 최측근으로 SBS로부터 콘텐츠 수익을 빼돌리기 위한 지주회사 체제 운영 구조를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때부터 윤석민 회장은 소유 경영 분리 원칙을 무시하고 SBS 경영에 노골적으로 개입한다. 임원들은 물론이고 일부 실무 제작진까지 수시로 호출해 방송 제작에 개입하면서 SBS는 공식적인 경영 의사 결정 절차가 무력화되고 윤석민 회장 개인이 사실상 지배하는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2011년 윤세영 회장으로부터 공식적으로 태영건설과 SBS 경영을 완전히 승계한 뒤부터는 이런 움직임이 더욱 강화된다. 일상적이고 광범위한 경영 통제와 개입에다 검증되지 않은 부적절한 외부인사들까지 무더기로 끌어들였고, SBS는 더욱 심각한 위기로 빠져든다. 또한 인제 스피디움에 대한 투자실패로 모기업인 태영 건설까지 심각한 재무위기가 발생하는 상황에 이른다.

윤석민 체제 아래서 SBS는 물론 태영까지 휘청거리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윤세영 당시 회장은 2014년 경영에 복귀해 위기 수습에 나선다. 이 와중에 윤석민 회장은 2016년 ‘책임경영’을 외치며 SBS 이사회 의장에 취임한다. 그러나 위기 수습을 위해 대주주가 SBS의 사회적 영향력과 전파를 무리하게 동원하며 소유 경영 분리 원칙과 방송 독립의 기본 원칙까지 송두리째 무너져 버렸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SBS에 대한 시청자 신뢰는 바닥까지 추락한다.

노동조합과 구성원들이 지난 2017년 RESET! SBS! 투쟁을 통해 대주주의 부당한 경영 개입을 차단하고 사장 임명동의제를 확보하며, 지난 2월 20일 합의를 통해 수익구조 정상화 조치에 나서야 했던 투쟁의 배경과 뿌리엔 결국 윤석민 회장의 경영 승계과정에서 벌어진 소유경영 분리 원칙의 폐기와 그로 인한 SBS 경영의 파국적 위기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SBS 구성원들 사이에는 윤석민 체제에서 겪었던 온갖 부작용과 실패의 기억이 깊이 각인돼 있다. 다시 SBS 안팎에 짙어지고 있는 윤석민 체제의 어두운 그림자는 노사가 한마음으로 위기 돌파를 위해 힘을 모을 기회를 한 순간에 날려 버리고, 다시 갈등과 분란, 혼돈이 지배하는 돌이키지 못할 위기의 수렁으로 조직을 내모는 일이다. 이는 명백히 SBS 전 구성원에 대한 생존권 위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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