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특정 방송사만 챙긴 임명동의제, 즉각 확대해야
특정 방송사만 챙긴 임명동의제, 즉각 확대해야
방송3법 개정안이 7월 2일 국회 과방위 소위를 통과했다. 공영방송이 더는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개정안은 평가할 만하다. 태생은 민영방송이지만, 성격은 공영방송인 SBS도 그래서 지지했고 연대했다.
하지만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다 7월 1일에야 처음 공개된 개정안에 언론노조 SBS본부는 경악했다.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조항이 갑자기 신설됐는데, 그 대상이 KBS, MBC, EBS 3곳과 보도전문채널(YTN, 연합뉴스TV) 2곳으로 한정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이 5개 방송사만 보도를 하는가? 지상파인 SBS와 9개 지역 방송사, MBN 등 4개 종편은 보도 기능이 없다는 말인가? 이처럼 너무나도 명확한 질문에 일부 과방위원들은 “윤석열 정권에서 망가진 공영방송의 회복이 더 시급해서”라는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을 내놨다. 윤 정권이 망가뜨린 방송이 어디 공영방송뿐이겠는가.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는 대부분 방송사들은 윤 정권 3년 동안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걸 복구하는 데 선후를 따질 이유가 있는가. <보도책임자의 임명동의제> 조항을 신설하면서 오로지 5개 방송사에 한정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태고, 묵과할 수 없는 처사다.
차별적 방송3법 개정에 관여한 자들은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적용 범위를 밀실에서 마음대로 정한 뒤 소위 통과 하루 전 형식적인 토론회 한 번 열어놓고 정당성을 논하고 있다. 이에 항의하자 “그동안 왜 몰랐냐”라고 되묻기까지 했다. 방송3법 개정안에 차별적 독소 조항이 들어있는 것을 알았다면 SBS본부와, 지역 방송사 지부들이 정녕 가만히 있었겠는가?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를 법전에 새기는 것은 언론노동자들에게 정치・경제 권력, 대주주에 맞서 공정 방송과 불편부당한 방송을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무기를 쥐어주는 일이다. 그런데 이를 특정 언론사에만 강제하면, 법적 테두리 바깥에 있는 방송사의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는 바람 앞의 등불이 된다. 지금도 SBS 사측은 두 번이나 후보자가 부결된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를 손보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지역 방송사 사측은 수년 째 제도 도입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제도권 바깥으로 선별돼 밀려 나는 순간, 사측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번 참사를 초래한 또 다른 장본인은 전국언론노조 이호찬 위원장이다. 다섯 달 전, 언론노조 위원장 선거에 나설 당시 이 후보는 분명히 약속했다. "내가 MBC 출신이라 MBC만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를 잘 안다.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언론 종사자 모두의 이익을 위해 일할 것이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이 됐다. 그동안 13대 언론노조 집행부를 믿고 힘을 실어준 SBS본부와 지역 방송사 동지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때리는 것으로 말이다.
이 위원장은 개정안 논의에 참여하면서 언론노조 각 본부와 지부는 물론, 심지어 사무처 집행부에게도 제대로 된 내용을 공유하지 않았다. SBS본부가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대상이 선택적으로 정해진 걸 진즉에 알았으면서 왜 그 내용을 공유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개정안의 신속 통과가 중요해서” “보안을 지켜야 해서” 등등 자신이 언론노조 위원장임을 망각한 대답을 내놨다. 이러니 우리는 이 위원장이 KBS와 MBC만을 위한 반쪽짜리 위원장이 아닌가 의구심을 품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심지어 “SBS본부는 이미 단체협약으로 보도뿐만 아니라 제작, 편성 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나. 이번 개정안에 SBS가 포함된다면 오히려 그 범위가 축소되는 것”이라는 기괴한 논리를 펴기도 했다. 답답함을 넘어 분노가 치솟는다. SBS본부는 단체협약으로 <사장 임명동의제>까지 쟁취한 최초의 방송사였다. 허나 2021년 사측은 <사장 임명동의제>를 없애기 위해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파기해 무단협 상태로 만들었다. 당시 SBS본부는 파업이라는 초강수를 썼음에도 <사장 임명동의제>는 끝내 부활시키지 못했다. 이렇듯 단체협약은 평시에는 노사 간 바이블로 작동하지만 전시가 되면 사측이 언제든 내팽개칠 수 있는 종잇장에 불과할 수 있다.
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 시도에 KBS와 MBC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방송3법 개정안이 시급히 발효돼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 이해하고 적극 지지한다. 그러나 갈 길이 바쁘다고 정치권과 밀실 야합과 타협이 답이 될 수 있겠는가. “귀띔이라도 미리 해줬으면 자체적이나마 대비라도 했을 것”이란 호소에 이 위원장은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했을 것”이라는 아집을 보였는데, 그 모습에 이 위원장이 그토록 경멸하던 윤석열 정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이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각성해서 임명동의제 대상 확대를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방송3법의 시행 속도가 다소 늦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언론노조를 크게 지탱하는 SBS, 지역 방송사, 일부 종편에도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라는 무기가 쥐어지도록 필사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언론노조 위원장은 모든 언론 동지들을 대변하는 자리라는 것을 명심하라.
2025년 7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