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구성원들은 물론 다시 조금씩 신뢰를 보내던 시청자들을 경악하게 만든 지난 5월 2일의 보도 참사를 두고 많은 이들이 책임을 따져 묻고 강도 높은 비난의 언어들을 안팎에서 쏟아내고 있다.

어찌 보면 구성원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공들여 쌓던 탑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 참사에 대한 원망과 질책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냉정히 묻고 싶다. 과연 그렇게 몇몇 개인의 실수와 부족함에만 이 사태의 책임을 돌리면 SBS 보도의 실력과 수준은 바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 이번 참사가 그저 권한 없는 평기자와 데스크만의 책임인가? 단언컨대 대답은 ‘NO’이다.

장악과 탄압, 순치를 기본으로 했던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SBS의 방송 독립성, 보도의 정치적 중립성,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라는 기본 원칙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경영진은 그 기간 내내 ‘정치권력에 밉보이면 회사에 불이익이 올 수 있다’는 메시지로 끊임없이 보도본부 기자들을 겁박했다.  8뉴스에서는 9년 내내 ‘MB어천가’, ‘박비어천가’가 흘러 넘쳤다. 청와대와 거대 광고주에 대한 비판은 금기로 자리잡았다. 경영진은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취재와 방송이 만들어질까 우려했는지 보도본부가 제작하던 고발 프로그램을 이름 바꾸고 조리돌림 하듯 시간대를 옮기다가 지금은 프로그램이 남아 있는지조차 인식하기 어려운 토요일 아침 시간대에 쳐 박아버렸다. 이런 환경이 지속되면서 후배기자들은 권력과 자본에 대한 정보 수집과 비판적 검증, 팩트(fact)의 합리적 조합을 통한 진실 접근, 명료한 구성을 통한 방송 전달까지 제대로 훈련 받을 기회와 통로를 박탈당한 채 하루하루 컨베이어 벨트에서 기계적으로 나사를 끼워 맞추듯 통조림 같은 뉴스를 찍어내는 조직의 소모품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또 문제를 제기하는 구성원들에게는 인사, 평가 등을 포함한 직간접적 불이익을 줘가며 교묘히 통제했다. 비판적 기사 작성과 거대권력에 대한 심층취재를 위해 노력하는 강한 ‘저널리스트’들보다 적당히 문제를 무마하고 날 선 비판을 두루뭉실하게 만들어 권력과 대주주의 심기를 살필 줄 아는 눈치 빠른 ‘관리자’들이 중용됐다. 저널리스트들의 장인정신은 사라졌고 위만 바라보는 월급쟁이의 생존논리가 조직을 덮어 버렸다. 보도본부에는 치열한 토론 대신 군대식 상명하복만이 유령처럼 떠돌았다. 모두가 입은 다문 채 ‘YES’만이 난무하는 거대한 독서실로 전락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저널리스트의 영혼보다 관리자의 기술이 대접받는 광경에 불이익이 두려운 후배들은 말을 하지 않은 지 오래다. 어차피 주문대로 고쳐질 기사에 영혼을 담는 것은 헛고생으로 인식됐다. 어떻게 그것을 제대로 담아 내는지 조련하는 시스템과 사람은 조직의 중심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책임감과 사명감은 위아래 할 것 없이 조직에서 증발해 버렸다.

결국 거친 쇳덩이 같은 날 것의 취재 정보들을 담금질해 순도 높은 보검 같은 기사로 만들어야 할 대장장이의 실력은 퇴행을 거듭했고, 무딘 망치질 아래 제대로 다듬어지지 못한 투박한 칼날 같은 방송은 결국 우리 스스로를 찌르고 말았다. 

이제는 일이 터져도 제대로 들춰보지도 않는 ‘보도준칙’에 담긴 우리 보도의 본질적 DNA는 이렇듯 거세됐다. 이는 지난 해 10월 말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1차 보도 참사를 통해 숫자로도 증명되는 경쟁력 하락으로 흉측한 몰골이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안타깝게도 그나마 뒤늦은 깨달음으로 혁신을 주창했던 S –TF의 본질적 문제의식은 처음부터 혁신을 제대로 구현하기에 역부족인 인사들로 채워져 좌초했고, 최순실 사태 이후의 보도 조직 개편은 졸속적이고 역행적이기까지 했다.  일부 세대 교체가 이뤄지기는 했으나 이마저도 거세된 보도 본연의 DNA를 제대로 복원하기보다는 앙상하게 남은 뼈대를 화려한 화장과 옷차림으로 덧씌워 순간순간을 모면하는 임기응변이 근본적 혁신을 대체해 버렸다.

근근이 버티던 임기응변은 한 순간의 실수로 다시 조직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조직도 속에만 존재하는 시스템은 이 과정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기본이 사라지고 혁신의 영혼이 담기지 않은 시스템은 그저 그림일 뿐이었던 것이다.  

5.2 보도 참사는 그 충격과 파장이 초래한 SBS의 신뢰도 추락 등을 고려해 볼 때 과거의 어떤 방송사고나 오보 사태보다도 무겁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다시 눈치 빠른 관리자들의 땜질과 말 잘 듣는 월급쟁이들의 돌려 막기로 위기를 덮으려 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무너진 신뢰를 되돌리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과감한 혁신만이 살 길이다. 근본적 혁신의 DNA를 갖춘 인물을 연공서열에 관계없이 발탁하고 경영 현안과 보도의 본질적 기능을 이제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보도 독립을 이루자는 간절함과 기본부터 다시 쌓자는 보도본부 전체 구성원들의 진정성이 결합된 실천 말고 다른 지름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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