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회 성평등언론실천상 수상자 인터뷰② 김재환 PD, 신진주 작가, 유진훈 PD (시사교양본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선아(가명)는 다니고 있던 재수학원에서 조퇴한 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숨지기 한 달 전쯤, 선아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한 중개 플랫폼에 이력서를 올렸고, 스터디 카페의 총무를 구한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이후 선아는 난데없이 면접을 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선아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SBS 시사교양본부 김재환 PD와 신진주 작가, 유진훈 PD는 선아에게 일어난 일을 추적하며 아르바이트 면접을 미끼로 한 성착취 사건을 조명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1371회 : 짱구맨과 이상한 면접 - 20살 선아는 왜 죽음을 선택했나?).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는 제3회 성평등언론실천상 수상자인 김재환 PD(시사교양본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12일 시상식 당시 (왼쪽부터) 신진주 작가, 김재환 PD


- 여러모로 다루기 어려운 소재였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취재를 시작하게 됐나요?

김재환 PD 
“지난해 ‘부산 서면 돌려차기 사건’을 취재하면서 연결된 여성단체 쪽에서 제보를 주셨어요. 피해자 유족들이 저희에게 신뢰를 갖고, 용기를 내셨고요. 단초가 된 사건은 재수생 ‘선아(가명)’의 죽음이었어요. 부모님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어서, 용돈이라도 벌어보자는 마음에 스터디 카페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게 된 거죠. 아르바이트 플랫폼을 통해 이력서를 올리고 한 남성에게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아요. 남성이 그러곤 모호하게 설명을 하더니 면접을 위해선 다른 장소로 이동하자고 하는데, 유사 성행위 업소였던 거죠. 이후 선아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남은 건 친구들의 진술과 일부 메시지뿐이었어요. 당시 성관계가 동의된 것인지, ‘위력’이 작용했다면 어떤 식의 압력이 있었던 건지, 물리적인 폭행이 동반된 강간인 것인지 등이 관건인 사건이었어요. 

무엇보다 이런 사건이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고, 대부분의 유입 경로가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플랫폼들이라는 걸 시청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이런 고리들을 끊으려면 어떤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 취재를 시작한 뒤엔 특히 어떤 점이 어려웠나요?
”고인이 숨지면서 당사자의 주장을 들을 수 없는 상태라는 점이 가장 힘들었어요. 성범죄는 본인 진술이 없으면 사실상 수사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선아 같은 경우엔 숨지기 전에 친구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 내용이 있었는데, 일종의 전문 진술이다 보니 효력이 굉장히 낮게 여겨지더라고요. 

친구들의 진술 중에 선아가 성폭행을 당할 시 ‘두 사람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게 ‘감금’일 수 있거든요. 유,무죄 판단, 양형과 관련해 감금이 성립되느냐가 굉장히 중요했는데 그걸 입증할 방법을 유족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거죠. 저희가 취재를 하며 실제 해당 공간에 가봤는데 거기서 바로 느꼈던 건 ‘이런 곳에서 공포심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였어요. 갑자기 이끌려 가게 된 공간, 거기에 남자 3명이 있고, 문 밖에선 두 명이 지키고 있고. 계단을 그렇게 올라가고, 철문이 있고, 거기에 유리문까지 있는데 그런 허름한 상태의 방에 스무 살 학생이 성관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더라고요. 가해자에 의해 완전히 통제된 공간이잖아요.

방송을 앞두고 가해자 쪽에서 방송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기도 했는데, 당시 선아와 합의된 상황이었다는 주장이었어요. 물론 무죄 추정의 원칙은 지켜져야겠지만, 성범죄라는 게 엄청난 폭력이 수반되거나, CCTV 기록 같은 게 정확히 확보되지 않는 이상은 이걸 입증하기가 너무나 힘들잖아요. 피해자들이 이걸 직접 소명하는 과정도 끔찍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선아 외에도 다른 피해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선,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이게 너무 민감한 내용이고 어린 친구들이다 보니까 취재가 많이 어려웠죠. 무리하게 만나는 것도 어떻게 보면 2차 가해인 것이고. 가해자는 끝도 없이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는데, 피해자 입장에선 어쨌든 그 장소로 걸어 들어간 것은 맞기 때문에 정말 어려운 거예요. 피해자를 교묘한 함정과 덫에 빠지게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 아르바이트를 중개하는 플랫폼에겐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인 것 같은데요.

“중개 플랫폼 입장에선 구직자가 아닌 구인자 중심으로 이윤이 발생하다 보니, 시스템도 구인자 중심으로 돌아가더라고요. 구직자 보호를 위해 기업에 보호 조치를 강화하라고 요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거죠. 고용노동부 입장에서도 어쨌든 고용을 촉진하는 게 역할이잖아요. 시장의 논리만 맡겼을 때엔 딱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이런 플랫폼들이 '안심번호'라고 해서 구직자의 번호는 노출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데, 실은 답장을 하는 순간 개인 번호가 노출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구직자 입장에선 이 일자리가 괜찮은 것인지 충분히 따져보고 고민해 보고 이럴 수 없는 게 빨리 답장하는 자체가 면접의 과정이잖아요. 그런 게 구직자를 평가하는 태도가 되기도 하고요. 구직자들이 위험에 노출되기에 너무 취약한 구조인 거죠.

아르바이트 중개 사이트에 공개한 이름과 사진, 연락처, 주소, 학력은 모두 협박의 요소가 될 수도 있어요. 너무 많은 개인정보가 한 번에 넘어가게 되니까 이런 부분에 대한 조치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성매매나 유사 성매매에 대한 공급이 이 플랫폼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규제가 생겨야 할 것 같아요. 특히, 이번 사건은 비교적 관리를 하고 있다는 메이저 플랫폼에서 발생하였는데, 중소 플랫폼들의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고요. 문제는 이용제한을 해서 막더라도 풍선효과라고 해서 다른 중개 플랫폼으로 가서 유사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동종 업계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요.”


-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거나,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성착취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 연쇄적으로 성폭행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겠구나, 그럴 개연성이 굉장히 높아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이쪽 방면에서 많이 사용하는 개념인데 ‘교육방’이라고 처음엔 ‘어떻게 손님들이랑 하는지 설명해 줄게’ 이렇게 불러내서 성폭행을 하고, 그거를 영상까지 찍어서 협박을 한다거나 아니면 ‘나 네 정보 다 알고 있어’ 이런 식으로 하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유입이 되는 거죠. 

이 일이 발생한 부산 지역에서 비슷한 케이스로 기소된 사람들이 초범인 경우에는 대부분 집행유예을 받은 거죠. 공동으로 유사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면서 한 사람이 집행유예 받고 그럼 나머지 다른 사람이 운영을 하고. 이런 식으로 대처하기 때문에 사실상 아무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질 않는 거예요. 선아의 경우엔 이 친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수사와 재판으로까지 간 것이지, 대부분의 경우에 가해자 쪽에 넘어간 개인정보를 빌미로 협박을 받고 그럼 문제제기를 이내 포기하게 되는 거죠.

방송을 마치고 나면 아무래도 휘발되는 느낌이 있어서 어느 때엔 조금 허무할 때도 있고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데 이 상을 받으니 그때 열심히 취재했던 기억도 나고 앞으로 좀 더 의미 있는 방송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팀에도 큰 자극이 되는 것 같고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끝)

저작권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SBS 본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