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비극은 예정된 것이었다. 최근 3~4년간 드라마 제작 환경은 급변했고, 드라마 편당 제작비도 눈덩이처럼 불었지만 그에 적합한 내부 시스템은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 조사위는 평소 드라마 제작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컸던 고인이 <소방서 옆 경찰서>를 만나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하였으나, 이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스트레스에 고통스러워했던 사실을 확인했다.

고인은 부족한 예산 범위 내에서 작품을 완수해야 한다는 압박과 함께, 촉박한 편성(납기) 일정에 제작을 마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꼈다. 본격적인 촬영 돌입 이후에는 누적되어가는 돌발 변수들이 더해져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까지 내몰렸다. 친한 동료와 선배들은 고인이 사망 수일 전, 고통스러운 마음을 토로했다고 말했다. 

“드라마 사이즈가 너무 커서 감당할 수가 없다” (고인)
“고인이 촬영에 들어간 후 ‘이거 할 수 있을까요? 저희가 이 예산에 맞춰서 할 수 있을까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동료)

공동조사위 활동 전 스튜디오S의 자체 사전조사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사측은 “촬영이 시작되면서 증가한 예산에 대한 관리 부담, 5월 방송 및 납품 일정에 따른 제작 시간의 촉박함, 위험한 화재 신이 연이어 이어짐에 따라 사고 발생 가능성에 따른 책임감”등을 고인의 주요 업무 스트레스 요인으로 지목했다. 

고인은 작품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수차례 해결을 요구했지만, ‘기존의 드라마 제작 관행’을 답습했던 구조 속에서 위기를 알리는 고인의 외침이 받아들여지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동료들과 드라마 제작종사자들은 생전에 밝고 자신감 넘쳤던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으로 ‘원래 이 바닥은 그래’라는 말로 대변되는 드라마 제작 환경을 지목했다. 수년 새 급변한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개인이 감내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들이 응축돼 일어난 비극인 것이다. 그리고 고인은 이제, 남겨진 우리들에게 ‘원래부터 그런 것은 없다’, ‘잘못된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고인의 바람과 유족의 의지로 다음과 같은 개선 조치를 마련했다. 이를 철저히 이행하는 것은 이제 남겨진 우리의 의무이다.
 

<노사공동조사위원회가 확인한 개선 조치>

1. 프로그램 사전 제작기간은 담당 연출자와 프로듀서의 의견을 반영해 첫 방영일로부터 최소 6개월 이상 12개월 내 범위 안에서 정한다.
2. 경영진은 연출자와 프로듀서 등 제작진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분쟁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이의 예방을 위해 정기적으로 제작 현장 고충을 점검한다.
3. 안정적인 인력확보를 위해 정기 공채 실시를 포함한 채용 계획을 수립하고 교육훈련 체계를 구축한다.
4. 프로그램 제작 투입 시 회사차원의 직무 스트레스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한다.
5. 장시간 노동을 제한하고 최소 휴식 시간을 의무적으로 보장한다. 
6. 현장에서 많은 혼선과 갈등으로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노동시간 운영 관련 회사 차원의 ‘52시간 공통 운영지침’을 명확히 수립하고, 안전한 제작 현장 운용을 위해 ‘현장 안전관리 지침'을 수립해 시행한다. 
7. 고충처리 제도의 운영 실질화
8. 위 내용 등을 담은 드라마 제작준칙(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별도 협약을 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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