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전 우리 회사 본부장과 실장 7명이 모여 회의를 했다. 논란이 있었고, 서로간의 이견을 좁히지 못해 마침내 표결까지 갔다. 언뜻 보아서는 회사의 명운을 건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진 것 같다. 하지만 이 회의는 ‘해외연수자 선발’을 위한 인사위원회였다.
이 ‘짧은’ 회의에서 의외의 일들이 벌어졌다. 각 실본부에서 ‘해외연수자’로 적합하다고 추천한 사람들 중 4명이 표결에 의해 탈락했다. 특히, 제작본부와 편성실의 경우 선발인원이 넘치지 않았는데도 굳이 탈락자를 냈다. 해외연수자 선발을 위한 인사위원회에서 표결까지 간 것은 처음이다. 연수 신청자에 대한 평가와 추천은 각 본부별로 이뤄져왔고 인사위에서도 심각한 결격사유가 발견되지 않는 한 이를 존중해온 게 관행이었는데, 사실상 본부장과 실장의 추천권이 다른 본부장, 실장들에 의해 유린되어 버린 것이다. 자칫 회사 고위간부들끼리의 ‘권력암투’로 비칠 수도 있는 모양새다.
자신이 추천한 부서원들을 끝까지 소신 있게 디펜스하지 못한 본부장과 실장들도 딱하지만, 부서원을 10년 이상 지켜본 해당부서 책임자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사원들을 일부러 떨어뜨린 다른 본부장과 실장들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탈락 이유가 ‘나이’때문이라고도 하고, ‘노조전임자 활동경력’ 때문이라고도 하고, ‘인사평가’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누구도 탈락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원칙 없는 인사전횡의 전형이다.
이 와중에, 보도본부장은 기자협회와의 면담에서 “(해외연수자 선발 기준으로) 어떻게 노조활동을 했느냐가 중요하다. 오너십을 부정하면 어떻게 같이 할 수 있겠느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주주와 홀딩스의 인사개입을 암시하는 발언이다. 왜곡된 홀딩스 체제의 어두운 그림자가 다시 한 번 드리운 것이다. 사실상 본부장과 실장들에게 주어졌던 어느 정도의 인사권이 앞으로 철저히 무시되고, 홀딩스가 ‘해외연수자 선발’ 같은 사안까지 일일이 개입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SBS미디어홀딩스는 광고 독자영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대로, 홀딩스가 지상파 SBS의 광고영업권을 가져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이번 인사위원회를 빙자한 인사전횡과 노조탄압 사건이 잘 보여주고 있다. 광고를 매개로 직접적인 개입이 강화되고, SBS의 제작·편성의 자율성이 심하게 훼손될 위기에 처할 것이다.
또한, 이번 사태는 왜곡된 홀딩스 체제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변화와 종편과의 전쟁에서 우리의 생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한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효율적인 의사결정구조와 중복되지 않는 단일한 명령체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SBS의 명령체계(Chain of Command)는 난맥 그 자체다. 그것이 대주주의 뜻인지, 아니면 일부 세력이 대주주의 이름을 팔아 호가호위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 SBS의 정상적인 지위체계는 무너져 있고, ‘윗분의 뜻’이라는 것이 곳곳에서 끼어들고 있다.
제작과 편성의 자율성이 무너지고, 본부장의 최소한의 권한마저 홀딩스의 목소리에 묻혀버린다면 현업자들의 창의성과 열정도 함께 사장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SBS의 경쟁력 약화와 대외적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인사전횡과 노조탄압에 맞서 결연히 싸울 것이며, 지주회사 체제 왜곡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인 홀딩스의 광고영업을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막아낼 것이다. 그것이 SBS와 홀딩스 모두가 사는 길이다.
작성일:2011-10-11 10:1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