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8일 서울 구의역 스크린 도어 수리 작업 도중 사고로 숨진 10대 고교생 노동자 김 군의 죽음은 한국 사회가 처한 위기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유품으로 남은 뜯지 못한 컵라면과 숟가락은 목숨을 담보로 내놓고도 끼니조차 제대로 챙겨먹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약탈적 노동조건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SBS는 최근 며칠 간 김 군의 희생을 둘러싼 원청-하청간 외주화 문제와 원청 퇴직자의 밥그릇 지키기 등 문제점들에 대해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언뜻 보기엔 지상파 방송의 사회적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조금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SBS의 속살은 전혀 다르다.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로 사회생활 첫 발을 내딛었던 故김군의 일상은 IMF 이후 비용절감을 목표로 유연화에 유연화를 거듭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비정규직 고용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노동시장 맨 아래 절벽에 매달린 위태로운 것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노동이 창출한 이익은 소수에게 사유화되고 위험과 비용은 모조리 개별 노동자에게 떠넘겨져 사회화되는 구조가 고착화된 지 오래다. SBS 보도도 김 군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원청업체의 잘못 등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딱 거기까지다.

 문제는 스러진 김 군이 겪었던 열악한 노동조건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는 모른 척 하거나 왜곡된 시장 구조를 확대 재생산하는 방안을 알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노동과 청년단체들이 임금 수준을 낮추고 비정규직을 확대 재생산하는 악법이라고 거세게 저항해 온 박근혜 정부의 노동관련법 개정 압박 시도를 앵무새처럼 중계하며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라는 언론의 사회적 책무를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노동조합이 노사정 위원회와 국회 논의 과정 등을 통해 노동 관련법 개정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지난 해 9월 이후 8뉴스 큐시트를 전수 조사한 결과는 참담했다. 노동관련법 개정과 관련된 뉴스는 총 79건 방송 됐는데, 무려 75%에 달하는 59건이 청와대와 정부 측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거나 옹호하는 내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계의 입장을 기계적으로라도 균형 보도한 사례는 8%에 못 미치는 6건에 불과했고, 비판적 시각으로 제작된 리포트 9건은 모두 개별 현장에서 벌어진 사례들로 노동시장의 구조와 정부 정책 방향의 문제를 파고드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정부와 청와대를 옹호하는 보도들은 제목부터 대부분 “통탄,참담,간절” “호소” “기득권 저항에 흔들리지 않겠다” 등등 자극적 어휘를 선택하며 정치적 중립을 내팽개쳤고 19대 국회가 관련법 처리에 실패하자 마치 입법부의 직무유기인양 상황을 묘사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SBS 뉴스는 각론에서는 개별 노동자들의 피해와 희생을 지극히 ‘개인적’ 차원에서 안타까워 하지만 총론에서는 더 많은 사회적 차별과 희생을 배태할 가능성이 있는 법 개정을 옹호하는 심각한 자기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소년 노동자의 죽음과 권력과 자본의 나팔수 같은 우리의 노동관련법 보도가 과연 양립할 수 있는가? 우리 뉴스는 소년의 죽음을 추모하고 현실에 분노하는 청년들의 눈물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시청자들에게 뭐라고 답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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