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폭우와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예측성과 준비성 부족을 탓하곤 한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 미리미리 준비를 하고 대비를 하면 공포와 위협을 줄일 수 있고 큰 피해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폭우와 태풍이 지나고 나면 최대니 최고니 하는 수식어들만 난무할 뿐이다.
지난달 31일 밤부터 쏟아 붓기 시작한 많은 비와 가로수 뿌리를 뽑고 지나간 태풍, 7월의 마지막 토요일 밤부터 시작된 수해방송에 비상 호출령이 내리고 현장 확보를 위한 사투가 시작됐다. 예고된 특보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분과 초를 다투고 순발력 있는 팀웍이 가동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동원할 수 있는 인력과 장비가 그야말로 풀 가동됐고 수해방송이 끝날 때까지 조직의 힘이 유감없이 발휘돼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수해 특보 방송을 마무리하면서 우리 모두가 생각하고 반성해야할 대목이 있었다 뻔히 얘상할 수 있는 상황을 놓고서 의사결정이 왜 그리 더디고 그럼으로써 조직의 힘이 살아나지 못했는가 하는 아쉬움이다.
'수해모금 특별 생방송' 이 바로 그것이다.
수해모금 생방송 편성은 지난 3일 오후 6시를 전후해서 결정된 것 같다. 4일부터 모금 생방송이 편성됐으니 보도국은 기관이나 단체의 생방송 참여를 권유하라는 주문이었다. 상대사인KBS와 MBC만 해도 이틀전에 수해모금 생방송 편성을 결정해서 각 기관과 단체에 통보가 끝난 상태였다.
그래서 많은 기관과 단체들이 4일 MBC, 6일 KBS 생방송 출연 일정을 잡아놓고 있었다. 기관장이나 단체장의 일정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최소한 이틀에서 5일전, 아무리 급한 사안이라도 오전 중에는 다음날 일정이 결정되는 것이 관례이다. 주요 기관장이나 단체장의 일정은 어느 한사람의 의견으로 조정,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기관 내부의 일정과 업무등이 고려돼서 조정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정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보좌팀이 동시에 움직여야만 한다.
회사 전체가 움직이는 수해모금 생방송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기여할 것은 기여하고 도울 것은 도와야하는 것은 조직인으로서 당연한 의무이다. 그래서 밤늦도록 각 기관과 단체의 장에게 방송 참여를 요청하고 일정 조정을 위해 보좌팀을 채근했다. 그러나 이런 진통의 과정을 겪고 나면 출입기자와 취재원 사이에 서로가 어색해지고 서먹서먹해지면서 곤혹스런 입장에 처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실상의 강요를 받고 출연한 인사가 어떤 마음으로 방송사를 찾을까 하는 점이다. 그저 체면치레용이나 형식적 관행으로 움직이면서 준비성 없는 방송사라고 흉보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이번 처럼 폭우와 태풍이 지속된 경우라면 수해모금 생방송 편성을 할 것인지 말것인지 충분히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하루 전에, 그것도 각 기관의 업무 시간이 긑난 뒤에야 생방송 편성을 결정하고 사내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준비성이 너무 없는 잘못된 의사결정구조라는 생각이다.
조직이 힘을 발휘하고 잘되려면 네트워크 개념의 수평적 의사 교환이 자유로워야 하고 필요성이 인정되면 곧바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순발력 있는 대처 능력이 있어야 한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사안을 놓고 판단과 의사결정을 미루거나 늦추는 것은 하루하루 경쟁하는 방송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우를 범한 것이기 때문이다. 작성일:1999-08-16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