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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디어렙 대해부] 편성 독립성 위기

닉네임
SBS본부
등록일
2011-08-25 10:45:15
조회수
1235
편성 독립성 위기

“안 팔립니다. 책임지시렵니까?”

코바코의 비합리적 광고판매 체제에서 벗어나 시장원칙에 따라 좋은 프로그램을 제값 받고 판매하는 미디어렙을 설립하자는 주장에 시비를 걸기는 쉽지 않다. 왜곡된 광고시장의 구조를 바로잡아 수익을 확대하는 것은 일면 정당하니까.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거기엔 불길하고 거센 기운이 보인다.
위기가 상시화하고 생존의 절박함에 몰린 SBS의 현실에서, 광고는 이미 제작과 편성의 주요한 척도다. 많은 부서들이 ‘좋은 프로그램’에 대한 각자의 기준을 가지고 SBS의 제작과 편성을 논의하지만, 광고 판매율이란 직접적 수치를 앞세운 광고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안 팔립니다. 책임지시렵니까?” 움찔하게 만드는 포스가 있다.
이제 미디어렙이 생기면 광고판매를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실행하고 증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그 미디어렙이 SBS가 아닌 홀딩스의 소유가 된다. 회사 매출의 90%에 달하는 막대한 재원뿐만 아니라 방송의 근간인 제작과 편성마저도 좌지우지할 초능력이, 홀딩스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는 방송법 규정이 우스워진다. 말하자면 양자로 들이려했더니 형님이 되어 나타난 형국이다.
이 초강력 미디어렙은 우리가 순진하게 바라는 것처럼 ‘합리적 시장원칙’에 따라 우리 프로그램을 팔아줄 것인가? SBS 편성의 견제와 균형이 무참히 짓밟힌 상황에서, 홀딩스의 ‘아바타’가 일부러 그 막강한 힘을 자제해줄까? 사자의 채식선언만큼이나 허망하다.
잘 팔리는 지상파 프로그램이 케이블 프로그램을 끼워 파는 도구로 활용되는 것은 점잖은 수준일 것이다. 그들이 잘 팔리는 프로그램을 지금보다 더 잘 팔 지는 모르겠으나, ‘마음에 안 드는’ 지상파 프로그램을 더 안 팔리게 만드는 힘은 확실히 갖게 된다. 절대 강자인 그들 앞에서, 새로운 시도, 할 말을 하는 용기, 지상파 방송의 사회적 역할 따위를 논했다가는 비웃음을 살 것이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 더 거칠어 질것이다. “안 팔거야, 어쩔래?”
그들의 기분에 SBS 구성원의 생존이 달렸다. ‘마음에 안 들고, 말 안 듣는’ 프로그램에 몸담은 다수의 SBS 구성원이 ‘잉여인력’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인사권을 행사하는 임원의 인사권은 홀딩스에 있다. 모든 것이 그들의 손 안에 있다. 정확히 보자. 미디어렙은 일부의 기대처럼 금은보화를 쏟아내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라, 애먼 사람 때려잡는 ‘눈먼 몽둥이’에 가깝다.
SBS홀딩스의 미디어렙이 뒤틀린 시장을 바로잡아 수익을 올려줄 것이라는 환상 뒤에는, SBS를 좀비로 만드려는 바이러스가 꿈틀댄다. 지금도 이 모든 것이 기우(杞憂)이길 바란다. 허나, SBS에서 기우는 모두 다 실현되었다는 것이 두려울 따름이다.
작성일:2011-08-25 10:4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