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지난 6월 4일, 역사는 그날을 지방선거일로 기록하지만 조은정씨는 남편의 기일(忌日)로 기억한다.
그날 새벽, 남편 김선호 기자(당시 보도제작 2부)가 퇴근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불귀의 객이 되고 만 것이다.
졸지에 미망인이 된 조은정씨는 철모르는 두 아들 (당시 네살 박이 준두와 갓 백일을 넘긴 익두)과 영안실을 지켜야 했다.
이 모습이 문상객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럴 즈음 유족들에게 다소 위안을 주는 소식 두가지가 영안실에 들려왔다 .하나는 김선호 기자의 장례가 창사 이후 처음으로 사우장으로 치러진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미망인 조은정씨를 사원으로 채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사부에서는 특별한 직업이 없던 조은정씨의 입사문제를 즉각적이고도 적극적으로 검토했다고 한다. 인력 충원이 동결됐던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회사측의 특별한 배려였다고 볼수도 있다. 그러나 조씨의 입사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IMF의 영향으로 인력 충원은 고사하고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감원바람이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회사측에서는 "조금만 기다려라"고 했지만 조씨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물 건너 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등 나름대로 가족들의 생계 대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8월 인사부의 전화를 받았다. 전공을 살려(조씨는 이대 전산과 84학번)전산 정보팀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것이다. 남편 김선호 기자가 세상을 떠난지 1년 2개월 만에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