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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체제는 역사적 책무를 이행하고 있는가?
  •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
  • 승인 2018.11.2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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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노동조합은 Reset! SBS! 투쟁 과정에서 자진 사퇴했던 창업주를 명예회장으로 추대하는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했다. 이는 비록 RESET! SBS!의 과제들이 완결적으로 이행되지는 않았으나, 사내 신뢰회복과 노사갈등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대승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지지부진한 10.13합의 이행의 속도를 높이고 하루 속히 노사가 머리를 모아 미디어 격변에 대응해 나가자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조치 이후 사측은 오히려 역행적이고 기만적 자세로 노사간 현안에 대응하고 있다.  창사 28주년 기념식은 사내 여론 통제를 위해 노동조합의 입을 막으려다 조합의 거센 반발을 불렀고, ‘SBS 중심의 수직계열화와 구조개혁’으로 사원과 대주주의 갈등을 원천적으로 해소하자는 조합의 제안에 대해서는 대안 없는 반대로 일관하며 거꾸로 보수적 태도를 강화하고 있다. 현 박정훈 체제는 1년 여 전, 조합과 조합원들이 투쟁으로 쟁취한 사상 초유의 임명동의 투표를 통해 출범했다. 이는 박 사장 체제가 RESET! SBS!의 정신과 과제를 온전히 이행해야 할 최우선의 책무를 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만일 또다시 조합과 조합원을 업신여기고 적당히 현상유지를 통해 위기를 회피할 작정이라면 더 이상 이 체제를 유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박정훈 체제의 진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노동조합은 지난 1년 박정훈 사장 체제에 낙제점을 줄 수 밖에 없다. 비록 여러 변화가 있었으나 장기전략과 비전에 기반한 자발적이고 능동적 개혁이라기보다 사안에 대한 즉흥적 대응이 경영의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1년 전 직원들이 투표를 통해 부여한 RESET! SBS!의 역사적 책무 이행은 계속 지연되고 있다. 

실종된 비전과 전략…SBS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미디어 환경은 지각변동을 겪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근근이 버텨왔던 지상파 독과점은 이미 오래 전에 붕괴했다. 새로운 전략과 비전 아래 조직을 재구성해 전면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생존 그 자체가 불투명한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여기까지는 노사 간에 인식의 차이가 별로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SBS의 전략적 목표가 무엇인지, 이를 위해 어떤 변화를 겪어야 하고,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지 오리무중이다. 박정훈 체제가 여전히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전 구성원의 생존과 지속 가능한 SBS를 위해서 ‘SBS 중심의 수직계열화를 통한 콘텐츠 비즈니스 컨트롤 타워’의 구축을 전략적 목표로 이미 여러 차례 제시한 바 있다. 이를 위한 지주회사 체제의 구조 개혁 필요성 또한 제시한 바 있다. 전략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기능과 역할이 방만하게 분산돼 있고, 수익이 유출되는 현 체제로는 끊임없는 갈등을 초래할 뿐 내일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먼저 책임 있는 전략과 장기비전을 제시해야 할 박정훈 체제는 그러나 노동조합의 의사표시에 온갖 구실을 갖다 붙여 반대 의사만 표시할 뿐, 구성원들의 요구에 답하지 않고 있다. 

전략과 비전은 미래의 생존을 위한 나침반이다. 전쟁에 비유하자면, 적의 포진에 대응할 책략이다. 이런 책략 없이 무턱대고 군사를 전장으로 내몰았다가 몰살시키거나,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참패한 예가 부지기수다. 드라마 분사와 OTT 전략 등도 명쾌한 전략 목표 속에 전 조직을 관통하기 보다는 특정 사업 분야의 개별 대응으로 파편화돼 구성원 전체의 이해와 동의를 이끌어 내는데 철저히 실패하고 있다.

