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회 성평등언론실천상 수상자 인터뷰② 김미주, 김재홍 조합원

범죄물이 종종 선정성 시비에 휘말리는 건, 그것이 갖는 장르적 재미를 포기하기 어렵다는 데에 이유가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 방영됐던 SBS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잔혹한 범죄의 직접 묘사를 지양하고, 사건 내용과 관련한 설명을 최소한으로 처리했다. 드라마의 전개도 범죄 수사와 프로파일링이라는 본질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피해자와 유족이 겪었던 피해의 내용을 적나라하게 전시하며 공분을 자아내는 대신, 범죄 행위가 남겨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겼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는 제1회 성평등언론실천상 수상자인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제작진 - 김미주, 김재홍 조합원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미주 조합원 / 스튜디오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기획 PD

“2018년 여름, <악의 해석자>라는 이름으로 원작을 처음 접했습니다. 드라마와 남겨진 기록 사이에 중심을 잡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이 작품으로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이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 전하고 싶다는 방향이 같았기에, 숱한 흔들림을 견디며 무사히 끝맺음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철저한 자료 조사와 고증, 자문은 필수적이었습니다.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에피소드들에서는 밤낮없이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들을 쫓는 주인공들의 마음속에 ‘피해자를 잊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범죄자들에게 일말의 여지조차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범죄 사건을 다룸에 있어 대본이 완성되고, 촬영과 편집이 진행되고, 매회 방송이 되기까지 긴장과 고민의 끈을 놓을 수 없었어요.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고통과 상처를 안기는 일이 되지 않기를, 매 순간 되새기고 또 되새기며 작업에 임했습니다. 기존 장르 드라마가 주는 쾌감과 서스펜스를 기대했다면 아쉬움이 있을 수 있지만,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만의 주제 의식과 정서를 이해해 주시는 많은 분들을 보며 고심을 거듭해 선택한 현재 기획 방향이 다른 답안이지, 틀린 답안은 아니었구나, 생각했습니다.

제작진이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그리고 그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해 주셔서 매우 놀랐고 무척 기뻤습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로 기획 프로듀서로서 한 뼘 성장했다고 믿고 있기에,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재미있는 작품으로 곧 찾아뵙겠습니다.”

김재홍 조합원 / 스튜디오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공동 연출

”SBS에 드라마 PD로 입사했지만, 저는 드라마도 저널리즘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소프트 파워로서 드라마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이런 의미에서 기획 취지도 좋았고, 제작하는 과정도 좋았고, 결과도 저희가 기대했던 걸 뛰어넘었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은 르포를 원작으로 하는데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범행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어요. 가학적인 범행 장면을 찍는 대신, 경찰이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 범행 내용이 드러나도록 했고요. 범죄자가 성범죄를 저지르는 장면도, 프로파일러가 사건 자료를 검토하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 아무래도 상업성, 시청률을 의식해야 하는 드라마 연출진으로서 고민이 많았겠어요.

“자극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 아무리 시청률이 잘 나와도 이건 망하는 드라마가 된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제작 단계에서부터 모든 제작진들이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어요. 영상이 다소 밋밋하더라도 그런 진심이 잘 전달되면 그게 저희의 의도가 완성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제가 그동안 맡았던 어떤 드라마들보다 제작진들끼리 소통이 굉장히 많이 이뤄졌어요.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정기적으로 만났었고 촬영 도중에도 그런 이야기를 상시 많이 나눴어요.

저희는 특히 김남길, 진선규라는 훌륭한 베테랑 배우 두 분이 계셨고 또 현장에 권일용 교수님이 자주 오셔서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그런 프로파일러로서 고충 같은 것들, 그리고 피해자들이 받았을 어떤 참담한 감정 같은 것을 계속 인지하면서 촬영했던 것 같아요. 조금 계몽적인 단어이기는 하지만 치유, 위로, 같이 공감하는 시선을 이어가려고 노력했어요. 드라마 안에서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로하는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좀 많이 배치했는데요. 김남길 배우가 연기했던 캐릭터의 경우엔 처음부터 피해자에게 공감을 많이 하는 캐릭터로 설정했던 게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던 것 같아요. 

또 중요했던 게 조직에서 연출자의 선택을 굉장히 존중해줬다는 부분, 이게 큰 것 같아요. 제작진들이 ‘우리는 이런 부분이 우려가 돼서 이런 자극적인, 가학적인 장면들을 포기하려고 한다’고 얘기하면 그런 판단을 믿고 맡기는 그런 분위기였어요. 저희 드라마가 방송 심의 상으로 봤을 때 15세 이상 관람가도 고려해볼 수 있었지만, 19세 이상 관람가로 방영됐어요. 피해자와 유족 분들에 대한 2차 피해 우려가 있었고요. 아무래도 청소년 시청자들의 경우엔 모방범죄 같은 것도 염려됐거든요. 이런 제작진의 우려를 조직에서 공감하고 잘 받아주셔서 다행이었어요.“

- 특히 아동 성범죄 사건의 경우엔 촬영하면서 더욱 조심스러우셨을 텐데 주의한 부분이 있나요?
“아역 배우 역시 아동이기 때문에, 아역 배우가 있는 환경에서는 잔인해 보일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배제했어요. 그리고 아역 배우 스스로 지금 촬영 중인 범죄 장면이 어떤 내용인지 그 상황을 유추할 수 없도록 최대한 안 보여주고 가리는 쪽으로 찍은 것 같아요. 디렉션을 부분적으로 주고, 정보를 제한하면서 촬영했어요.”

- 관련해서 촬영 가이드라인 같은 게 있나요?
“저희가 찾아 봤을 땐 딱히 없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고요. 동물보호 단체에서 만들었던 <동물 촬영 가이드라인>처럼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찾기 어렵다 보니... 저희 자체적으로 현장에서 지키려고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도 했어요. 아동심리 전문가가 현장에 상주할 수 있도록 했고요.

아역배우가 이런 장면을 찍는다고 나중에 반드시 트라우마로 발현되느냐? 이건 가능성만 있을 뿐이지 명확하게 인과관계가 성립된다고 밝혀진 건 없는 것으로 알아요. 그래도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대비하자, 이런 취지였어요. 그런데 해외에서는 아역배우 뿐만 아니고 성인배우들도 그런 부분에서 케어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배우들의 심리적인 케어가 의무화돼 있는데, 우리 제작 환경에선 아직까지 어려운 부분이라 이런 부분도 기회가 된다면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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