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무단협...붕괴된 SBS 31년史”
SBS 노보에 ‘무단협’, 세 글자가 기록되는 것만은 막으려 했다. 그러나 10월 3일 0시를 기해 단체협약은 사라졌다. 임금, 복지, 휴가는 물론 공정방송을 위한 SBS 31년 역사가 녹아있는 우리의 근간이 무너졌다. 노동자, 언론인으로서 책임감을 다하고자 했던 선배들이 지난 31년간 한 발 한 발 어렵게 내딛었던 발자국, 그 발자국들이 만든 길이 이제 다시 희미한 출발선으로 되돌아갔다.
전국언론노조 SBS본부는 ‘8뉴스’에나 나올 법 한 ‘무단협’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다. ‘단체협약’을 끝까지 지키자는 일념으로 양보안도 먼저 제시했다. 사측의 일방적인 10.13 합의 폐기와 단체협약 해지 통고 이후 9개월간의 교착상태를 풀기 위한 결단이었다. 소유경영 분리의 최소한의 담보 장치가 임명동의제고, 대주주로부터의 방송 독립의 출발선이 ‘사장 임명동의제’라는 사실을 노조가 누구보다 잘 알고, 체감하고 있기에 힘든 결정이었다.
노조의 양보안이 우리가 쌓아온 공정방송 제도의 큰 틀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구성원들의 질타도 있었다. 이런 지적을 노조는 가슴 아프게 받아들였다. 임명동의제는 사측이 ‘SBS의 이름’으로 “집단지성으로 만들어낸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 결과물(17.11.24 알림), 방송독립의 새 역사(17.12.01 알림)”라고 시청자와 시민사회에 밝힌 약속이었다. 노사가 함께 수호할 ‘사회적 약속과 공정방송의 틀’을 노동조합만이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공정방송’의 원칙과 대의만을 생각하며 인내 속에 협상했다.
노조는 임명동의제의 핵심인 사장을 제외하는 대신 국장급(보도,뉴미디어,시사교양,편성국장)을 대상에 추가하는 안을 제시했다. 무단협을 막으면서도, 공정방송 제도의 큰 틀은 지키기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다. 노조는 인정할 수 없지만, 사측이 지속적으로 임명동의제는 대주주의 임면권, 즉 주주 권한 침해라고 문제 삼았기에 파국만은 피하고자 사장을 제외하는 큰 양보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양보안마저 사측이 거부하면서 초유의 무단협 상황에 내몰렸다. 단체협약의 중대성을 사측도 모를 리 없다. 단체협약이 사라진 사업장엔 혼란과 퇴보만이 존재했다. 특히 사회적 공기(公器)이자, 공적 책임을 지닌 언론사에선 더욱 그렇다. 지난 2011년 사측이 공정방송 조항을 후퇴시키기 위해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해지하며 시작된 MBC의 무단협 사태, 방송사 최초의 무단협을 맞은 MBC는 파국을 겪었고, 치뤄야 할 희생도 컸다.
사측은 ‘지상파의 위기, 미디어 빅뱅 시대’를 입버릇처럼 말하며 미래로 나아가자고 하고 있다. 사측이 자초한 무단협 상황에서도 떳떳하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진정으로 SBS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SBS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과거로 향하는 독주를 이제라도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