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회 성평등언론실천상 수상자 인터뷰② 김서연 조합원(라디오센터 1CP)

콘텐츠를 제작하다보면 미디어의 역할이 사회의 차별과 혐오를 그대로 담아내는 거울이어야 하는지, 혹은 사회보다 한 발짝 앞서 걸으며 고정관념의 재생산을 지양하고 여성의 더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는 길잡이여야 하는지 고민이 생긴다. SBS 러브FM <김선재의 책하고 놀자> 연출을 맡고 있는 김서연 조합원(라디오센터 1CP)는 미디어에서 흔히 다루지 않는 소재들을 통해 여성의 다양한 삶을 다채롭게 드러내려는 시도를 꾸준히 실행해 오고 있다. 


▣ 나이든 여성의 혼자살기 가시화 (『에이징솔로』, 김희경) -′23.4.16
20-30대 비혼여성의 삶은 미디어에 비교적 자주 노출되는 편이다. 하지만 40·50대 비혼여성의 삶에 관해서는 공백이다. 젊은 연령대보다 손쉽게 결혼 ‘못’한 여성의 삶이나, 이혼 혹은 사별 ‘당한’ 여성의 삶으로 납작해지곤 한다. 혼자 살아가는 중년 비혼여성 19명이 한국사회에서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 외로움에 대처하고 친밀감을 만들어가는 방식, 노후를 준비하는 여정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그로써 여태 빈 칸으로 남아있던 중년 1인가구 여성의 삶이 다채롭게 채워진다.

https://web.gorealra.sbs.co.kr/player.html?v=V0000328499&e=P0000001315

▣ 여성의 난임과 유산 가시화 (『헬로 베이비』, 김의경) - ′23.4.19.
요즘도 난임 병원에는 사람들이 붐비고, 어지간하면 예약조차 쉽지가 않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 해서까지’ 아이를 원하는 여성은 누구일까?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를 거부하는 여성이 새로운 여성상으로 대두되는 요즘, 아이를 원하는 여성들은 구식이라는 평을 들을까봐 숨어든다. 시험관시술을 받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직장 내 여성들은 일 할 의지가 없는 동료로 간주될까봐 또 숨어든다. 유산 경험은 더하다. 유산은 모체(母體) 탓으로만 귀인 되는데, 심리적 후유증 역시 아이의 육체를 느꼈던 모체(母體)만의 몫이다. 유산 경험자들은 불완전한 모체가 되어 점점 숨어든다. 본 방송은 이렇듯 한 번도 호명된 적 없는 이 여성들의 상처와 이야기를 발화한다.

https://web.gorealra.sbs.co.kr/player.html?v=V0000328499&e=P0000001309

▣ 여성의 ‘야망과 권력’ 가시화 (『Epic!: The Women's Power Play Book』, Carolyn Buck Luce) - ′23.5.7
여성이 거부감을 보이는 단어가 있다. 정치, 야망, 권력…. 기존의 리더십이 남성의 시각에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여성도 스스로를 영웅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야망이 있으면 있는 대로, 권력을 갖고자 한다면 상승욕구에 충실하게, 정치싸움에서 어떤 수를 써서든 승리하고 싶다면 그대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영웅이 될 수 있다. 사회가 주입한 ‘여성다움’에 갇혀 온순해질 필요 없다.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호랑이가 고양이가 되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https://web.gorealra.sbs.co.kr/player.html?v=V0000328499&e=P0000001332

▣ 여성의 ‘장애와 투쟁’ 가시화 (『전사들의 노래』, 홍은전) - ′23.5.14
장애인을 상상해보라고 하면 대부분은 남성 장애인을 떠올린다. 여성은 중첩되어 소외되는 셈이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서도 전면에 드러나는 것은 남성인 박경석 대표이다. 하지만 장애인운동의 투쟁사에서 여성들은 적지않은 동력을 제공했다. 장애 당사자로 살면서, 주변 장애인들과 연대하여, ‘여성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운동에 투신한 여성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https://web.gorealra.sbs.co.kr/player.html?v=V0000328499&e=P0000001339

▣ 여성의 ‘육체적 강함’ 가시화 (『나의 친구, 스미스』, 이시다 가호) - ′23.5.21
보디빌딩의 세계에서 ‘여성다움’과 싸우는 여성의 이야기다. 강해지고 싶어 보디빌딩 대회에 도전하지만 주변 상황은 아이러니 하다. 여성 보디빌딩 대회는 남성 대회와는 달리 근육 외의 미적기준과 관련한 심사 항목이 많기 때문이다. 출전하기 위해 살을 태우고, 제모를 하고, 피어싱을 하고, 12센티미터의 하이힐을 신은 채로, 좀 더 활짝 웃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여성의 신체에서 교차하는 상업성과 젠더성을 이야기한다.

