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장 편지]파업 찬반 투표를 하겠습니다.

2021-11-15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

 

이제는 결단해야 합니다. 구성원들을 철저히 무시하며 협상에 나설 뜻이 없는 사측을 상대로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습니다. 멀쩡히 눈앞에서 우리의 가치와 권리가 부정당하는 것을 더는 지켜볼 수 없습니다. 빼앗겨도 짖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로 길들여질 것인지, 내 존엄을 지키기 위해 당당히 물 수 있는 자주적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지 이제는 결정해야 합니다. 그릇됨과 불의에 눈감고서 옳음과 정의를 말할 자격은 없습니다. 11월 22일(월)부터 28일(일)까지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하겠습니다. 그 과정을 거쳐 1천 1백 조합원의 뜻을 하나로 모으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빼앗겼습니다. 4년 전 우리 모두가 목이 터져라 외쳐 쟁취했던 10.13 합의는 휴지장처럼 구겨졌습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벗어나 SBS의 미래와 공정방송의 가치를 지킬 리더를 뽑는데 우리의 의견을 일부나마 반영시킬 수 있었던 소중한 권리가 사라졌습니다. 사익을 위해 보도에 개입하고 방송을 사유화한 대주주, 언론인의 사명을 저버린 경영진으로 인해 숱한 치욕을 겪어야 했던 SBS 구성원들에게 임명동의제는 오욕의 날들에 대한 위로이자 우리에게 1등 방송을 꿈꿀 수 있게 만든 자긍심이었습니다. 사측은 우리에게서 그걸 빼앗아 간 겁니다.

2008년부터 도입돼 경영진에 대한 최소한의 감시와 견제 기능을 해왔던 노조 추천 사외이사와 감사위원도 이제 우리 일터에는 없습니다. 지난 31년간 분사와 지배구조 변경, 자본거래 등을 통해 SBS 수익을 밖으로 빼돌리고 우리의 정당한 몫을 가로채 왔던 사측의 행태를 생각할 때, 종사자의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겠다는 저들의 퇴행이 우리에게 또 어떤 위기를 불러올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이게 괜한 우려일까요? 아닙니다. 지난 31년 동안 우리가 직접 겪지 않았습니까.

사측은 임금, 근로시간, 복지 등 노동자의 핵심적 권리를 담고 있는 단체협약마저 일방적으로 없앴습니다.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제도가 아닌 사측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처지입니다. 최근에는 일반 사업장에서도 보기 힘든 무단협이라는 노동탄압에 ‘악덕 기업’, ‘막장 경영’, ‘탐욕과 구태’라는 사회적 맹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사측은 퇴행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사측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단체협약을 없앨 수 있다는 걸 우리에게 보여줬습니다. 한 번 그랬는데, 두 번 못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때는 임금과 근로시간, 복지 등이 단체협약 해지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저항하지 못한다면 사측은 언제든 또다시 무단협이라는 폭력을 꺼내 들 겁니다. 

종사자를 무릎 꿇리기 위해, 노사관계를 굴종적으로 만들기 위해 사측은 자주적 노동조합 활동마저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미 사측은 알림을 통해 “12월 1일부터 조합활동 보장 조항의 적용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근로시간 면제, 조합비 공제, 조합 사무실, 홍보활동 등에 대한 지원도 해지하겠다”는 협박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협박에 그치지 않을 겁니다. 사측이 단체협약을 해지하는 걸 이미 보지 않았습니까. 사측은 우리가 굴복하지 않는다면 더 잔인한 방식으로 보복해 올 게 분명합니다. 

사측은 협상할 생각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무단협은 막아보겠다는 절박함으로 노조는 사장과 노조위원장이 참석하는 본 교섭을 요구했고, 그 자리에서 사장을 임명동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양보안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노조의 모든 제안을 거부한 뒤 박정훈 사장은 단 한 번도 단체협약 협상장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얽힌 노사관계를 풀어야 할 책임을 사측 대표가 방기하고 있는 겁니다. 

심지어 박 사장은 지난 12일 있었던 임금협상 상견례 자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무단협으로 근로조건이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임금협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노조는 지난 9월 24일부터 임협 개시를 요구했습니다. 연초 계획에도 없던 희망퇴직 실시로 영업이익이 줄고, 그만큼 돌려받을 우리 몫이 감소하는 상황까지 벌어져 조속히 임금협상을 시작할 것을 재차 요구했지만, 사측은 두 달 가까이 답을 미뤄오다 11월 12일 오후 3시에 만나자고 알려왔습니다. 사측이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를 모두 받아들였지만, 박정훈 사장은 정확한 이유도 설명하지도 않고 전날 불참을 일방적으로 통보해왔습니다. 종사자 대표를, 구성원을 철저히 무시한 처사입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빼앗겼습니다. 하지만 사측은 우리가 저항하지 못할 것이라 오판하고 더 많은 것을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항은 의무가 됐습니다. 

존경하는 SBS 구성원 여러분, 우리의 가치와 권리, 미래를 지키는 싸움에 나섭시다. 더 이상의 침묵은 우리의 존엄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입니다. 행동만이 바꿀 수 있습니다. 낯섦과 두려움을 연대의 힘으로 극복합시다. 굳센 믿음으로 옳은 실천을 해나갑시다. 

저부터 결의를 다지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24시간 로비 농성장을 지키며 공정방송과 노동의 가치를 반드시 되찾겠습니다. 함께하는 동료를 믿고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오늘 점심(11:40~12:00)부터 시작하는 전 조합원 피케팅에 함께해주십시오. 한 목소리로 저들에게 우리의 의지를 전달합시다. 내일(16일, 화)을 ‘총결집의 날’로 선포합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해 1층 로비를 저항 의지로 가득 채웁시다. 더는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의를 똑똑히 보여줍시다. 우리가 싸울 수 있다는 걸 행동으로 증명합시다. 질 수 없는 싸움입니다. 져서는 안 되는 싸움입니다. ‘함께’의 힘으로 반드시 이깁시다. 고맙습니다.

                      2021.11.15                                 

          - 전국언론노조SBS본부 정형택 본부장 드림


             내가 만약 촛불을 밝히지 않는다면,
             당신이 만약 촛불을 켜지 않는다면,
             우리가 만약 촛불을 밝히지 않는다면,
             이 어두움을 어떻게 밝힐 수 있는가?

                   - 나짐 히크메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