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장 편지

SBS가 중대한 변곡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조합원 여러분, 확산되는 코로나19의 기세 속에 취재와 제작현장에서 분투하고 계신 동지들께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부터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변함없이 본분을 다하고 계신 여러분이 있기에 우리 일터도 한 줄기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어수선한 와중에 부득불 현재의 상황을 설명드려야 할 것 같아 몇 자 적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현재 SBS 노사관계와 미래는 중대한 변곡점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1. 사외이사 추천 관련

대주주의 전횡과 방송 사유화로 신음하던 SBS에 경영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노조추천 사외이사 제도입니다. 2008년 도입 당시에도 대주주와 사측은 노사 대표가 서명까지 한 합의문을 도둑질해 폐기하는 등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입돼 시행되면서 지난 10년 동안 노동조합의 단수추천 관행이 노동 관습법으로 이미 정착된 상황입니다. 그동안 노동조합의 단수 추천에 대해 회사는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노조추천 이사 후보자의 선임을 거부했던 전례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측이 느닷없이 2008년 합의를 근거로 복수추천을 요구하는 것은 10.13 합의를 파기해 노사관계를 10년 이상 후퇴시키는 것과 동시에 노조가 단수 추천한 손철호 사외이사를 어떻게든 제거하기 위한 공작입니다. 손 이사는 윤석민 회장과 현 경영진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윤석민 회장은 2016년 SBS 이사회 의장 때부터 손 이사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여과 없이 표현해 왔습니다. 기존 사외이사들과 달리 SBS의 경영 난맥상을 가장 날카롭게 지적하고 대주주로부터의 독립성을 강력하게 유지해 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손 이사는 윤석민 회장이 주도했던 미디어 홀딩스 체제 하에서 벌어진 이익 터널링과 부당한 계열사 거래 관행을 바로잡아 SBS 수익구조를 개선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대주주의 돈주머니를 건드렸으니 미운털이 더 단단히 박힌 것이죠.

 

특히 대주주가 TY 홀딩스 전환과 이후 SBS 매각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이라면 말 안 듣는 노조추천 사외이사를 제거해야만 자신의 사익을 극대화할 결정들을 잡음 없이 관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측이 손철호 이사의 자질 문제를 거론한 것도 같은 의도의 연장선에 있다고 봅니다. 노동조합이 손철호 이사를 재추천한 것은 태영건설의 TY 홀딩스 전환은 물론 SBS 매각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주주로부터의 강력한 독립성과 M&A 분야에 정통한 경험 등이 우리 조합원들의 생존권을 지키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윤회장과 사측이 그동안 관례와 합의를 무시하고 노조추천 사외이사 선임을 거부한 것은 대주주와 특수 관계자로부터 독립적인 복수의 사외이사를 위촉하라는 2017년 재허가 조건 위반에 해당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2. TY 홀딩스의 SBS 지배는 몰락의 지름길

SBS 노사관계 20여 년 의 역사를 돌아보면 노동조합과 구성원들은 회사의 미래를 위해 고비 때마다 대주주의 손을 잡고 타협했지만 대주주는 늘 배신으로 답했습니다. 대주주가 SBS 경영권을 박탈당할 위기에서도 노조는 그들의 손을 잡았지만 돌아온 것은 이익 빼돌리기와 방송 사유화로 SBS를 망친 대주주의 탐욕이었습니다. 노동조합과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어렵사리 SBS의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해 놨더니 이제는 노사관계를 사상 초유의 극단적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윤석민 회장의 태영건설 경영권 승계 이후부터는 대주주가 SBS의 노사관계를 밑바닥부터 파괴해 SBS를 자신의 사적 이익 실현을 위한 도구로 철저하게 격하하고 있습니다.

 

지난 노보에 공개한 사측 문건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태영건설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SBS는 철저히 종속변수로 취급되고 있으며, 윤 회장의 개인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SBS에 부당한 희생과 손실, 소유 경영 분리의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틀마저 파괴할 계획을 강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사측은 이 문서가 기획팀 말단의 자체 검토 문서로 이미 폐기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제보자는 기획팀과 무관한 인물이며 그분에 따르면 이미 윤석민 회장까지 보고가 끝난 사안이라고 합니다.

 

사측은 객관적 물증까지 제시한 노동조합의 설명을 선동으로 몰아가는데 급급할 뿐 TY 홀딩스 설립으로 닥칠 SBS의 여러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자본시장법 핑계를 늘어놓고 있지만 사실은 사측의 대안이 노보를 통해 공개된 내부문서의 5가지 방안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가운데 어떤 방안을 택하더라도 SBS는 수익 기능이 거덜 나거나,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와 사유화로 조직이 심각하게 망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노동조합은 SBS를 사지로 내모는 TY 홀딩스 전환 문제와 노조추천 사외이사 제도의 훼손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은 어제 시민사회 대표들과 함께 방송통신위원회를 찾아 윤석민 회장의 TY 홀딩스 전환 추진 중단과 TY 홀딩스 체제의 SBS 지배 불허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전달했습니다.

 

 

3. 10.13 합의 파기 관련

사측이 어제 알림글을 통해 저열하고 품격 없는 표현들로 노동조합을 재차 공격하고 나섰습니다. 그 글의 핵심은 ‘노조가 먼저 합의를 깼으니 우리도 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기억하시겠지만 이 모든 혼란과 갈등은 지난해 3월 윤석민 회장의 태영건설 경영권 승계와 이사회 폭거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소유경영 분리 약속과 경영 불개입 약속 다 깨면서 합의 정신을 뿌리째 흔들었고 노동조합의 고발은 이에 따른 맞대응 조치입니다. 고발로 합의를 깬 것이 아니라 합의정신과 약속을 대주주가 먼저 파기했기 때문에 법적 대응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측의 어제 글은 새로운 주장이 아닙니다. 갈등과 혼란의 책임을 노동조합에 전가하는 일방적 주장을 더 거칠고 저열한 표현으로 반복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어제 글을 통해 한 가지는 명확해졌습니다. 사측은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해 “10.13 합의 이전의 마지막 노사합의서에 따라 절차를 밟기로 했다”며 10.13합의 준수 의사가 더 이상 없음을 문서로 명백히 했습니다. 자신들은 합의를 지킨다는 기존의 주장을 바꿔 합의 파기 의사를 공식화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도 더 이상 대주주와 사측의 각종 범죄 혐의에 대한 법적 대응과 기자회견 등을 유보하기로 했던 2017년 부속합의를 지킬 이유가 완전히 소멸됐습니다. 사측과 대주주가 이미 사문화된 2008년 합의문을 들이밀며 노사관계를 후퇴시키고 회사의 미래를 망치는 작태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조합원들도 뭔가 새로운 결의와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윤석민 회장과 사측의 일련의 행위는 ‘안되면 팔아 버리면 그만’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태영방송, 토건방송의 굴레를 다시 SBS에 덧씌우기 위해 철저히 계획된 도발입니다. 미디어 환경의 위기와 경기 둔화 속에 악전고투하고 있는 구성원들에게 대주주가 힘이 되기는커녕 노사평화를 파괴하고도 1년이 넘도록 오너 리스크를 극대화하며 사익 챙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SBS와 구성원들의 생존권을 대주주에게 담보로 내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SBS의 미래가 중대한 변곡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합시다.

우리의 미래, 함께 지켜냅시다.

감사합니다.

 

2020. 2. 28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 윤창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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