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회 성평등언론실천상 수상자 인터뷰① 이현경 조합원 (콘텐츠전략본부 아나운서팀)

스포츠 캐스터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이현경 조합원은 스포츠 중계방송에서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이 재생산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는 제2회 성평등언론실천상 수상자인 콘텐츠전략본부 아나운서팀의 이현경 조합원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 오랜 기간 스포츠 캐스터로서 활동하셨습니다. 여성 캐스터 전례가 많지 않은데,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요?

“우리 회사에서 남녀 캐스터 통틀어 가장 많은 아시안게임, 동 하계 올림픽을 경험한 것 같아요. 2003년쯤? 여의도 시절이었는지 목동으로 이사 온 후부터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처음엔 스포츠팀과 아나운서팀 선배들이 시키니까 했어요. 시작은 볼링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볼링으로 캐스터에 입문하는 분위기였거든요. 전임 선배가 중계하는 거 따라다니면서 어깨 너머로 익히고, 직접 볼링을 배우기도 했어요. 

중계하느라 지방을 오가고 출장도 다니면서 경험이 느니까 점점 스키, 스노보드, 비치발리볼, 컬링, 루지 같은 다른 종목들로 범위를 넓히게 되더라고요. 2006 도하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2년 런던올림픽,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체조, 리듬체조, 다이빙, 아티스틱스위밍(이전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같은 하계종목을 담당하게 됐어요. 동계종목은 피겨스케이팅 캐스터 자격으로 2010년 밴쿠버, 2018년 평창,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 다녀왔고요.

당시만 해도 여성 캐스터는 연차 쌓인 선배들이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고 스포츠에 관심이 전혀 없던 터라 의문이 들었어요. 새벽 라디오 DJ와 데일리뉴스 캐스터를 병행하고 있기도 했고요. 그런데 우리 방송 쪽 사람들 특성이 시키면 일단 하잖아요. 그때부터 파고들었던 거죠. 관련 책을 읽고 선배들이 중계한 비디오테이프 같은 거 있으면 계속 돌려봤던 것 같아요. 2008년 베이징 때만 해도 다이빙과 아티스틱스위밍 같은 경우엔 해설위원이 아예 없어서 혼자 했어요. 

MBC나 KBS엔 대개 해설위원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궁금한 것 있으면 해설하다가 잠시 시간 생겼을 때 타사 중계 부스에 쫓아가서 물어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예를 들어서, 다이빙 선수가 타이밍을 놓쳐서 제때 못 뛰어내리는 상황이 생겼다. 그러면 점수는 어떻게 처리되고, 몇 초 안에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그런 걸 모르잖아요. 지금이야 유튜브 찾으면 다 나오지만요. 그럼 막 타사 부스에 달려가요. 여기저기 타사 해설위원들한테 아느냐고 물어보고. 그러면서 하나하나 익혔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런 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힘든 줄도 모르고. 덕분에 새로운 분야에 아무 거리낌 없이 도전할 수 있었어요. 동 하계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같은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온몸으로 느끼고 마이크를 통해 직접 전달하는 행운도 누렸죠.” 

- 미디어와 젠더를 이야기할 때 스포츠 중계가 주요 파트로 언급될 정도로 스포츠 중계 과정에 고정관념의 발언을 하기 쉬운데요. 현장에서 실제로 경험하셨던 딜레마나 고민이 있을까요?

“제가 맡았던 종목들은 주로 유연성과 근력이 동시에 필요한 스포츠라서 그런지 젠더 이슈가 그렇게 많이 발생하지는 않았어요. 리듬체조, 아티스틱스위밍은 아예 여성들만 참가할 수 있었고, 체조는 여성들끼리만 겨루는 평균대, 이단 평행봉 같은 세부 종목이 따로 있고요. 낙하 자세가 중요한 다이빙 역시 마찬가지 남녀의 속도나 힘 차이가 부각되지 않고요. 

그런데 2008년부터 중계해 온 피겨 스케이팅의 경우엔, 남녀 모두 고난도 기술 못지않게 표현력이 중요한 종목이라서 그런지 선수들의 이미지가 중요해요. 중력을 거스르는 점프는 몸집이 작은 선수들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죠. 제자리에서 도는 스핀은 극강의 유연성과 우아함이 필요하니까 이에 걸맞은 체형의 선수가 더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크고요. 쉴 틈 없이 수행하는 스텝이라든지 활주로 빙판을 가로지르면서도 음악에 맞춰 연기까지 해야 하다 보니 선수의 표정, 팔과 다리의 움직임, 도약과 착지자세, 발끝부터 손가락 끝까지 모두 평가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러니 중계하면서 관련해 코멘트하는 걸 피할 수는 없죠. 

