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장편지]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입니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입니다."
존경하는 SBS본부 조합원 여러분, 정형택 본부장입니다.
무단협을 막기 위해 뼈를 깎는 심정으로 양보했습니다.
사실, 마지막 순간까지 노조가 먼저 협상안을 제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합원을 대리하는 제가 임명동의제를 반드시 지켜내라는 조합원의 뜻에 반하는 결정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사측에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구성원이 반대하고 시민사회와 규제기관이 우려하는 퇴행을 스스로 멈추고 노사 신뢰 회복을 바탕으로 미래로 나아가자는 제안을 사측이 먼저 해주길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터가 어떤 희생을 치르든 사측은 그럴 뜻이 없다는 걸 지난달 29일 본 교섭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임명동의제의 취지는 살리고 싶었습니다.
소유경영 분리와 방송 독립을 최소한의 범위에서 담보해 SBS가 공적 책임을 다하고, 우리가 언론노동자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피땀으로 쟁취한 투쟁의 결과가 바로 임명동의제입니다. 원안을 지키고 싶었지만, 제도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습니다. 절박함으로 노조의 협상안을 제시했습니다. 사장을 임명동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대신, 기존의 본부장급(편성, 시사교양, 보도 부문 최고책임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 보도영상본부장(SBS A&T)과 보도국장, 뉴미디어국장, 시사교양국장, 편성국장(이상 SBS)을 임명동의 대상에 추가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4년 전 임명동의제의 도입 배경이 대주주로부터 방송 독립에 있고, 그 핵심이 사장 임명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결정까지 조합원의 많은 비판도 있었지만, 파국만은 막고 싶은 생각에 어렵게 물러섰습니다. 대신 기존에 존재하는 ‘중간 평가제도’에 사장을 포함시키는 안을 제안했습니다. 이에 더해 지난 2008년부터 시행되다가 사측이 일방적으로 없앤 노조 추천 사외이사 제도의 복원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사측은 노조의 이런 제안마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오후 있었던 교섭에서 사측은 노조의 모든 안을 사실상 거부했습니다. 사측은 사장은 물론이고 본부장에 대한 임명동의제도 불가하다고 통보했습니다. 사장에 대한 중간 평가 역시 수용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노조 추천 사외이사 제도 복원 역시 단협 협상에서 논의할 대상이 아니라고 거부했습니다. 조합원 여러분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면서까지 제안한 노조의 양보안을 사측이 걷어차 버리면서 협상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 상황입니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마지막까지 협상의 끈을 놓친 않겠지만, 본부장과 노조 사무처의 결정만으로 양보할 수 있는 수준과 범위를 넘어섰습니다. 어제 임시대대에서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해 오는 5일, 상무집행위원회를 쟁의대책위원회로 전환하겠습니다. 쟁대위를 중심으로 향후 투쟁 방향을 언론노조 등 시민사회와 함께 준비하겠습니다. 투쟁의 길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존엄과 가치, 우리 일터의 미래를 위한 싸움입니다. 함께 해주십시오.
2021.10.1.
전국언론노조SBS본부 정형택 본부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