지금 SBS는 ‘전략’과 ‘비전’이라는 나침반의 부재 속에 여기저기 벌어지는 전투에 임기응변으로 나서 막기에 급급한 형국이다. 전략을 그리지 못하니 당연히 어떤 무기를 어떻게 쓸 것인지도 결정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전략적 판단에 근거한 미디어 그룹 전체의 구조개혁이 지연되면서 이에 걸맞은 유연한 조직 개편과 인사 재배치도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박정훈 사장은 창사 28주년 기념사를 통해 SBS가 좋은 회사를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위대한 기업이 되려면 구성원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좋은 말이나 하나같이 공허하다. ‘위대한 기업’은 듣기 좋을 수 있어도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전략과 비전, 이를 뒷받침할 실행계획이 제시되지 않는 한 구성원들이 도무지 알아 들을 수 없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위대한 기업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지도 당연히 천양지차다.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은 강요할 일이 아니라, 사측이 지향하는 목표가 어느 방향인지 먼저 명확히 제시해야 구성원들이 동의를 하든 말든 할 일이다. 바로 그것이 전략과 비전이다. 그래야 노조와 경영진, 대주주가 같은 곳은 보고 있는지, 지금 다르더라도 시선을 교정할 수 있는지 판단하지 않겠는가?

SBS가 전략 부재 속에 황금 같은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오랜 시간 풍파를 겪었던 MBC는 사측이 조직 간 칸막이를 허물고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혁신적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빠르게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KBS 역시 마찬가지이다. JTBC는 시청자 신뢰가 두터운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을 대표이사로 전진배치하며 미래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 그러나 전략과 비전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물음에 ‘너희 생각이 틀렸다’는 주장만 반복하는 최근 사측의 행태만 보면 SBS는 노사가 뒤바뀐 듯 한 착각이 들 정도다. 

만연한 단기 실적주의…낡은 지표로 자화자찬

전략과 비전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경영진으로 하여금 단기실적에 급급해 조직의 미래 동력과 성장기반을 스스로 갉아먹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한다. 지난 20여 년, 조금만 실적이 나빠지면 ‘비상경영’을 남발해가며 구조개혁을 외면해 온 구태가 빚어낸 것이 오늘날 SBS의 위기적 국면이다. 낡은 것과 새 것의 경계선에 있는 박정훈 체제는 그러나 과거의 해묵은 실책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박정훈 사장은 창사 28주년 기념사에서 격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 우리의 경쟁자들을 새롭게 규정하고 지상파 중심 탈피와 위기 돌파를 위한 구성원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작 박정훈 체제를 자화자찬할 때는 스스로 낡은 지표들을 동원해 ‘경쟁력 1등’을 달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사장은 우리 보도가 JTBC 뉴스룸의 경쟁력을 넘어섰다고 했다. 임명 동의제 시행 이후 보도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외부의 수상실적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사장의 주장을 가감 없이 인정할 시청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보도 경쟁력이 회복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각종 여론 조사를 통해 드러나 지표를 보면 여전히 우리 보도는 큰 차이로 신뢰도 경쟁에서 뒤쳐져 있다.

또 평일 밤 11시 대를 석권했다는 예능, 그리고 경쟁사들과 많은 차이로 앞서고 있다는 교양과 라디오 분야를 언급하며 박 사장은 전 부문 경쟁력 강화를 경영성과로 자랑하고 있다. 정말 우리는 해당분야에서 미래에 살아남을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는가? 지금 하는 것처럼 앞으로도 괜찮을 것인가? 전열을 정비하고 공세적 대응에 나서고 있는 타 지상파는 물론 사측이 스스로 언급한 새로운 미디어 시장의 경쟁자들에 맞설 전략이 무엇인가? 자본논리로 무장해 외부에 스튜디오를 만들자는 주장 외에 어떤 경쟁력 강화 방안이 있었는지 노동조합은 아무 기억이 없다. 스스로 미디어 시장의 경쟁자를 글로벌 OTT와 통신사, 콘텐츠 대기업 등으로 규정했던 박 사장이 정작 자신의 실적을 과시할 때는 사원들에게 벗어나자고 역설했던 낡은 시청률 지표를 앞세워 화려한 겉포장에만 여념이 없을 뿐이다. 

물론 일선 제작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노력을 평가하고 성과는 격려할 일이다. 그러나 경영실적을 자랑하기 위해 낡은 지표를 총동원하는 것은 여론을 호도하는 자가당착일 뿐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지표를 경영분석의 자료로 활용하고 왜곡된 결과를 토대로 단기실적을 또다시 쥐어짜는 행태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분명하다. 이미 구조적 한계와 시장변화 속에 4분기 들어 급속하게 꺾이고 있는 실적 그래프는 이런 근시안적 경영행태에 조종을 울리고 있다.

