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박정훈 SBS 사장은 없었다. 12일 오후 3시 목동 SBS 사옥 20층 임금협상 1차 단체교섭(상견례) 자리엔 이동협 SBS A&T 사장, 한정환 스튜디오S 사장만 있었다. 모회사인 SBS 사장은 찾을 수 없었다. “박정훈 사장한테 위임장을 받았다”는 이동희 SBS 경영본부장과 정승민 SBS 전략기획실장 등 등기이사 2명만 협상장에 나온 것이다. 종사자 측 대표와 사용자 측 대표 사이 마땅히 수평적으로 이뤄져야 할 협상은 첫날부터 박정훈 사장의 불참으로 비정상적으로 시작됐다. 

 

 

■ 사측이 지정한 날짜 하루 전 불참 통보...“몰상식한 행위, 철저하게 구성원 무시”

이동희 본부장은 ‘모든 권한을 위임 받았다’면서도, 정작 박 사장의 구체적 불참 사유는 말하지 않았다. ‘외부행사로 인한 부득이한 불참’이라고 할 뿐이다. ‘부득이한 불참’인지, ‘의도적인 무시 또는 외면’인지는 이번 회의 경위만 파악하면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노조는 지난 9월 24일부터 공문을 통해 임금협상 개시를 사측에 요구했다. 사측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노조는 조속한 개시를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한 달 뒤인 10월 25일에야 사측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11월 12일 오후 3시’로 하자고 통보했다. 사측이 원하는 일시로, 그것도 협상 18일 전에 정한 날짜였다.  

임금협상, 노사 대표가 동등한 위치에서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결정하는 중대한 자리가 사측에겐 가벼웠다. 사측은 돌연 임협 하루 전, 박정훈 사장의 불참을 통보했다. 구체적인 이유도 말하지 않았다. 윤창현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은 이날 협상에서 “사측이 정한 날짜에 대표이사가 위임장 한 장 던져놓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건 교섭 역사상 유례가 없다”며 “이런 몰상식한 행위에 대해 강력히 유감을 표시한다”고 지적했다. 

정형택 전국언론노조SBS본부장도 “사측의 교섭 지연으로 두 달 가까이 지난 오늘(12일)에야 임협이 잡혔다”며 “하루 전날 일방적으로 불참을 통보했는데, 언제까지 위임장 경영을 할 것이냐”고 질타했다. 이어 “종사자 대표와 구성원을 철저히 무시하면서, 무슨 최고 대우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왜 남의 집에서 소리 지르냐”..노골적인 종사자 대표 무시
 
사측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로 무단협 상황에서 열린 임금협상이었다. 무단협의 엄중함, 임금협상의 중대성 등 여러모로 SBS 상황은 전국언론노조의 중대 사안이었다. 언론노조 측에서 사장의 일방적 불참과 단협 해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며 노사 간 고성이 오가는 사이, 이동희 본부장은 이런 말까지 했다. “왜 소리를 지르느냐, 남의 집에서..” 

SBS노조는 산별노조이다. 사측이 줄기차게 말하는 ‘법과 원칙(규약)’에 따라 단체교섭 권한은 전국언론노조가 가지고 있다. 올해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작년, 재작년에도 그랬다. ‘남의 집’이 아니고, ‘우리 집, 우리의 일’이었다. 경영본부장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의도적인 것이다. 사측은 수차례 알림에서 구성원을 무시하더니, 이젠 종사자 대표 즉, 동등한 위치의 협상 상대방에 대한 일말의 존중조차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무엇이 두려워 사장이 나오지 않은 것이냐’는 노조 측 질문엔 “답할 가치를 못 느낀다”고 답하거나, 단협 해지 이유를 묻는 질문엔 사내 알림에 적혀 있다며 “사내 알림을 출력해서 드려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했다. 

■‘종사자 외면, 종사자 대표 무시’가 ‘뒤틀린 노사관계’
 
사측은 지금까지 알림을 통해 ‘뒤틀린 노사관계를 정상화 시키겠다’고 말해왔다. 사측이 말하는 ‘정상적 노사관계’는 무엇인가. 사측의 행태를 보면 수평적 관계가 아닌 종속적 관계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SBS구성원들이 요구하는 ‘공정방송, 임금’ 등 근로조건은 사측의 시혜가 아니다. 구성원들의 당연한 권리이다. SBS가 명성을 쌓았다면, SBS가 수익을 냈다면 그건 종사자들이 노력한 결과이다. 그걸 마치 베푸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종사자를 외면하는 것, 종사자 대표를 무시하는 것, 그런 것들이 바로 뒤틀린 노사관계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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