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미투(#Metoo)’가 확산하면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예방 규정과 함께 ‘사건 발생 시 대응 매뉴얼 개발’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다. 2차가해와 보안제도 미비 등 피해자가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여러 현실적인 장치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우리 사업장의 경우엔,  제도와 매뉴얼 개발이 다른 사업장과 비교해 ‘미진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조합이 파악한 사항은 아래와 같다.

 1. ‘상담’과 ‘신고’ 업무의 분리

피해자들 중엔 ‘상담’ 단계에서 문제제기를 중단하거나 유예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상담’과 ‘신고’는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 피해자가 감정적으로 가장 소모되는 단계 역시 문제제기를 결심하기 전인 ‘상담’ 단계이다.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싶은 피해자로선 궁금한 정보가 많을 수밖에 없고, 이때 피해자에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상담과 조사 과정에 피해자에게 의도치 않은 2차가해성 질문을 할 개연성이 높다는 점에서도, 전문가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문제제기 이후 피해자는 어떤 단계를 밟게 되며,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는지, 동시에 필요 이상으로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은 무엇인지 절차 별로 상세하게 안내해야 한다. 

 

우리 사업장은 현재 ‘피해자가 직접 대응이 어려운 경우 선후배, 동료와 상의하거나 성폭력 신고 도우미에게 조언을 구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피해자로선 본격적인 신고를 결심하기 전, 신고를 망설이는 단계에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가까운 선후배와 동료, 혹은 신고 도우미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들은 상담 업무를 진행할 전문성을 갖추지 않았을 뿐더러 관련 교육을 따로 받은 적도 없다. 노동조합이 지난 2020년에 실시한 사내 익명 설문 결과에 따르면, (신고 도우미를 포함해) 피해자의 요청으로 상담 업무를 맡게 된 동료들은 “관련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에게 정서적 지지 외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었다”는 점에서 자책하고 있었다. 업무와 병행해야 하다 보니, 주간에 피해자가 연락해 올 경우 역할 갈등 역시 심각했다. 피해를 입은 동료의 문제제기를 돕는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신원이 노출돼 곤란해지거나, 자신 역시 심리적 내상을 겪고 상담과 치료를 받았다는 조합원도 있었다.  

KBS는 성폭력 사건 대응 과정에 ‘신고·조사’에 앞서 공식 절차로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성폭력 상담 20년 이상 경력자가 자사 성평등센터 상근직으로 근무하며 전문 고충원 상담 역할을 한다. 피해자는 상담 과정에서 사건처리 절차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안내 받고, 관련해 질문할 수 있다. 심리, 의료 지원도 보장된다.

2. 모든 단계에서 ‘전문성’과 ‘보안’ 제고


조사 단계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부분은 ‘전문성’이다. 노동조합은 현재 사측을 대상으로 ‘신고와 상담, 조사 단계를 담당할 외부 전문기관’을 선정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노조의 제안에 따르면, 기존 사측의 절차(인사팀을 통한 신고와 조사)를 원하는 피해자의 경우엔 외부 전문기관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피해자가 어느 절차를 통해 문제제기를 진행하더라도 불편함 없도록 사내 매뉴얼을 구체화하고 발견되는 문제점들은 상시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개선이 시급한 사항으로는 “모든 단계에서 관련자들에게 비밀유지 확인서를 받고 과태료 등 비밀 누설로 인한 처분에 대한 고지”하는 부분이 있다. 타 사업장의 경우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고용노동부 등의 매뉴얼에도 적시돼 있다.   

[...] 특히 조사자, 보고를 받은 사람, 조사과정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피해근로자 등의 의사에 반하여 비밀을 누설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따라서, 신고인, 피신고인, 조사자, 조사 관련자 모두에게 비밀유지에 관한 확인서를 징구하고, 누설 시 2차 가해에 해당하여 법과 사규에 의거 조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고지한다 - 고용노동부 직장내 성희롱 매뉴얼 


KBS는 문제 해결의 모든 단계에서 조사 참여자 일체를 상대로 ‘비밀유지 서약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 

3. 2차 가해 처벌...‘현실성’에 대한 논의 필요


최근엔 사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한 2차 가해 발생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2차 가해는 사건 처리 과정에서 ‘보안’이 유지된다고 담보되는 성격이 아니다. 2차 가해의 성격상, 문제가 되는 발언을 들은 제3자가 피해자를 위해 증언을 해줄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한, 2차 가해가 신고와 조사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 중에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구조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2차 가해의 유형 중 상당수가 ‘불친절한 태도와 부정적 견해’, ‘절차에 대한 고지와 안내 부족’, ‘반복진술, 합의 강요’ 등 관련 업무를 담당한 사람들에 의해 발생되고 있다.

 

사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발생 시, 피해자 본인 뿐 아니라 구성원 전체가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직장 내 성희롱 관련법이 제정된 이후 정부가 “성희롱은 구조적인 문제이며, 피해자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박탈하는 심각한 문제”임을 명확히 하면서 사업주 의무와 처벌 사항을 법에 명기하고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내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해결 과정은 복지와 비용이 아닌, 생명과 안전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관련해 노동조합도 조합원들과 상시 소통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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