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2019년의 SBS를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이보다 더 적확한 표현을 찾기가 어렵다.

 역행 (逆行)

 우리는 2017년 소유경영 분리와 독립경영 원칙을 대주주가 스스로 확약하고 그 기반 아래 방송사 최초의 임명동의제도 합의, 그리고 2019년 2월 수익구조 정상화 합의를 이뤄냄으로써 구성원들이 비로소 우리 일터 SBS를 제대로 혁신할 기회를 마련하는 듯했다.

 그러나 대주주인 태영건설의 2세 세습 체제 시작과 함께 SBS 경영진과 윤석민 회장은 후진기어를 넣은 역주행 차량처럼 폭주를 거듭하기 시작했다. 우선 3월 이사회 폭거로 윤석민 회장 직할 체제를 밀어 부쳐 노사합의의 핵심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려 버렸다.  

 또한 2017년 10월 노와 사, 대주주간 3자 합의 체제 아래 대주주로부터의 SBS 경영독립과 방송 사유화 차단을 위해 헌신해 온 인물들이 SBS 사상 처음으로 경영위원에 선임됐으나, 올 3월 이사회 폭거와 12월 정기인사를 통해 대주주의 눈엣가시 같았던 이들을 모조리 제거해 버렸다.

 명실상부한 SBS 방송독립과 대주주에 의해 왜곡된 SBS 경영을 정상화할 체제는 윤석민 회장과 박정훈 경영진에 의해 파괴됐으며, 이제 SBS 경영진에 대주주의 SBS 재장악과 경영농단을 견제할 인사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다시 익숙한 과거로 역행하고 있다.

 조직개편과 12월 인사는 이러한 역행의 의도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견제와 균형의 상실…시작된 폭주

 편성과 마케팅 기능을 통합한 콘텐츠 전략본부 외에 미래 경쟁력의 핵심인 콘텐츠의 근본적 혁신을 가능케 할 아무런 청사진을 찾아볼 수 없으며, 그에 따른 기능의 재편은 없다. 오히려 핵심 보직에 흘러간 과거형 인물들을 다시 기용하거나, 대주주의 방송 사유화를 가속화하기 위한 무리한 인사를 감행함으로써 최소한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려 조직 전체의 위험을 크게 가중시켰다. 

 대표적 예가 보도본부 인사다. 대주주와 박정훈 사장이 결탁해 내세운 첫 후보자는 구성원들의 거부로 임명동의에서 탈락됐다. 이는 지난 30년 동안 방송 공공성과 SBS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담보하는 공적 기능의 핵심인 보도를 대주주의 해결사 노릇하는 ‘용역 조폭’처럼 다뤄왔던 과거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구성원들의 분명한 요구였다.

다시 시작된 방송장악…3류 방송 선언한 보도 인사

 그러나 두 번의 임명동의 투표 이후에 단행된 보도본부 인사에서 과거 비서팀과 노협팀 출신들이 대거 중용됐다. 대주주가 SBS 경영을 직접 주무르던 과거에 횡행하던 이런 인사 관행은 2017년 노사합의 이후 독립성과 시청자 신뢰 보장 차원에서 자제돼 왔으나, 윤석민 회장과 박정훈 경영진의 역행 속에 관 속에 들어갔던 과거의 낡은 관행이 되살아난 것이다. 박 사장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대주주에 의한 방송장악은 이미 인사를 통해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SBS 보도를 총괄하는 보도국장에 광고판매 자회사의 임원을 기용한 것은 과거 윤세영 회장 시절에도 없던 퇴행적 인사 폭거다. 이는 최소한의 방송 공공성 보장 명분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지상파와 종편을 통틀어 중앙 언론사 어느 곳에서도 행해진 적이 없는 유례없는 일이다. 이는 SBS가 스스로 보도를 광고 영업에 동원하는 3류 방송사임을 대내외에 공표한 꼴이다. 대신 지난해 삼성 에버랜드 땅값 부풀리기를 통한 경영 승계 작업을 심층적으로 보도해 시청자들의 신뢰는 물론 각종 대외 언론상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던 관련자들은 모조리 보직을 박탈해 버렸다.  완벽한 역행이다.

 인사는 구성원들에게 주는 메시지다. 대주주와 재벌, 정치권력 등 성역없는 비판과 견제를 통해 사회를 건강하게 이끌고 이를 바탕으로 시청자 신뢰를 든든히 해야 할 책무는 내팽개치고 대주주의 사적 이해를 위해 조폭처럼 해결사 노릇에나 충실하고 거대 광고주인 재벌은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주문이 이번 인사에 담겨 있다. 이런 철학을 가진 방송사가 이 첨예한 미디어 격변과 저널리즘 전쟁의 시대에 생존할 수 있는가?

 임명동의 투표를 통해 SBS 구성원 절대 다수의 의사를 확인하고도 조금의 반성과 성찰도 없이 SBS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 윤석민 회장과 박정훈 경영진의 역행은 이렇게 거침이 없다.

그러나 모든 역행은 반드시 바로 잡힌다.

 흐르는 강물을 잠시 가두거나, 거꾸로 흐르게 할 수는 있어도 강물은 결국 바다로 흘러간다.

 윤석민 회장과 박정훈 경영진이 공정과 투명을 요구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방송사를 책임질 자격이 있는가? SBS 구성원들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가? 라는 우리의 질문은 2020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이제 SBS의 담벼락을 넘어 전 사회적으로 그들의 책임과 자격을 묻게 될 시간이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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