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올려진 ‘지각 통보’ 였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순식간에 조회수 1000회를 넘고 2000회를 넘어갔다. 어떤 이는 입사해서 ERP보다가 트래픽 때문에 덜컥거린 건 처음이란다.지난 주 목요일에 난 <인사발령 통보>이야기다.
정기 인사 소식이야 늘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이번의 반응은 좀 유달랐다. 지난 6월, 지금이 위기라며 전격적인 조직개편과 이례적인 대규모 인사를 단행해 구성원들을 충격(?)에 빠뜨린 후 6개월만에 돌아온 정기인사였던 것이다. 프로그램 경쟁력은 회복될 기미가 잘 안보이고 뉴스에 대한 평가도 박해지고 있는데 회사가 또 어떤 ‘특단의’ 조치를 내릴 것인지, ‘특단의’ 조치가 또 어떤 파장을 일으키진 않을지, 많은 사람들이 퇴근을 미루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회사의 ‘메시지’를 기다렸던 것이다.
자, 그 결과는?
조급한 개혁, 신속한 반성
묘한 안도감과 허탈감.
조직 개편과 인사 결과를 보는 시선들이다. 핵심 내용들을 보자. 편성에서 가져갔던 제작기능의 일부를 다시 원래 부서로 되돌린다, 편성국을 신설한다, 제작본부는 3년만에 교양-예능을 다시 분리한다, 라디오는 별도의 센터로 한다….
‘GO TO THE BASIC’ 이란 말로 설명하는 사측인사도 있던데 아무튼 다시 말하면 다시 옛날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편성은 그야말로 좋은 콘텐츠를 발굴하고 선택하는 ‘편성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것이며 제작은 전통적으로 이어져 왔던 예능국, 교양국, 라디오 등이 각자의 생태계 속에서 콘텐츠의 다양성을 키우고 특장점을 배양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은 기실 해당 구성원들 대다수의 여론이었다. 안도감은 ‘회사가 적어도 여론을 파악하고 있구나’ 하는 데서 나온 것일 테다.
그러나 동시에 그 동안 왜 소모적인 시행착오를 했는지에 대한 허탈감을 표하는 사람들도 많다. 왜 엄격한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편성에 제작 기능들을 포함시켜 불필요한 내부갈등을 일으키고 집중력을 흐트러뜨렸는가?, 왜 ‘시너지’라는 명분에만 매달려 장르별 다양성과 고유의 특장점을 훼손시키는 어설픈 통합을 했는가? 이번 인사와 조직개편은 적어도 그간 회사의 방향성이 옳지 않았음을 인정한 것이다.
늘 위기를 부르짖던 회사가 바로 얼마 전까지 추구하던 방향성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해답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회사의 비전가치라는 것을 외부컨설팅업체가 만든 4개의 영어단어로 할 때부터 조짐이 보이긴 했다.)‘편성 중심’이라는 명분 뒤에서 SBS 내부역량 보다 외부에 더 좋은 소스가 있다고 믿고 과도한 기대를 한 것 아닌가? 내부 여론과 상관없이 구분해야 할 것은 합치고(예능-교양), 힘을 모아야 할 것은 나눴던일(드라마본부, 콘텐츠파트너십팀)도 내부 인력들을 어떤 식으로든 긴장과 자극을 줘야 할 대상을 넘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대상으로만 생각한 것 아닌가?
위기를 말하는 사람이 꼭 정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남다른 특이한 얘기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정답은 아닐 것이다. GO TO THE BASIC!. 어찌되었건 이제라도 희뿌연 바깥에서 답을 찾지 않고 내부를 응시했다는 점은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그 비용은 작지 않았다. 6개월간의 인사실험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짧은 임기밖에 채우지 못한 본부장, 팀장들을 또 배출해야 했고 이들이 후배들과 얽어가던 수많은 관계의 끈들도 덩달아 혼란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런 혼란이 바로 경쟁력의 약화다!
안도감과 허탈함. 그 다음에 오는 것은 그래서 불안감이다. 이번엔 방향을 잡았다고 하지만 다음엔 혹시 또 어떤 파격이 오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죽이는 인사 vs 키우는 인사
작년 이맘때 회사 부서의 이름이 몇 군데 바뀌었다. 방송지원본부는 경영지원본부로, 인사팀은 HR(Human Resource)팀으로 바뀐 것이 그 때부터다.
이름 가지고 시비건다고 할지 모르지만, ‘방송’보다는 ‘경영’을 지원하고 ‘사람의 일’이 ‘인적자원배분’이 되어 버렸다는 게 조금 씁쓸하다는 설왕설래가 있었다.
이번 인사로 국(局)들이 신설, 부활하며 본부장들의 역할보다 현장 팀장급들의 역할이 더 중요해 졌다고들 한다. SBS는 콘텐츠 기업이다. 업계 환경이 변화무쌍해지고 보다 전문적인 경영적 판단이 필요해졌다고는 해도 본질은 어찌되었건 콘텐츠 제작에 있다.‘초인적인 능력자 임원’이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힘들게 뽑아놓은 구성원-콘텐츠 제작자와 스탭-들이 SBS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 좋은 콘텐츠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얻는다. 제작자의 진심이 담겨야 한다. 자신이 소모품이 아닌 인재라고 느껴지게 하는 인사, 구성원을 다그치는 깜짝 인사가 아닌 현장의 여론을 반영하는 인사, 아마도 그런 인사가 콘텐츠 기업의 인사정책이 아닐까?
작성일:2013-12-04 15:44:13