스포츠는 즉시성, 현장성이 강해서 바로바로 말이 튀어나와야 하잖아요. 원고 같은 것도 없고요. 제작진과는 선수 이름의 한글 표기, 만 나이, 국적 이 정도만 이야기해놓죠. 나머지는 화면에 나오는 즉시 그대로 묘사하기 바쁘거든요. 그러다 보니 부지불식간에, 무의식에 튀어나오는 말이 중계되고, 바로 ‘어? 이건 실수다’ 싶어서 바로 정정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지나가 버리면 어떻게 수습할 수 없고... 올림픽 같은 큰 대회는 어른들 뿐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들도 많이 보거든요. 그래서 외양에 대해 그릇된 인식이나 편견을 갖게 할 수 있는 발언 등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에요. 외형적인 것보다는 조금 애매하더라도 운동역학적으로, 의학적으로 표현해 보려고 노력하죠.

예를 들어 선수가 안무할 때 ‘팔다리가 길어서 더 우아해 보인다’라거나 점프할 때 ‘키가 크거나 작아서 불리하거나 유리하다’라고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아요. 대신 ‘무게 중심이 높다, 낮다’라고 표현하려고 합니다. 신장이 큰 선수가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면서 ‘타노 점프’를 할 경우에도 ‘키가 더 커 보인다’라고 하기보다는 ‘회전축이 더 길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라고 언급해요. 자칫 외모에 쏠릴 수 있는 시선을 이왕이면 운동 역학적으로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거죠. 해당 종목 메커니즘의 이해가 깊어질수록 보시는 분들이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으니까요. 

요즘은 젠더 이슈만큼 성소수자나 인종 관련해서도 여러 측면에서 고민해요. 표현할 때에 주의해야 할 부분이 정말 많더라고요. 소수자 이슈와 관련해선 혐오나 차별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죠. 저 같은 경우엔 해설위원들과 같이 호흡을 맞추면서 ‘저를 믿고 편하게 말씀하시라, 혹 문제가 될 것 같은 부분이 있으면 제가 바로바로 교정하고 수위 조절을 해드리겠다’고 말씀드려요. 저희와 다르게 해설위원들은 방송 전문가가 아닌데 자꾸 스스로 검열하게 하면 말하기 자체를 주저하게 되거든요. 그래야 해설위원도 덜 긴장하면서 말씀하시고, 시청자들도 마음 편하게 경기를 즐기실 수 있을 테니까요. 

일하면서 느끼는 고민이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비슷한 처지의 여성 캐스터들이 주변에 거의 없으니까 외로웠어요. 물론 함께 일하는 제작진, 스태프, 해설위원, 아나운서 동료들과 나누는 즐거움도 있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2%가 있어요.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은 제 기억으로 아예 3사 통틀어 여성 캐스터가 저 한 명뿐이었거든요. 

남성 캐스터와 여성 캐스터를 단순 비교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에요. 하지만 많은 경우 여성 캐스터에 대해 이야기할 때 파이팅이 부족하고 때로는 감정적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선 고민이 깊어요.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때 남자 싱글의 차준환 선수가 프리 연기에서 두 번째 고난도 점프를 실수 하고 나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연기를 완성하는 모습에 감동해서 울음이 터진 적이 있거든요.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눈물이었지만, 아무래도 이후에 반응이 어떻게 나올까 마음을 졸이게 되더라고요. 다행히 시청자와 제작진이 같은 마음이었다면서 좋은 피드백을 보여주셔서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어요. 

러시아 여자 싱글 선수의 도핑 사건이 터졌을 때는 해당 선수가 경기를 강행하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다뤄야하나 고민이 돼서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어요. 관련 선수의 경기 중에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걸로 제작진과 사전 협의를 했고, 경기 직후에 차분하게 쏟아낸 코멘트가 오히려 날카롭고 속 시원하게 느껴졌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종목에 대한 애정과 진정성을 진심을 담아 표현하는 것. 큰소리로 외치지는 않아도 격조 있고 냉철하게 전체를 관망하는 것. 그게 여성 스포츠 캐스터로서 제가 추구하는 목표예요.

스포츠 캐스터로 지내며 갖게 된 또 하나의 즐거움은 스스로 다양한 종목의 마니아가 된다는 점에 있어요. 제가 중계하지도 않는 경기인데 일일이 챙겨보고 댓글 달고 인스타에 막 관련 소식을 업로드하고... 그래서 요즘은 피겨 팬들도 종목에 대한 애정 하나만큼은 인정해 주는 느낌? (웃음) 그렇게 인정을 받게 되더라고요, 아주 어린 시절에 중계한 기억이 있는 선수가 이제는 아들 딸 낳고 그런 것까지 데이터가 쌓이니까 애정하지 않을 수 없고. 예전 얘기를 하다 보면 선수가 “저보다 더 저를 많이 아시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해줄 때도 있고요. 

이번에 노동조합에서 의미 있는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동료들이 인정해 주시는 상이니 정말 뿌듯했어요. 스포츠 캐스터로 지낸 시간은 제 아나운서 인생에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이 정말 중요해요. 앞으로도 스스로에게 한계나 제약을 두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노동조합과 조합원 동료들께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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