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 IMF가 터지고 난 뒤에 우리 방송은 금모으기 운동을 벌였다. 경제주권을 빠앗긴데 대한 위기감을 ㅗ국민의 호응은 높았고 외국 언론들도 이렇나 한국의 온정에 찬사를 보냇었다. 하지만 그때 한 재경부 출입기자는 고개 숙여 부끄러워했다. 국가가 부도가 날 때까지 기자인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는 권력의 나팔수가 된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언론 본연의 책무인 예방적 감시 기능을 소홀히 한데 대한 통렬한 자기 비판을 했던 것이다.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긴급편성된 수재민 돕기 성금모금 특별 생방송은 또다시 언론 본연의 책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게 만든다. 사실 수재민을 돕기 위한 모금방송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마치 여름이 오면 비가 오고 비가 오면 수재가 나고, 수재가 나면 성금을 모금하는게 연례행사이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에게 이 일은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수재성금 모금 방송이 방송이 해야할 마지막 수제인 것처럼 온갖 눈물진 사연을 소개해 가며 온 국민의 동정을 하모으기에 바빴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언론이 책임져야 할 철저한 원인분석과 대안제시 등 본연적 기능은 잊어버린채로 말이다.
온갖 사회 비리와 부조리를 파헤치는 우리의 수많은 시사 고발 프로와 뉴스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나, 수해 난 그 당시에만 반짝 생색 내가 방송을 했을 뿐이지, 지난해 수해지역이 물에 짐긴 뒤에 거둔 엄청난 수해성금은 잘 전해졌는지, 무너졌던 둑이 다시는 쓰러지지 않도록 복구는 잘하고 있는지 왜 점검하지 않았단 말인가. 시의성이 떨어져서 시청률에 도움이 안될까봐? 물에 잠긴 마을과 떠내려가는 돼지, 농민들의 통곡을 눈물나게 편집하여 방송했지만, 우린 어쩌면 수해민의 아픔을 하나의 방송꺼리로 이용했는지도 모른다.뉴스가 없던 와중에 오히려 수해가 난 것을 큰 이슈가 생겼다고 기뻐하진 않았는가. 여름 한철 아이스케끼 장사 마냥 수해를 한철 대목으로 본 것은 아니었던가.
더구나 긴급 편성된 3일간의 연속방송은 "방송국과 잘 협력하여 복구에 최선을 다하라"는 대통령의 특별지시 덕분에 더욱더 힘을 얻었다. 왜 수해가 났는데 방송국과 협력을 해야 복구가 된다는 것일까. 혹자는 이를 두고 방송이 국민 통합적 기능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민을 통합만 하고 뒷처리는 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현상만 집착하고 본질을 외면하는 언론은 더 이상 참언론이 아니다. 우리가 모금운동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직시하지는 것이다. 수재민 돕기 방송을 하고 싶다면,ARS 번호고지를 정확히 해주거나, 의연금 접수 창구 고지를 해서 수재민을 도울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면 된다. 3일동안 그 비싼 전파를 돈 모으는데 낭비할게 아니라 차라리 그 시간에 왜 똑같은 지역에서 해마다 수해가 나고 있는지, 복구 방제 시스템의 미비점은 무엇인지 등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보도를 통해, 내년에는 이런 어이없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을 촉구했어야 했다.
또 우린 여기서 온정주의로 미화된 모금방송의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위험성은 모금방송을 하면 할 수록 수해의 문제해결로부터 점점 멀어진다는데 있다. 행정당국은 자신에게 쏟아질 분노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눈물 어린 모금방송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방송은 그 잘난 금일봉을 가지고 온 높으신 분들의 출연을 통해 방송사의 사세를 은근히 과시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방송과 권력이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이 난국을 함께 헤쳐나가자"는 구호를 합창하는 사이에 수해의 책임은 잊혀져 갔고, 방송이 또 다른 이휴를 찾아 헤메는 사이 수재민의 고통도 국민들 마음에 서 멀어져갔다. 이것이 우리 수해 방송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
일본은 지난 95년 5천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고베 대지진이 났을 때 사실보도에 충실했지만, 우리처럼 요란하게 모금방송을 하진 않았다. 대신 일본의 방송은 재난의 원인분석과 방제시스템, 복구시의 문제점등을 집중적으로 점검,보도했다. 그들은 사실보도만큼이나 예방적 사전 감시기능과 사후 대안 제시적 기능에도 큰 과난심을 쏟았던 것이다.
우리는 이제 온정주의 를 버리고 냉철야져야 한다. 왜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시민이 수재의연금까지 내야 한느가, 왜 중앙재해대책본부 공무원들은 그 물난리에 편안히 앉아서 피해집계만 하고 있는가, 왜 일선 관청에서는 이재민에게 지급할 구호품마저 제대로 마련되 있지 않는가. 왜 성금을 낸 사람의 명단은 크게 발표하면서 성금을 받은 사람이 누군지는 밝히지 못하는가.
우리는 이런 보통 시민들의 소박하지만 더 본질적인 질문에 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에 또 누군가가 집을 잃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절망의 끝에 서야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도 어쩌면 늦여름 매미떼들처럼 "성금을 모읍시다"라는 반복되는 구호를 귀가 아프도록 떠들어 댈 지도 모른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른채 말이다. 작성일:1999-08-16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