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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지켜주고 싶은 방송만들어야"
먼저 4년 만에 친정으로 무사히(?) 복귀한 걸 축하드린다. 소감이 어떠신지?
솔직한 심정은 시원하지도, 섭섭하지도 않고 마음이 무겁다. 우리의 주장과 행동이 바르고 당당했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많은 희생이 있었다. 8명 해직, 240명 징계, 60건 기소...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혼자 후방으로 빠지는 느낌이다. 혼자 안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함과 함께 한편으론 할 만큼 했지 않나 하는 생각들이 얽혀 아직은 좀 복잡하다. 이럴 때는 빨리 봉고차를 타는 것이 최선인데 소송이 진행 중이라 현업복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이름에 재상 재(宰)자, 즉 벼슬이 들어있다. 그 때문인지 SBS 본부장을 비롯해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등을 지내면서 2009년에는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반대하는 총파업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노동조합과는 상당히 질긴 인연인데?
하하하. 재상 상(相)자도 들어있다. SBS본부장을 포함하면 6년 넘게, 40대의 대부분을 조합과 함께 보냈다. 우리 세대의 특징 중의 하나는 좌고우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임 이강택 위원장도 PD저널에 함께 인터뷰 하다가 ‘우리는 뭘 하나 건드리면 절대 피하지 못한다.’고 하더라.
사실은 나도 피하고 싶었다. 노동운동 하러 SBS에 입사한 것은 아니니까... 기억을 떠올리면, SBS본부장 맡을 때는 그 전해인 2004년 SBS PD협회장 때 했던 말에 발목을 잡혔다. 당시 재허가에 부정적이던 방송위원회 위원들을 설득하면서 “우리를 지켜봐 달라, 우리는 조중동이 아니다.”라고 했다. 나중에 주변 사람들이 그 말에 책임을 지라고 하더라. 그래서 “알았다.”고 했다. 언론노조 위원장 때는 내가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죽 열거했더니 한 후배가 ‘선배, 비겁하지 않습니까?’ 하더라. 그 한 마디에 무너져 여기까지 왔다.
노동운동에서 가장 큰 희생양은 가족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최 위원장에게 가족의 의미는 어떤가?
이 부문은 사실 할 말이 없다. 내가 봐도 나는 제가(齊家)에는 문제가 많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상당히 독립적이다. 남편이나 아비가 하는 일에 크게 간섭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당한 것에 저항하는 게 힘들어도 피하면 안 된다는 데 동의한다. 그래서인지 찬바람 맞거나 붙잡혀 간다고 해서 측은하게 생각하거나 적당히 봐 주지 않았다. 파업 때는 며칠 만에 집에 들어갔더니 애들이 ‘아빠, 아직 안 잡혀갔어?’ 하더라. 체포 장면을 사진 찍었던 둘째는 유치원 때부터 주말 집회에 데리고 다녔다. ‘또 나가나, 주말에는 애 좀 보라’는 소리 안 들으려고... 성명서로 어려운 단어를 익혔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심야 토론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더라. 대를 잇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어머니는 좀 다르신데 대학 때부터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 “임기 끝났습니다.” 보고하니 제일 좋아 하시더라. “다신 하지마라.”는 말씀과 함께.
언론노조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밖에서 보는 SBS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조중동 유료 종편의 출범 등 ‘미디어 난장판’을 앞두고, 책임 있는 지상파 방송으로서 SBS의 과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한마디로 일엽편주! KBS와 같은 든든한 공적 울타리도, MBC와 같은 시민사회의 애정과 지원도 없다. YTN이나 OBS 같은 헝그리 정신도 부족하다. 이전투구의 장에서 악전고투가 예상된다.
그러나 위기극복을 위해 시청률 높은 드라마나 재미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청자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받는 보도와 시사 프로그램 제작도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중·동 종편이나 tvN 등과 한 묶음으로 처리될 것이다. 설사 ‘미디어 난장판’에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위상이 추락된 상태로 연명해야 할 것이다. 시민들이 지켜 주고 싶은 방송을 만들어야 위기를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SBS가 그런 지향을 잃지 않도록 노동조합이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지주회사의 이익 빼돌리기, 3년째 임금동결, 일방적인 인력 재배치 등 SBS 조합원들의 불안감과 좌절감은 커져만 간다. ‘선임’ 조합원 입장에서 현 상황을 돌파할 방책을 제시한다면?
노동조합에서 잘 쓰는 격언이 있다. “파업하기 싫으면 파업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상황이 어렵고 앞이 잘 안 보일 때는 원칙에 충실하면 된다. SBS 조합 역사도 13년에 이른다. 신생노조, 약체노조가 아니다. 전임자 해 본 조합원이 50여명에 가깝고 간부까지 합하면 150여명은 될 것이다. 필요하면 행동한다는 조합의 원칙을 굳건히 하고 상대에게도 확실하게 각인시키면 그것이 난관을 돌파하는 최선의 방책이라 믿는다.
조합원들께 밖에서 오래 익힌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는 언론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특혜에 가까운 사회적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라 언론에 많은 것을 보장하는 사회적 합의 때문이라 본다. 강적 앞에서도 바른 목소리를 내고, 불이익이 있더라도 비겁하게 침묵하지 말라는 언론에 대한 사회적 요구, 그 사회적 요구의 반대급부가 우리가 누리는 대우라고 생각한다. 방송사 직원일 뿐만 아니라 언론사의 구성원이라는 자존과 책임감을 늘 함께 가졌으면 한다. 고장나고 약해진 곳을 다듬고 난 뒤에 찾아뵙겠다. 새봄 즐겁게 맞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