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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국 김정윤 조합원
“어.. 어.. 들어간다.. 정말 들어간다” 지난달 22일 새벽 3시 무렵, 유흥가를 배회하던 두 연예병사가 결국은 한 안마시술소로 들어갔습니다. 한참 동안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현장21> 취재팀은 그 충격적인 순간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으면서도 서로에게 거듭 되물었습니다. “정말, OO랑 OO가 맞아?” 바로 앞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도 쉬이 믿기 어려웠을 만큼 화려하고도 은밀했던 연예병사들의 외출... 2달 여 동안 진행했던 취재의 정점을 찍는 순간이었습니다.
지난 1월 가수 비의 특혜성 외출 논란 이후, 국방부는 연예병사 특별관리지침을 내놨습니다. 외출 외박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고 군인답게 복무하도록 근무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연예병사 취재의 첫 계기는 바로 이 사건이었습니다. ‘과연 이 지침이 잘 지켜질까?’라고 하는 당연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취재를 시작한 건 지난 4월 하순 무렵. 당시 다른 아이템을 제작하고 있었지만 1주일에 하루 정도 짬을 내 국방홍보원과 연예병사 주변을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스태프가 홍보원 근처에서 무작정 ‘뻗치기’에 나서기도 했고요. <장기 취재 프로젝트>로 진행하기로 하고, 관련 증언과 현장 모습을 하나씩 조용히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니, 연예병사들의 동선과 생활상, 국방홍보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조금씩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6월 초, 데스크에게 보고를 하고 본격적인 취재에 돌입했습니다.
장거리를 마다 않고 지방공연을 수차례 따라가 밤을 지새웠고, 국방홍보원 내부 사정을 아는 사람을 찾기 위해 몇 사람을 건너 수소문하는 면구스러움도 감수했습니다. 때로는 취재 사실이 발각될 위기에 처한 순간도 있었고, 어렵게 만난 사람에게서 홍보원과의 관계 때문에 인터뷰하기 어렵다는 ‘호소’를 들어야 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춘천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현장을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애초 방송 예정일은 7월 2일이었습니다. 그런데 6월 22일 춘천 취재 직후, <현장21>팀은 내부 논의 끝에 방송을 2편으로 나눠, 예정보다 한 주 앞서 6월 25일에 1편을 방송하기로 했습니다. 이유는 보안문제와 더불어 방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국방부는 물론 거대해진 ‘연예권력’이 어떤 식으로든 ‘작동’을 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 방송 직전까지 이러저러한 연락을 직간접적으로 받았고, 안마시술소 출입 부분과 연예병사 실명 공개를 둘러싸고 적잖은 갈등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은 1편과 2편 모두 비교적 순탄하게 나갈 수 있었고, 우리사회에 화두 하나를 던질 수 있었습니다.
국방홍보원은 어쩌면 연예병사들에겐 ‘해방구’ 같은 공간이었고, 지방공연은 ‘화려한 외출’을 할 수 있는 기회였으며, 이들의 군생활은 특권의식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기간이었습니다. (이들은 늘 ‘연예인-일반인’이라는 이분법적 언어를 사용합니다. 저는 취재 내내 이 말이, 이 구분이 참으로 불편했습니다.) <현장21>이 말하고자 한 것은 특정 연예병사의 일탈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게 누구인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은 일일 겁니다. 시종일관 저희의 관심은 연예병사 제도가 과연 법과 원칙은 물론 국민들의 상식에 맞게 운영되고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취재에 임하는 저희의 시선은, 지금 군대에 있는 60만 장병들, 그들의 친구와 연인, 2천만 예비군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식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님들의 시선과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두 편의 연예병사 연속보도로 <현장21>은 인지도가 올라가는 효과를 거뒀을 겁니다. 이른바 ‘브랜드 가치’가 상승한 계기이기도 합니다. 보도 직후 <현장21> 팀으로 이런저런 제보가 물밀듯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저 역시 수십통의 격려와 제보 메일을 받았습니다. 마치 그동안은 말할 곳조차 없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있는 곳을 찾았다는 듯, 억울한 인생사부터 온갖 비리, 사회 부조리와 관련한 내용들이 밀물처럼 들어왔습니다. “현장21이 꼭 밝혀달라”, “현장21이 끝까지 취재해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려달라”는 당부와 함께였습니다. 지상파 시사보도프로그램들이 지난 정권 이래 전반적으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억울함을 풀어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할 말은 시원하게 해주기를 바라는 시청자들과 국민들의 바람이 잠시나마 <현장21>로 모인 듯 했습니다.
조합원들께서도 아시다시피, <현장21>은 몇 달째 폐지 논란에 시달렸습니다. “인지도가 없다, 시청률이 낮다, 영향력이 약하다..”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붙었습니다. 그럴수록 저희 <현장21> 기자들은 더욱 이를 악물고 사력을 다해 취재하고 제작에 임했습니다. 팀원들이 똘똘 뭉쳐 우리들만이 할 수 있는 취재와 스토리텔링 방식을 제대로 보여주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그래서 비단 연예병사 편 뿐만 아니라, 올 상반기 <현장21>의 방송내용들은 모두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아이템들입니다. 어쩌면 프로그램 폐지 시도가 역설적으로 <현장21> 기자들에게 더 강한 기(氣)를 불어넣어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는 비록 인사발령으로 팀을 떠나게 됐지만, <현장21>을 명실상부한 SBS 대표 시사보도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어느 자리에서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결의로 글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