권한과 역할의 인식부재…’구시대의 막차’가 돼 가고 있는 박정훈 체제 

어느 때보다 높은 기대 속에 출범했던 박정훈 체제는 출범 1년 여 만에 새시대의 첫 차가 아니라 구시대의 막차로 스스로를 규정해 가고 있다. 

자신이 아니라 향후 30년 SBS와 명운을 같이 할 후배들에게 전략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리더십으로는 미디어 격변의 풍파를 제대로 넘어서기 어렵다. 전략 부재와 여전한 단기실적주의는 결국 박 사장의 리더십과 이를 보좌하는 경영위원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증표이다.

최고 경영자가 제대로 된 전략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니, 사내 각 분야는 새로운 전략에 맞게 어떤 기능들을 수행해야 하는지 총체적 인식이 부재한다. 그러니 그저 각자 아날로그 시대, 지상파 독과점 시대에 하던 일을 똑같이 할 뿐이다. 당연히 각 분야 최고책임자들로 구성된 경영위원회는 경영위원의 역할에 대한 인식부재 속에 자기 분야의 단기 실적 올리기에 급급한 구습을 반복하고 있다.

실제 제작 전 분야와 편성에 걸쳐 사소한 의사결정과 외부제작요소 관리까지 대부분의 권한이 박 사장에 의해 독점되고 있다는 비판이 사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장기전략과 비전을 고민해야 할 최고 경영자가 본부장이 할 일을 독점하고 본부장은 국장, 부장이 할 일을 대신하고 있으니, 경영위원회를 두고 ‘봉숭아 학당’이라는 비아냥까지 들리는 지경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사내 일각에서는 박 사장이 임명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경영위원 상당수를 능력과 평판에 관계없이 자신의 측근으로 채우면서 경영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이 심각하게 왜곡된 데서 비롯됐다는 비판까지 대두되고 있다. 인사의 기본원칙인 ‘신상필벌’과 ‘적재적소’가 경영위원 구성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진짜 개혁은 시작도 못했다. 

거센 풍랑이 몰아쳐도 선장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노를 저으면 푸른 육지가 나타날 것이라는 신뢰가 있으면 선원들은 동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도 모르겠으니 일단 이 파도만 넘자는 식이면 선원들은 사분오열하고 배는 좌초할 수 밖에 없다.  박정훈 체제는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표/SBS 주가 (2015.11~2018.11)

 

 위의 그래프는 박정훈 사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래 SBS의 주가 흐름이다. 주가는 반 토막이 나서 공모가격 수준으로 추락했다. 미디어 격변과 맞물린 지상파의 위상 하락 등이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제작부문을 총괄하며 대표이사 부사장 1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1년, 다시 직원들의 임명동의를 거쳐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기를 보낸 그 뒤 1년 동안 박 사장은 이런 시장의 냉혹한 평가를 반전시킬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러는 동안 대주주를 포함한 주주들은 기업가치 하락으로 수천 억 원대 손실을 떠안게 됐다. SBS 구성원들도 빛이 들지 않는 동굴에 갇힌 듯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물론 시장의 평가가 SBS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SBS가 지난 10년 간 지주회사 체제의 구조적 한계 속에 이런 흐름을 뒤집을 개혁다운 개혁은 해 보지도 못한 채 지상파 몰락의 위기적 국면까지 떠밀려 왔다는 점이며, 그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개혁의 역사적 소명을 안고 있는 박정훈 사장 체제도 지금까지 실패의 경로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해야 할 개혁엔 노동조합이 분담해야 할 고통이 적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부재한 전략과 비전, 여전한 구조적 한계를 해소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제한적이다. 아직 시작도 못한 진짜 개혁이 박정훈 체제에서 가능할 것인가? 대단히 회의적이다. 

이제 곧 인사와 조직개편의 시기이다. 박정훈 체제는 과연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이를 담아낼 조직개편, 그리고 신상필벌’과 ‘적재적소’의 인사로 RESET! SBS!의 책무를 온전히 이행할 수 있는가? 능력은 차치하고 그럴 의지는 있는가? 노동조합이 아니 전 사원이 지켜보고 있음을 박 사장과 사측은 명심하기 바란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  suwo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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