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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갈무리] (칼럼)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닉네임
SBS본부
등록일
2000-02-21 01:00:00
조회수
1852
(칼럼)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봄부터 소쩍새를 울려야 하고 천둥을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려야 한다. 이웃의 한 방송사는 새천년 특집의 기획을 1996년부터 들어갔다고 한다. 또 다른 이웃은 98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21세기를 주도해 나갈 민영방송 SBS는 새천년 특집을 과연 언제부터 기획했을까. 새천년이 시작하기 불과 몇달 전이었다.(틀린 사실일까?)

인사계의 잔머리를 어찌 쫓으랴

논산훈련소에도 가을은 찾아 왔다. 내가 속한 23연대에서 중대별 화단 가꾸기 경연대회를 하며 2주 후에 심사가 있다는 급전이 내려왔다. 군대는 역시 줄이라고 했던가. 간발의 차로 죽음의 연병장 사역에서 빠져 중대화단을 아름답게 가꾸어 삭막해진 병영에 꽃향기와 웃음이 넘쳐나도록 하는 특수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작대기 하나 무거워 채 못달고 있는 훈령병들의 보잘것없는 이 두 손 아니 목장갑에 거액(?)의 상금과 기간병님들의 특별휴가, 그리고 중대장님의 명예가 걸려있다.
'아 과연 불과 이주일 만에 황무지와도 같은 이 화단을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꿀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열심히 들꽃을 옮겨다 심고 고운 흙을 실어와 깔았다. 그러나 걸레는 빨아도 행주가 될 수 없음을..
화단가꾸기 심사가 있는 디데이. 아침 일찍 인사계님의 오토바이가 무언가를 싣고 부르릉 달려오고 있었다. 오토바이 뒤에 실린것은 다름아닌 노란 국화, 상갓집 한구석에서 망자를 추모하고 있어야 할 국화꽃이 이곳으로 실려온 이유는 바로 화단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서다.
"역시 군대는 짬밥이야"훈련이라는 육체의 고달픔(점수 漸修)을 통해서도 얻지 못하는 이 한순간의 깨달음(돈오 頓悟)이여! 나는 이 순간에 훈련소에서 배워야 할 모든것을 배워버렸다. 짬밥과 잔머리, 우매한 우리 같은 훈련병들이 인사계님의 그 탁월한 잔머리를 어떻게 좇으랴. 우린 국화꽃을 화단에 오와 열을 맞추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가지런히 꽂았다. 모 심듯이 쑤욱 꽂았다.

검은 흙대신 연탄재로...

그러나 역시 잔머리일뿐, 한계는 있는 법, 일등은 다른 중대로 갔다. 그후 있었던 처절한 보복은 생략. 일등한 중대의 일등비결은 바로 나무밑둥의 곱게 썩은 검은 흙. 훈련소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나무 밑둥이 곱게 썩은 검은 흙을 모아 화단에 깔고 평소에 키우던 꽃과 나무를 자연스럽게 흐트려 놓았던게 우승요인이었다.
몇 십년 썩은 흙은 양분이 많아 꽃과 나무에도 좋고 꽃 색깔을 살려줘서 보기에도 좋아 그야말로 일거양득, 연대장은 물론 다른 중대의 화단도 곱게 썩은 검은 흙이 깔릴 것을 지시했다. 당연히 각 중대들은 썩은 흙을 구하려고 훈련소의 왠만한 나무 밑둥은 모조리 파헤쳤다. 그런데 몇 십년을 썩어야 나오는 고운 흙이 모든 중대에 고루 풍족하게 돌아갈 만큼 많을 리가 없다. 애꿎은 벌레들만 보금자리를 잃어버려 흙바닥에 나뒹구는 시위를 하고 있었다. 심사 일주일 후 연대장이 다시 돌아보기로 한 그날 아침, 인사계님의 오토바이 뒤에는 예의 국화다발과 또 다른 검은 무언가가 실려와싿. 연탄이었다.
"야 이거 구하느라 읍내서 X뺑이 쳤다."
그리고 훈련병의 길들지 않은 뻑뻑한 군화발로 연탄은 곱게 곱게 빻아저서 화단에 고루고루 뿌려졌다. 지리산 자락에 뿌려진 태수의 뼛가루처럼 잘열히, 국화는 이번에는 오와 열을 흐트려 꽂았다. 까만 흙이 보드랍게 깔리고 노란 국화가 향기롭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병영의 화단. 아 과연 보기에 좋았더라 .그리고 며칠 후...(상상에 맡김)

항상 임박해서야 시작

새천년이 올 것이라는 것은 이미 정해진 사실. 새 천년이 오면 특집을 해야 된다는 건 방송의 'ㅂ'나만 아는 삼척의 어린이도 다 아는 사실. 이웃동네처럼 돈잔치를 하지 않더라도 시간과 여건이 조금만 더 충분하게 주어지면 정말 재미와 새천년의 비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특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막강 소수정예(?)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임박해서야 시작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방송이 나간 후 아무도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 마치 금기 사항인 것처럼, 마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픔인 것처럼. 그래도 시간과 물량으 ㅣ제약을 잘 극복했다는 자위는 결국 시간과 물량의 제약을 가한 또는 고려치 않은 이들에게 면죄부를 던져 주는 셈이다. 봄에 씨앗도 심을 나무도 주지 않고 가을에 화단을 가꾸어라 하면....그래 까라면 까야지. 또 국화를 꽂아야 되고 연탄을 빻아야 한다.

생식내기식 특집은 그만두자.

변화라는 것이 결국 들판의 꽃과 나무 밑둥의 흙을 주워 모으는 구태의연한 노가다에서, 국화를 사다 심고 연탄을 빻아 뿌리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로 인해 발생하는 극도의 경제적 효율성으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가.
한겨울 잔디밭을 위해 보리를 옮겨다 심는 정모회장님의 성공시대에 감동 받은 것인가.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창사때의 신화를 이어가기 위함인가.
완성도 높고, 비전을 던져 주는 새천년 특집은 이제 다음 천녀에나 기대해야 되는 것인가. 새천년에도 특집은 계속된다.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그냥 잘 때우는 특집, 우리도 뭔가는 했다는 생색내기식 특집은 이제 지난 천년에 버려두고, 방송문화를 선도해 나갈 대 기획이건 틈새에서 실익을 찾는 특집이건, 최적 최고의 특집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봄에 미리미리 소쩍새가 울도록 스탠바이 시키고, 여름되면 또 천둥을 먹구름 속에 스텐바이 시켜야 한다.
시간은 쓰라고 있는 것이지 흘러보내라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김기슭
편집위원
작성일:2000-02-21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