https://web.gorealra.sbs.co.kr/player.html?v=V0000328499&e=P0000001346

 

 

- 아카데믹한 내용의 책을 많이 다뤘던데, 방송으로 풀어낼 때 PD로서 고민이 깊겠습니다

“청취자들은 책을 읽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다뤄야 하니까 아무래도 그렇죠. 좋은 책일수록 심도 깊은 내용을 담고 있을 때가 많잖아요. 지상파 라디오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할 수 있어야 하니까 어떤 책은 결국 못 다룬 적도 있어요. 그런데 내용이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고리만 잘 찾아내면, 그래서 청취자를 설득할 수 있다면 해볼 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저자 초대석’ 같은 코너는 신간 중에서 저자를 찾아야 하거든요. 요즘 정말 새 책이 많이 나와요. 그래서 서점에 가서 찾아보기도 하고, 언론사에서 리뷰 기사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것도 찾아 읽고. 

라디오는 전통적인 성격의 매체여서 그런지 여성 스피커가 잘 없어요. 뉴스도 그렇지만 교양이나 시사 프로그램 쪽으로 가면 그런 경향성이 더 두드러지죠. 출연하는 패널들도 그렇고, 다루는 소재도 그렇고 균형이 많이 깨져있는 상태입니다. <책하고 놀자>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을 최대한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하는데, 다행히 그게 또 책을 매체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까 수월한 면이 있어요. 소설을 통해서 한 여성의 삶을 깊게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논픽션인 경우에는 작가 스스로의 삶 자체가, 좀 특수한 삶을 살아낸 사람이 경우도 있다 보니까 다양한 여성상을 보여주는 게 가능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삶이든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라운 부분이 있잖아요.

얼마 전엔 난임 부부를 다룬 책을 소개했거든요. 청취자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많이 다뤄지지 않다 보니 소재로 다뤄진 것만으로도 반가웠다는 반응이 있었어요.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건가?’ 싶어서 외로울 때가 있었는데 방송에서 다뤄지는 걸 보니 꼭 그렇지 않아 보인다며 위로를 받았다고요. 난임 부부들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었죠.”


- 기억에 남는 책이나 저자가 있나요?

“천운영 작가가 나오신 적 있어요. 엄마와 딸에 대한 책을 쓰셨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어렸을 때와 나이가 든 이후에 엄마를 보는 마음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동안은 엄마의 삶을 가부장제에서 고통 받은 피해자의 모습으로 단정해 왔는데, 정작 당사자인 엄마는 그걸 원했을까? 그러니까 엄마도 엄마가 피해자로 그려지는 걸 원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는 거예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엄마에게 ‘당신은 가부장제에서 희생당한 개인이다’, 이런 식으로 깨우치게 하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그렇게 엄마가 스스로의 삶에서 주체적으로 살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사회의 시선으로 엄마의 인생을 재구성했을 때, 엄마가 느끼게 될 감정 같은 건 어떻게 하느냐는 거죠. 

제가 학부 때 사회학과를 나왔는데, 교수님들이 사회의 구조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점점 시니컬해지고 개개인의 마음에 대해선 헤아리지 못하게 된다, 그런 조언을 많이 하셨어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작가님의 말씀을 들으며 이해가 되더라고요. 사회구조가 어떻고 권력관계가 어떻고 이런 이야기를 하긴 쉬워도, 누군가의 인생이 그것들의 부산물처럼 설명되어지고, 당사자들이 그런 사실을 인지하게 될 때. 그게 그들을 해방시킬까, 아니면 회한을 느끼게 할까. 이런 생각은 잘 못 해봤던 것 같고 그래서 작가님의 말씀이 저에겐 신선했어요.” 
 

- 여성 관련 책을 다루면서 청취자에게 항의를 듣거나 백래시를 당한 경험이 있나요?

“딱히 그런 적은 없어요. 라디오 방송의 청취자들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프로그램이나 DJ에게 우호적인 분들이라 그런지 아직까진 라디오가 심리적으로 안전한 공간 같아요.

‘내가 여성 PD여서 여성 이야기에 더 집중하나?’ 이런 생각을 한 적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결론은 티가 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게 티가 나야 하고, 왜냐면 여태까지는 티가 너무 안 나서 문제였던 거잖아요. 세상엔 아직도 미디어를 통해 조명되어본 적 없는, 다뤄지지 않았던 여성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정말 많아요. 

후배들도 보면 요즘 입사하는 친구들일수록 젠더 감수성이나 이런 것들이 기성 선배들에 비해서 뛰어나잖아요. 후배들이 그런 모습을 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제 역할이겠다. 이런 생각을 요즘 정말 많이 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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