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사측이 또다시 연봉제를 들고 나왔다. 사측은 올 상반기 채용할 신입사원(제작, 라디오, 드라마 PD)에게 새로운 임금 제도를 적용할 예정이라고 노조에 통보해 왔다. 16일부터 시작한 채용공고를 보면 “...업무 역량을 반영하는 임금제도가 적용될 예정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사측은 조합원들의 반발을 의식한 듯 새 임금제도의 내용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사측이 밀어붙였던 일련의 임금체계 변경 요구들을 종합해 보면, 새 임금제도란 결국 기본급 차등을 전제로 한 연봉제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벌써부터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또 연봉제 타령인가”라며 일할 의욕마저 떨어진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사측이 “조직의 활력을 위해 도입하겠다”는 연봉제가 오히려 지난 몇 년 동안 SBS 구성원과 조직 전체에 불필요한 피로감만 주고 있는 현실이다.
1. SBS 사측, 합의 깨고 노사 신뢰 무너뜨려
사측의 이번 조치는 사실상 ‘선전포고’ 성격이 짙다. 사측이 노조와 합의된 대화 채널이 가동 중임에도 강행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지난 2010년 부장급 사원들을 비밀리에 소집해 연봉제에 서명하게 했고, 신입사원에게도 연봉제의 족쇄를 채웠다. 1년 4개월 동안 로비 농성 등 조합원들의 거센 투쟁이 계속되자 결국 사측은 신입사원 연봉제를 철회하고 노사간 ‘임금제도개선TF’ 가동을 약속했다. 조합원들의 눈물과 땀으로 얻어 낸 결실이었다.
1년여 동안의 대화는 소득이 없었다. 노조는, 기본급에는 차등을 두지 않되 성과 상여의 차등 발생 시점을 현 1,100%에서 900%로 낮춰 성과급 차등이 실효성 있게 작동하도록 하자는 전향적인 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사측은 노조 안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기존 주장만 집요하게 되풀이했다. 차장 대우 이상 사원에게까지 기본급 차등 연봉제를 적용하자며 노조가 이를 받지 않으면 신입사원 연봉제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바 있다.
성실히 대화에 응하며 접점을 찾아보려 했던 노조는 결국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되어 버렸다. 노조가 제시한 대안은 사측 내부에서 공유도 되지 않은 채 내팽겨졌을 가능성이 크다. 사측은 처음부터 노조와 대화하려는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대화 테이블 뒤에서 신입사원 연봉제 강행을 기획하는 꼼수를 부렸다.
2. 연봉제 무엇이 문제인가?
사측은 그동안 연봉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남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좋은 성과를 낸 직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줘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임금 차등이 더 열심히 일할 유인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봉제에 이런 순기능만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근거는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측은 10년 넘게 운용해온 능력급직과, 부장급 간부 사원의 연봉제가 어떤 성과와 문제점이 있는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이 왜 반드시 연봉제뿐 인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가 주장하는 연봉제는 부작용이 훨씬 큰 제도이다. 공정하고 수준 높은 방송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소신 있는 방송 노동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윗사람의 평가에 따라 자신의 임금이 큰 폭으로 좌지우지되는 시스템하에서라면 소신과 원칙보다는 눈치 보기가, 협업보다는 개인주의가 앞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바뀐 지 1년 남짓해 구성원의 이해와 신뢰가 확보되지 않은 평가시스템을 토대로 임금을 차등하겠다는 발상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SBS는 다른 지상파 방송사와 비교해 전체 임금 가운데 기본급 비중이 70% 이상으로 높은 편이다. 기본급 차등이 누적되면 임금 격차는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부작용의 강도도 클 것이다.
3. 신입사원 연봉제 의도는?
이미 SBS 본사의 경우만 해도 절반 정도가 기본급 차등 연봉제를 적용받고 있다. 여기에 신입사원 연봉제까지 도입되면 연봉제 적용을 받는 사원의 비율은 그만큼 높아진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신입사원 연봉제가 도입되면 앞으로 수년 안에 자연스럽게 전 사원 연봉제가 이뤄진다. 사측 입장에서는 임금 등 근로조건에 대해서 굳이 노조를 의식하거나 힘겨루기를 할 필요가 없이 손쉽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노동조합뿐 아니라 피디협회, 기자협회, 기술인협회 같은 사내 직능단체들도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이미 연봉제 적용을 받고 있는 조합원들은 과도하고 부당한 임금 격차를 막는 보호 장치마저 잃게 된다. 불공정 방송을 막고 사측의 부당한 행위에 맞설 구성원들의 힘이 사라지면 사측은 아무런 견제 없이 방송의 사유화 작업을 진행해 나가고 결국 시청자들의 신뢰와 사랑까지 잃게 되는 암울한 미래가 우려된다.
이런 우울한 시나리오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당장 우리 눈앞에 놓인 현실이 되었다. 노조가 사측의 신입사원 연봉제 시도를 좌시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성일:2013-04-17 09:0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