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A&T 사측이 밀실·졸속 기구개편을 단행한 지 한 달. 무리한 팀 간 통폐합으로 현업 부서의 업무 효율과 구성원들의 사기는 현저히 떨어졌다. 불필요한 협의 절차와 생소한 근무환경에 현장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이질적인 조직을 억지로 한 데 묶어 놓고는 이도 저도 못한 채 팀 내 갈등과 불편만 키우고 있다. 동의 없는 업무변경과 근로시간 확대 등 노동조건의 후퇴 상황도 곳곳에서 감지됐다. 책임감으로 구성원들이 임시방편으로 버티고 있는데도, 사측은 ‘멀티플레이어 육성’, ‘미래지향적 조직’ 같은 뜻 모를 소리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노동조합은 사측에 두 차례(7월 17일, 21일) 공문을 보내 “하루 빨리 교섭에 응하라”고 요구했다. 사전 협의 의무를 하지 않은 것에 양해를 구하고 먼저 교섭을 요청했어도 모자랄 사측이 ‘안건 제시가 명확하지 않다’며 되려 노조를 타박해도, 단체협약 위반에 대한 사과는 커녕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며 노동조합을 모욕해도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하루 빨리 피해를 본 조합원들을 구제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노조의 교섭 요구에 사측이 9일 만에 내놓은 답은 “교섭 거부”였다.    

사측의 의도적 교섭 해태가 확인될수록 조합원들의 분노는 거세졌다. 노동조합은 ‘본부장 편지’를 통해 사측의 교섭 거부가 부당노동행위임을 엄중히 경고했고, 그제야 끌려나오듯 교섭에 응하겠다는 사측의 공문이 도착했다. 엉터리 기구개편으로 방송 노동자의 핵심 노동조건인 공정방송 부문 중간·긴급 평가제 대상이 사라진 지 28일째 만이었다. 

노동자들의 복구할 수 없는 권리 침해 기간이 한 달이나 지난 8월 1일, 노사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어렵사리 마련된 자리였지만, 교섭에 나온 사측의 태도는 불성실하고 무성의했다. 정형택 전국언론노동조합SBS본부장은 조직과 구성원의 미래를 생각해 노사가 좁혀지지 않는 차이를 고집하기 보다는 서로 동의할 수 있는 지점들을 넓혀가는 자리로 만들자고 말했지만, 이동희 A&T 사장은 모두발언에서부터 이번 기구개편은 경영행위이자 인사권에 해당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날 노동조합은 A&T 비상대책위원들의 승인을 거쳐 작성된 노사 특별 합의문을 협상안으로 제시했다. △업무 변경 시 당사자 동의 필요 △임금삭감, 인위적 인력감축 금지 △공정방송 최고책임자 평가 위한 새로운 대상자 선정 △현장 혼선 해소를 위한 노사 협의체 신설 등이 그 내용이었다. 사측이 입장문(7/13)을 통해 지키겠다고 한 것들을 확약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사측은 충분한 고민 없이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관건은 ‘고유의 업무 유지’와 ‘업무 변경에 대한 당사자 동의’ 부분이었다. 사측은 앞서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지금 하고 있는 업무와 다른 일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언급하며 "고유의 업무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구성원들에게 알린 바 있다. 교섭 자리에서 사측은 입장문에서 언급한 ‘고유의 업무’를 ‘직종’으로 해석한다고 밝혔다. 즉, 변경된 팀제 안에서 당사자의 동의를 조건으로 ‘직군’과 ‘직무’의 변경 조치가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영상제작팀’으로 통합된 기존 영상제작 1팀(스튜디오 촬영)과 2팀(야외 촬영) 구성원들의 경우, 앞으로는 사측이 당사자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거쳤다면 두 업무를 병행하는 ‘멀티플레이어’로서 역할을 요구받을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노동조합은 업무변경의 최소한의 조건이 될 ‘당사자 동의’에 대해 합의문 형태로 확약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인사권에 대해 ‘족쇄’를 채우게 되는 것이라며 거부했다. 

구성원들의 실망과 분노, 회사의 앞날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런 수준의 합의문에 동의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노사가 함께 고민하고 숙의해 지금이라도 우리 사업장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노동조합의 진정과 선의는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사측은 이날 조합원의 92%가 이번 기구 개편에 반대한다는 노동조합의 설문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그 결과를 노조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고 모욕했다. 정당한 조합 활동을 선동으로 몰아가는 반 노동적 행태이자,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조합원을 무시하는 망언이 아닐 수 없다. 

사측이 이제라도 노동자들을 향해 사과하고 결자해지하길 바랐던 노동조합의 기대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최소한의 염치와 양심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교섭을 마친 후 노동조합이 다시 한 번 특별합의문에 대한 필요성을 설명하며 발송한 공문에도, 사측은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사측이 거부 의사를 반복하면서 향후에도 협상의 틀을 유지하는 것이 유효한지 근본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생겼다. 앞서 교섭이 열리기 전 비대위는 사측이 협상을 거부할 경우 단체행동 준비에 나선다고 결의한 바 있다.

몇 사람이 밀실에서 주도하는 대신 현장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참극에 피해를 보는 건 오로지 우리 노동자들뿐이다. 사측은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무시하며 헌법에서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노동권'을 제약하고 후퇴시키고 있다. 사측은 대형 로펌에 법률 자문을 받을 게 아니라, 지금 이 시각 현장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합리적인 수준의 합의에조차 응할 자신이 없다면 이번 기구개편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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