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회 성평등언론실천상 수상자 인터뷰① 김화정 PD, 장정희 작가(스튜디오프리즘)

<골 때리는 그녀들>은 축구 경기를 펼치는 여성 방송인들의 모습을 통해, 여성 스포츠의 저변을 확대하고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 재생산을 지양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는 제3회 성평등언론실천상 수상자인 스튜디오프리즘 <골 때리는 그녀들>의 김화정 PD, 장정희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12일 진행된 인터뷰. (왼쪽부터) 장정희 작가, 김화정 PD
지난 12일 시상식 당시 (왼쪽부터) 장정희 작가, 김화정 PD

- ‘스포츠 경기를 하는 여성’이라는 소재가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처음 기획 단계에서 어떤 고민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장정희 작가

“전 <골 때리는 그녀들> 기획에 모티브를 줬다고 볼 수 있는 <불타는 청춘> 때부터 함께 했는데요. 코로나 시기라서 할 수 있는 아이템이 얼마 없던 때였어요. 캠핑장을 빌려서 체육대회를 하는데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경기를 하게 된 거예요. 축구, 제기차기 같은 건 저도 초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해보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몸싸움 하고, 반칙하면서 깔깔 웃기도 하고. 시간이 정말 금방 가더라고요. 그래서 설 특집 파일럿 기획안을 낼 때 이걸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온 거예요. ‘내가 재밌었으니 다른 사람들도 무조건 재미있을 거야’ 이렇게 공감대가 만들어져 있다 보니 이야기가 쉽게 풀렸던 기억이 나요.

처음엔 솔직히 젠더, 성평등, 이런 고민보다는 ‘시청자에게 어떻게 하면 축구가 좀 더 쉽게,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을까?’ 이게 늘 1번이었던 것 같아요. 축구를 제작진도 완벽하게 잘 몰랐고, 그래서 이걸 좀 친근하게 알려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때 생각났던 게 2002 월드컵 전사들이었던 거죠. 우리에게 익숙한, 정말 대단했던. 축구에 한 획을 그은 분들이 가르치는 역할을 맡는다면 시청자들도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도움을 요청했죠.”
 

김화정 PD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정말 지키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우리 제작진 보면 프로그램을 이만큼이나 진심으로 애정할 수 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프로가 얼마나 재미있고 친숙하게 다가갈 것인가가 초기엔 저희의 큰 고민이었어요. 프로그램 성격상 중간에 여성 감독님들을 섭외하려고 시도한 적도 있는데, 아직은 여성 감독 풀 자체가 확실히 작고요. 다들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결국엔 모시기가 어려웠죠. 지금처럼 합이 좋아지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감독님들과 선수들의 케미도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이기 때문에 현재 이렇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엔 페미니즘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잖아요. 그래서 자막 하나하나 쓸 때도 정말 고민돼요. 출연자들을 악플로부터 보호해야 할 일들도 생기고요. 여성 선수들도 경기를 열심히 하다 보면 당연히 분노하고 실망하는 감정들을 표현하는데요. 같은 행동과 말을 남성이 했을 때와 비교해 보면 확실히 악플의 수위와 정도가 다르거든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다 보면 점차 그 경계가 흐릿해지지 않을까,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죠. 여전히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은 있어요.”

- 제작진이 좀 더 성평등한 프로그램을 위해 고민한 흔적들엔 무엇이 있을까요?

김화정 PD

“파일럿부터 같이 한 팀 중엔 <불타는 청춘> 멤버들이 있어요. 처음엔 ‘싱글 여성들의 팀’이라고 썼는데 조금 조심스럽더라고요. 굳이 비혼자, 기혼자 이렇게 나눠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게 팀의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그런데 그것 외에는 ‘<불타는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시작한 팀’이라는 사실을 간명하게 표현할 방법이 딱히 없었고요. 수많은 팀들이 나오다 보니 구성상 각 팀마다 컬러를 확실히 주는 게 좋은데, 나이가 있는 싱글들이 함께하는 팀이라는 정보, 정체성을 이어서 가고 싶은데 좀 어색하다고 해야 하나요. 그래서 되게 고민하고 후배들과도 의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나중엔 실제로 결혼하는 멤버들도 생기고 해서 불나방에서 불나비로 팀을 리뉴얼했어요.

현장에서 실시간 출연자들의 멘트를 모니터링 하다 보면 조금은 불편하거나 어색한 표현들이 들릴 때가 있어요. 이게 사실 쉬운 일이 아닌 게, 우리도 편하게 분위기 좋게 웃기려고 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말을 할 때가 있잖아요. 그게 누군가에겐 불편한 말일 수도 있다는 걸 의식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말 의도치 않게요. 모두가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나온 이야기들이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녹화본을 보고 편집할 때엔 아무래도 신경 써서 모니터링하고 있어요. 

젠더 감수성 관련된 표현들은 업데이트가 빠르기도 하고, 그래서 계속 공부가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멘트나 자막을 두고 제작진끼리 끊임없이 모니터링하고 의논하고, 그런 작업을 반복하고 있어요.”
 

장정희 작가

“저희 유니폼을 결정할 때 특히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유니폼 업체에선 약간 달라붙게, 여성 라인 같은 걸 살리는 디자인도 있다고 하셨는데 저희가 생각했을 때는 아닌 것 같은 거예요. 운동을 하는 데 포커스를 맞추면 된다, 굳이 예쁘게 보일 필요가 없다. 그래서 좀 헐렁한, 박시한 디자인을 입게 된 거죠. 

