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제목은 지난 15일 서울남부지법에 접수된 SBS 체불 임금 청구 소송의 사건번호다. 노동을 제공해도 사용자가 그 대가의 지급을 거부하는 어처구니없는 SBS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씁쓸한 자화상이다. 회사의 위신과 평판, 우리의 자존을 위해 어떻게든 피해보려 했지만, 창사 20돌을 앞두고 사측이 우리에게 강요한 마지막 자구책의 상징인 셈이다.
대상 조합원 97% 소송 참여
전국언론노조 SBS본부는 소장에서, 경영 성과와 무관하게 지급돼야 하는 ‘고정 상여’인 5월상여와 추석상여가 지급되지 않은 경위와 그 부당성을 지적했다. 앞으로 1심 판결 선고 후 사측이 항소해도 곧바로 체불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가집행’ 청구도 소장 내용에 포함시켰다. 이 소송의 원고는 체불 임금에 대해 채권을 갖고 있는 SBS 3사 조합원의 97% 가량으로 현재 1,041명이다. 사측도 소송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의 숫자가 이 정도나 될지는 몰랐다는 듯, 적잖이 놀라는 표정이다. 이 문제에 대한 SBS의 민심이 어디 있는지는 이미 분명해졌다.
SBS본부가 법원에 제출한 소장은 접수 1주일 뒤인 지난 22일 사측에 송달됐다. 담당 재판부인 민사 합의13부가 비교적 빠르게 소장 부본을 피고 측에 송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피고인 사측이 소장에 대한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하면 첫 재판 날짜가 정해진다. 임금 체불 진정에 대한 노동청 조사 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사안이 단순하기 때문에 1심 판결 선고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측이 큰돈을 들여 변호사를 동원하고 이런저런 논리를 끌어대며 재판을 지연시키려 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순 없다.
사측, 소송 자초해 회사 손해 자초
하지만 그럴수록 소장 부본 송달일인 지난 22일부터, 원고인 조합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연 20%의 지연 이자만 불어날 뿐이다. 5월상여와 추석상여일로부터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의 지연 이자가 붙는다. 재판을 끝까지 밀고 가서 판결 선고까지 받게 될 경우, 회사는 내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재판 결과는 그야말로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노조는 현 집행부 임기 안에 재판이 마무리되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임한 변호사의 비용과 소송 인지대 등을 지연 이자로 충당할 계획이다. 부당한 임금 체불에 대응하느라 소진한 노조의 역량과 조합원들의 분노, 실망, 피로감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SBS 구성원들은 물론 주주들의 입장에서 볼 때도, 대주주와 경영진은 질 게 뻔한 소송을 자초해서는 변호사 비용을 들이고 지연 이자를 무는 등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길을 가고 있다.
회사의 손해는 금전적인 것만이 아니다. 임금 체불 사업장이라는 오명과 땅에 떨어진 SBS 구성원들의 자존심과 긍지 그리고 방송 현장에서 사라져가는 신바람과 사기. 굵은 땀방울과 창의력을 자발적으로 쏟아 부어 최고의 방송을 만드는 데 필요하면서도 결코 금액으로 환산하기 쉽지 않은 소중한 가치들이 산산이 찢겨져 나가는 데도 대주주와 경영진은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이다. 때문에 민사소송까지 내가며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단지 밀린 임금 200%만은 아니다.
소송은 지주회사 체제 바로잡기 일환
지난 6일 SBS본부 성명에서 “SBS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된 이후 사측이 당초의 여러 약속들을 뒤집고 대주주의 이익 챙기기를 노골화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듯이, 지상파방송 SBS와 지주회사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 상황에서 대주주의 일방적 질주를 막아내는 데도 큰 방점이 찍혀 있다. 우리에게 보장된 법적 권리를 누리는 데 주저할 이유가 더 이상 없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원하지 않았지만 소송이라는 법적 장치를 활용해서라도, 우리의 자긍심과 경제적 이익을 지켜내고 SBS가 더 이상 초라해지는 것을 막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SBS 미디어그룹 안에서 지상파 SBS가 건강하게 성장해 가는 것이 그룹 전체의 발전은 물론 국민들의 시청 복지 향상에도 핵심적인 요소임은 자명하다.
노조는 5월상여 미지급 이후 추석상여 미지급 직전까지, 넉 달 동안 여러 노력을 기울여 왔다. 추석상여 지급일을 목전에 둔 지난달 29일에는, 심석태 본부장이 5월상여 체불에 따른 노동청 진정을 취하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혔다. 이렇게 해서라도 임금 체불을 원만하게 해결해서 회사의 위신을 살리고 조합원들의 권리를 지켜내겠다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사측은 막무가내였다. 하금열 사장은 이튿날 담화를 내고 “회사는 이렇게 대규모 적자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회사의 미래를 담보하고 우리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추석 상여금 지급도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또 다시 고정상여의 지급을 거부했다.
사측, 흑자 전환해도 막무가내
전날인 지난달 29일에 열린 3분기 노사협의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노조는 “연초에 임금 반납을 요구하면서 그 근거로 사측이 제시했던 5백억 원 넘는 영업이익 적자는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다. 앞으로 영업 실적이 어느 정도 되면 임금 반납 요구를 거둬들일 것인가?”라고 물었다. 하 사장의 답은 “아직 답변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였다. 연말 흑자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나온 답이다. 지난 26일 회사가 공시한 내용을 보면, 올해 9월까지 영업이익 적자는 39억 원에 불과하고, 당기순이익은 76억 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결국 상여금 반납 요구는 적자 발생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경기 악화를 기화로 ‘임금을 깎아 보겠다’는 얕은 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노조는 추석 연휴 뒤인 지난 6일 상무집행위원회를 열고, 임금 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의했다. 아무리 영업 실적이 좋아져도 사측이 밀린 임금을 주지 않을 것이 분명해진 이상, 달라는 요구는 더는 하지 말고 우리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우리 손으로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작성일:2009-10-27 13:0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