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닉네임
- SBS본부
헌법재판소가 지난 10일 오전 10시 대심판정에서,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개정안 강행 처리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권한쟁의 심판 사건에 대한 공개 변론을 열었다. 헌재는 오는 29일에 한 차례 더 공개 변론을 열고 다음 달 31일로 예정된 개정 방송법 시행 이전에 최종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재투표-대리투표’ 위법성 놓고 격론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야당과 국회의장단, 한나라당의 법적 대리인들은 한 시간 넘게 진행된 지난 10일 공개 변론에서 정반대의 논리로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였다. 주요 쟁점은 크게 두 가지. 지난 7월 방송법에 대한 첫 표결 시도 당시 의사정족수 부족으로 표결이 무산되자 한나라당 출신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즉시 재투표에 부쳐 가결 처리한 것이 일사부재의 원칙을 어겼는지와 방송법을 포함한 4가지 심판 대상 법안 처리 당시 대리투표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으로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던 박재승 변호사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청구인 측 변론을 맡은 박 변호사는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표결 불성립은 현행법에서 찾아볼 수도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꼬집은 뒤 “이런 과정을 허용하면 일사부재의 원칙은 망가진다”고 주장했다. 야당 측은 또 “헌법상 독립기관인 국회의원은 표결권을 위임 또는 대리 행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리투표를 했다”며 투표 자체가 무효임을 강조했다.
반면 피청구인인 국회의장단과 여당의 대리인 측에서는 “과반수가 출석하지 못했다면 의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라며 “재투표는 국회의장의 의사 진행권으로 일사부재의 원칙을 어긴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맞받았다. 변론에 나선 김치중 변호사는 대리 투표 논란에 대해서도 “표결 당시 대리 투표를 한 사실이 없으며 야당의 대리투표 주장은 오히려 투표 방해 행위의 흔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양측은 표결에 앞서 심사 보고와 제안 설명, 질의-토론 기회가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표결의 절차적 하자’(청구인 측)와 ‘국회의장의 포괄적 의사 진행권’(피청구인 측)이라는 논리로 팽팽하게 맞섰다.
두 번째 공개 변론 후 신속 결정 방침
헌재는 이달 29일 두 번째 공개 변론을 연 뒤 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결론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이례적으로 공개 변론을 한 번 더 개최하는 것은, 첫 변론일인 10일 오후에 혼인빙자간음죄 위헌심판 사건의 공개 변론이 있어 충분한 심리가 사실상 불가능했고, 증거 검증에도 추가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작용했다는 것이 헌재의 설명이다. 지난 22일에는 수명법관으로 지정된 송두환 재판관 주재로 회의실에서 국회 CCTV와 방송사로부터 제출받은 촬영 자료를 살펴보는 증거 조사도 5시간 동안 벌였다. 통상적인 사건과 달리 두 차례나 공개 변론를 열고 증거 조사를 위한 검증 기일까지 잡은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헌재 재판부의 고민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청구인과 피청구인 측도 헌재의 이런 신중한 행보를 놓고 각자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라며 희망적으로 해석하면서 2차 공개 변론을 준비하고 있다.
과연 최종 결정은?
개정 방송법이 10월 31일에 시행될 예정이라 헌재의 최종 결정이 그 이전에 나올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본안인 권한쟁의 심판 사건에 대한 판단과 함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결정도 동시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헌재 재판관들은 두 번째 공개 변론 직후 담당 연구관들이 작성하는 최종 보고서가 제출되면 통상 1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평의를 수시로 개최해 ‘집중 심리’식으로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헌재의 선고 내용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헌재 내부에서 선고 전까지 보안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법부 최고기관인 헌재나 대법원의 경우 재판 과정이나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선고 내용에 대한 언론사의 추측 보도까지 금기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재 재판관들의 성향이나 최근 판결 내용을 통해 어렴풋이 결과를 예측하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현재 헌재 재판관들은 모두 노무현 정부 시절에 임명됐지만, 이강국 소장과 검찰 출신의 김희옥 재판관, 한나라당 추천으로 임명된 이동흡 재판관의 성향은 보수로, 조대현, 김종대, 송두환 재판관은 진보 성향으로, 대법원장과 여야 합의로 임명된 이공현, 민형기, 목영준 재판관은 임명 당시 중도로 분류됐다. 이 재판관들은 지난해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고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 독점을 내용으로 하는 방송법 규정에 대해서도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전반적으로 보수화된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헌재 관계자는 “재판관 대부분이 모두 법리에 밝은 정통 법조인 출신으로 개인적 성향은 이번 사건에 대한 판단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김정인 보도본부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