여성 주심이 오시게 된 부분은 김병지 감독님이 처음 세팅할 때 정말 많이 도움 주셨고요. 처음에는 경기장에 여성 주심이 계신 게 조금 낯설기도 했어요, 아무래도 안 보던 그림이니까. 여성 심판들이 경기장에 서 있는 모습이 오히려 시청자들에겐 작위적거나 의도적으로 보이진 않을까 걱정했는데요. 나중에 알게 된 거긴 하지만 외국에선 여성 주심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냥 이게 정말 평범한 거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 이젠 ‘여성도 이런 분야에 도전할 수 있어’ ‘여성도 이런 걸 재미있어 할 수 있어’ 같은 메시지만으로는 조금 올드하다고 할까요. 실제 우리 주변에서 여성 축구 동호회나 클럽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요. 프로그램을 처음 기획했을 때보다 진일보한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것 같습니다. 

김화정 PD


“저희도 그 고민이 제일 커요. 회의도 많이 하고 있고. 어쨌든 그 신선함이라는 것은 끝났고 이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메시지란 게 ‘여성도 할 수 있어요’에서 ‘여성도 이만큼이나 잘할 수 있어요’여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보다 더 많은 여성이 이렇게 할 수 있어요’가 돼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다른 것도 할 수 있어요’가 돼야 하는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 큰 요즘인 것 같습니다.” 


장정희 작가

“애초에 시작할 때는 ‘여자도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기 보다는 제가 직접 불청에서 뛰어보면 ‘와, 이 재밌는 걸 남자들만 하고 있었네? 이렇게 재밌는 걸 왜 우리는 몰랐지? 우리도 즐겨야겠다’ 이런 생각이었든요. 저도 필라테스나 요가 유행할 때 한 번씩 해 보기도 했는데 그건 정말 혼자 하는 거니까 자신과의 싸움 같은 거예요. 팀 스포츠라는 게 이렇게 매력 있는 건지 몰랐던 거죠. 다 같이 술 먹는 자리에서 친해지는 거랑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살면서 못 느꼈던 재미인데, 이 재미있는 걸 어떻게 하면 더 널리 알려야 하나 그래서 일단 이걸 즐기는 여성들이 많아졌다는 자체가 반갑고 즐겁고 그런 마음이에요. 요즘엔 여성 남성 혼성으로 뛰는 게임도 늘었더라고요. 지금까지도 충분히 반가운 변화이긴 해요. 

4팀으로 시작했던 프로그램이 6팀, 지금은 11팀까지 늘었거든요. 지금 11팀에 6명이니까 선수들이 총 66명이잖아요. 이 선수들이 하나같이 정말 축구를 좋아하고 잘하고 싶고 이기고 싶어해요. 요즘엔 골때녀라는 프로그램이 일종의 플랫폼이라면, 여기서 선수들이 자율적으로 진정성 있게 축구에 대한 사랑, 각자의 세계관 같은 것들을 구축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저희 프로그램이 잘 됐던 것도 출연자들이 ‘나 요즘 축구해’ ‘나 이게 너무 재미있고 열심히 하고 있어’ 이렇게 인스타에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거든요. 바이럴이 된 거죠. 

66명의 여성 선수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66명 각자가 스스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색깔을 찾아가는 것 아닌가. 그게 우리 프로그램의 성격이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세상 사람들이 봐왔던 정형화된 어떤 여성 직업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면, 여기는 그냥 나를 만나는 공간인 거죠. 이를 악물고 인상을 찌푸리고 뛰는 것도 보여줄 수 있고, 가끔은 분해서 울기도 하고, 경기하다가 든 멍을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도 있고. 그런 다양한 모습이요.” 

- 마지막으로 앞으로 다짐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김화정 PD


“아까 이야기 나왔던 것처럼, 젠더 롤이 바뀐 것만으로 신선해 했던 시청자들이 이제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메시지를 원한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측면에서 저희 제작진들이 고민을 좀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시대에 걸맞은, 뭔가 저희의 발맞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도 추천해 주셨는데 여성 캐스터가 익숙해질 수 있게 매번은 아니더라도 이벤트처럼 만이라도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전에 지소연 선수가 한 번 한 적은 있는데 아직까지 스포츠 캐스터는 남성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으니까 그 부분에서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감독님들이 뛸 때 여성 선수들이 감독을 맡아본 것도 그런 맥락이에요. 아직 그들이 실제 감독을 할 수 있는 역량이 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도 그런 시도가 신선하게 느낄 수 있다면, 재미의 요소로 다가가되 그것이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게 하는 것. 의미를 부여하고 여러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화면에서 전엔 볼 수 없었던 어떤 장면들, 어떤 시도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하는 것. 그것이 예능이 할 수 있는 역할 아닌가 싶어요.
 

장정희 작가

“이런 상을 받으면서 또 평소에 하던 고민이었지만 더 진지하게 해보고, 책임감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방송을 보는 꼬마들에서부터 남녀노소 모두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방식으로 친근하고 재미있게 공기처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노력들을 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여성에 대한 외모를 가지고 차별적인 멘트를 하고 그것으로 웃는 분위기가 이제는 불편하잖아요. 전에 있었던 그런 모습들을 걸러내고 다른 방식의 웃음을 보여줄 수 있는, 그리고 그 변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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