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 비하 논란…논설위원 한 사람의 책임인가?

 “싸움, 필요하다면 해야죠. 그러나 전쟁은 이길 전쟁만 해야 합니다. 질 싸움에 끌려들어가는거, 재앙입니다. 강제징용 판결이 문제의 본질과 핵심, 의병으로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백 년 전 구한말을 복기하며 당시 해법 운운하는 것도 이해가 안되지만, 그때 그 방법으로 나라를 구하긴 했습니까? 오판에 또 오판, 지는 싸움에 끌려들어 가 나라 어떻게 됐습니까?”

지난 15일 원일희 SBS 논설위원이 SBS 미디어넷 계열의 SBSCNBC 용감한 토크쇼 직설의 클로징 멘트를 통해 한 발언의 일부다. 일본의 수출보복조치에 대한 정부 대응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위와 같은 발언 내용이 알려지면서 ‘의병비하’라는 지적부터 ‘식민사관’ ‘구한말 친일파의 논리’라는 비판들이 사내외에서 들끓었다. 방송 이틀 뒤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었으며, 표현이 더 정교했어야 한다는 지적을 겸허히 수용한다던 원 위원은 그러나 지난 19일 “또 해보래도 반복할 것”이라며 자신의 정당성을 다시 강변하고 ‘어둠 속 칼날과 손’을 거론하며 전격 사퇴해 버렸다.

방송사 논설위원이 문제적 발언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마치 부당한 압력으로 물러나는 피해자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몹시 유감스럽다. ‘의병으로 문제를 해결했느냐, 그 방법으로 나라를 구했냐’는 발언은 민주주의와 인권, 언론 자유를 얻어내기 위해 수 많은 세월 동안 피와 땀을 바친 모든 이들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죽을 운명임을 알면서도 죽창 하나로 일제에 항거한 동학농민운동의 정신, 일제 식민지배에 맞선 독립운동가들, 이승만 정권의 총탄에 맨 몸으로 저항한 4.19혁명의 열사들, 전두환 군부의 무력진압에 맞서 전남도청을 끝까지 떠나지 않았던 5.18 희생자들, 그리고 촛불 한 자루로 박근혜 정권에 맞섰던 수많은 시민들까지 원 위원의 관점으로 보자면 질 게 뻔한 싸움에 뛰어든 무모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일 뿐이다. 이 발언에 대한 사내외의 비판과 질책은 책임있는 지상파 방송의 논설위원으로서 민주주의와 역사발전의 과정에서 있었던 이름없는 희생들을 모독하는 발언이 적절한 것이냐는 당연한 물음이다. 이에 대해 어둠 속 칼날 운운하며 정당성을 강변하는 것은 분노한 시청자는 물론 도매금으로 비난받고 방송신뢰에 타격를 입은 SBS 구성원들의 상처에 오히려 소금을 뿌리는 격일 뿐이다.

사실 이번 논란은 SBS 경영진과 SBSCNBC 책임자들의 책임방기가 빚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동안 원 위원은 SBS의 각종 뉴스 프로그램과 SBSCNBC의 ‘직설’에 출연하면서 여러 차례 공정성 논란과 적정수위를 넘나드는 선정적 발언으로 안팎에서 문제가 제기돼 왔다. 그러나 SBS 보도 책임자들은 이런 지적을 마이동풍으로 흘려 들으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SBSCNBC 경영진도 방송 감시 기능과 공정성 강화 요구에 귀를 막은 채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사퇴한 원 위원 외에도 아무런 내부 견제와 비판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초래해 전체 SBS 신뢰에 치명타를 입힌 책임에서 SBS 보도 책임자들과 SBSCNBC 경영진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반드시 적절한 추가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민영방송 SBS는 이름없는 이들의 지난한 투쟁과 희생에 기반한 87년 민주항쟁과 언론 자유화 조치가 없었더라면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을 방송사다. 우리가 지금 정부를 비판할 자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의 언론 자유는 더더욱 아무 말이나 마구 할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미 거론한 것처럼 그 한 글자 한 글자에는 앞서 걸은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희생이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SBS 경영진과 보도책임자들, 나아가 전 구성원들은 무겁고 또 무거운 이 책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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